(종로구) 텃밭호박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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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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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아래 풋호박은 보석처럼 빛난다.
흔히 호박이라 하면 못 생기고 투박한 외형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호박은 매우 예쁜 작물이다. 가을 햇살을 담은 갓 수확한 둥근 풋호박은 보석과 다름없는 자태를 뽐낸다.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호박에는 베타카로틴 성분이 풍부하여 항암, 항염증과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애호박이나 단호박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소화도 잘되어 위장이 약한 사람이나 병후 회복기에 있는 이에게 좋은 영양 식품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호박씨는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데 불포화지방으로 혈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기침과 같은 증상이 있을 때는 꿀과 섞어서 먹으면 효과를 보는 예도 있다고 하니, 이쯤 되면 가히 만병통치약이라 부를 만하다. 못난 것을 호박이라 부르고, 엉뚱한 행동에 호박씨나 까고 있다고 표현하기에, 호박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 호박의 효능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호박에 대한 평가가 매우 박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호박은 평소 식탁에 자주 오르는 애호박이나 주키니 호박뿐 아니라, 보양식 찜 요리에 자주 등장하는 단호박, 늙은호박, 땅콩호박, 국수호박 등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보통의 음식 재료와는 다르게 호박은 종류에 따라서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다. 늙은호박은 수분이 많은 편이라 호박즙을 내거나 호박죽의 주재료로 사용한다. 단호박은 찜이 제격이다. 조직이 단단하고 이름 그대로 단맛이 많아서 찜 요리를 해도 단맛과 감칠맛이 여전히 좋다. 애호박은 식탁 오르는 반찬 용도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인데 전이나 무침 용도로 제격이다. 주키니 호박은 이름이 좀 생소하지만, 애호박보다 색이 짙고 단단해서 국이나 찌개 용도로 사용되는 북미지역이 원산지인 호박이다. 호박의 부드러운 단맛과 달걀의 담백함이 잘 어울리는 단호박 계란찜
다양한 종류만큼 조리법도 다양하고 우리 생활 속에 매우 익숙한 먹거리 작물이 호박이다. 그만큼 친근한 이유에서인지 호박이 등장하는 일상의 표현도 다양한 편이다. 누군가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할 때 ‘단호박이네요’라고 표현한다거나,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냐’라는 표현도 있다. 호박의 효능과 쓰임새를 알고 보니, 호박을 수박보다 못하게 본 것은 호박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달리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양도성 아래 자리 잡은 혜윰뜰 텃밭에서도 지난해부터 호박을 키우는 이웃이 생겨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호박이라는 작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잘 자라준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둥근 애호박을 주로 수확했는데, 올해는 찌개용으로 쓰임새가 있는 주키니 호박도 등장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다.’라는 표현은 호박 덩굴이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생겨난 말인데, 심어 놓고 큰 관심을 둬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호박은, 텃밭에 오랜 시간 공들일 여유가 부족한 도시농부에게는 제격인 작물이라 앞으로 혜윰뜰에서 다양한 호박을 더욱 자주 만날 것으로 생각된다. 혜윰뜰 텃밭에 더해서 이웃한 도시 텃밭에서도 올해는 호박의 수확이 좋다. 넝쿨마다 주렁주렁 열린 호박을 적당한 때 수확해서 나눔 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할로위 데이의 다양한 ‘잭 오 랜턴’
서양에서는 호박이 마을공동체 이벤트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서양의 축제이기는 하나 이제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할로윈데이에 등장하는 ‘잭 오 랜턴’이 그것이다. 유령 얼굴을 늙은호박에 조각해서 호박 안에 촛불을 꽂아 넣은 할로윈 호박은 행사일에 이웃 간의 솜씨를 겨루는 품평회도 열린 정도로 친숙한 마을활동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호박이 마을에서 톡톡한 역할을 하는 것은 비단 서양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얼마 전 동네 반찬가게를 찾았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지만, 그동안 좀처럼 동네에서 볼 수 없었던 반찬가게라 이웃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는데 요즘 같은 시기에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저녁 식탁을 책임질 반찬을 고르고 있는데, 마침 관심이 있던 호박이라는 단어가 들려온다. ‘좀 있다 나눔 받은 호박 가지고 다시 올게요’라는 말에 혜윰뜰처럼 어딘가에서도 호박을 나눔하고 있는가 생각했다. 반찬을 고르고 있는데 반찬가게 주인분의 자랑이 이어진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눔 받은 호박을 챙겨 오겠다고 한 분은 혜윰뜰 회원이었고, 텃밭에서 키워 나눔 받은 풋호박을 반찬가게에 다시 나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와 혜윰뜰의 관계를 모르는 반찬가게 주인분의 덕담 같은 자랑은 이어졌다. 반찬가게 주인과 손님으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음에도 가끔 텃밭에서 수확한 것을 반찬 만드는 데 사용하라고 주고 간다는 말에 혜윰뜰 나눔의 기운이 이곳까지 이어져 있음에 살짝 놀랍기도 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성장이 왕성한 깻잎이라면 나눔 하는 이유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소비하는 속도보다 수확하는 양이 훨씬 많으니 나눔 해서 반찬가게 솜씨로 깻잎장아찌를 담가 나누면 훨씬 더 쓰임새 좋은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풋호박이라니. 혜윰뜰 텃밭에서 풋호박은 아직은 몸값이 귀한 존재다. 나눔을 받았다 해도 몇 개 되지 않고, 풋호박은 집에서 간단히 부침만 해도 알차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먹음직한 부침으로 다시 태어난 혜윰뜰 풋호박
간단히 요리할 수 있고 쓰임새 많은 풋호박 나눔 하는 이웃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했지만, 반찬가게 주인분의 표정에서 이웃이 느꼈을 그 마음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자영업이란 때로는 고달픈 직업이다. 특히 먹거리를 만들어 장사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동네 장사는 입소문에 살고 입소문으로 문 닫게 되기 때문에 먹거리를 만드는 일에 소홀함이 있을 수 없다. 반찬가게는 신선한 재료가 우선이라 매일 장보기를 게을리할 수 없고 손님이 오기 시작하는 오후 시간대까지 그날의 먹음직한 반찬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직업이다. 요즘에는 코로나라는 복병까지 겹치면서 환기와 위생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고 이 모든 과정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과중한 일이다. 하루 이틀, 혹은 한 달 두 달은 해낼지 모르지만, 휴일 없이 매일 반복해야 하기에 심신이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이웃이 나눔 해준 혜윰뜰 호박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반찬가게 주인분 얼굴 미소는 마스크 뒤에서도 분명하게 보였다. 손님과 상인으로 만난 인연에서도 배려와 나눔의 기쁨이 있음에 그날 하루의 피로가 주인분 얼굴에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나눔이지만 혜윰뜰에서 키운 풋호박에는 그보다 큰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찬을 고르고 나오는데, 마음이라며 단호박 계란찜 반찬 하나를 무심한 듯 장바구니에 덤으로 담아주신다. 본인도 나눔 받았는데 나누는 것이 도리라는 말씀과 함께. 받는 기쁨만큼이나 나누는 마음도 행복임을 이날 깊게 느꼈다. 이 날 덤으로 가져온 단호박 계란찜을 저녁 반찬으로 내놓으니 가족들의 호평이 이어진다. 덤으로 받은 것이라고 하니 더 맛나단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오는 이웃에게 덤을 챙겨주는 마음이 맛난 양념이 되어준 덕분이리라. 이쯤 되면 처음 혜윰뜰 텃밭에 호박씨 뿌린 이가 누군지 궁금해진다. 씨 뿌려 키우고 나눔한 혜윰뜰 호박이 이 시대 답답한 이웃들 마음에 작은 창문이 되어 주었다. 그 창문으로 신선하고 상쾌한 바람과 함께 행복 가득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 너 참 대단하다! 호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