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9일(토) 서초구의 재단법인 숲과나무 강당에서 '지구를 위한 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지속 가능한 농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열렸다. '2022 지구농부포럼'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토론회에는 특히 '자연농'을 통해 경운하지 않는 농사, 플라스틱과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농사, 생명 다양성을 돌보는 농사를 실천하고 있는 현장의 농부들이 다수 참여해 각자의 삶과 경험을 가지고 정답이 아닌 질문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2022 지구농부포럼'이 재단법인 숲과나무 강당에서 열렸다. ©농부시장마르쉐 유튜브 갈무리오전 토론회에서는 종합재미농장 안정화 농부의 진행으로, '지구 농사란 무엇일까'라는 제목을 가지고 해땅물농장의 홍려석 농부와 홍성풀무학교의 오도 교사가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각기 다른 지구를 위한 농사의 방법을 전했다.
해땅물농장의 홍려석 농부(왼쪽)와 홍성풀무학교의 오도 교사(오른쪽)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농부시장마르쉐 유튜브 갈무리먼저 해땅물농장의 홍려석 농부는 발표를 통해 자연농은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방법론적인 여러 '난감한' 문제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홍려석 농부는 "자연농의 거두인 일본의 가와구치 요시카즈 선생은 '나의 삶은 다른 것들의 희생 위에 있다'며 농사를 위해 벌레들을 죽인다. 또 다른 거두인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 선생은 녹비작물을 활용한 농사를 말한다"고 전하며 "나는 자연농이 가지고 있는 '자연과 인간은 공존・공생의 공동체'라는 개념에서, 각자의 존재 이유가 있는 작물들이 다른 작물의 재배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측면에서 그런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자신이 추구하는 자연농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면서 행동하려고 노력하면 먹거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 홍려석 농부는 그것을 위해 자연과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하고 "작물이 나와 자연을 잇는 통로가 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작물을 '만져'주며 '관찰'하는 기다림을 말한 홍려석 농부는 "작물은 정교한 질서를 가지고 자라며, 자신이 자랄 적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파악해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애초에 윤작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홍려석 농부는 관찰을 통해 "작물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현재는 작물의 전파 범위 안에서 자연스럽게 윤작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내가 하는 방법이 정말 자연과 소통하는 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물의 수확은 내가 얼마큼 땅과 풀과 벌레들과 대화를 했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고 말한 홍려석 농부는 "내가 농장에서 놀면 자연이 '엄마가 밥 주듯이' 수확을 잘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홍성풀무학교의 오도 교사는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자연과, 사람과 함께 하는 농사에 대해 발표했다. 먼저 풀무학교는 농사의 전반을 배우는 농업학교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다양한 농법의 경험을 가르치고 있어 온전히 자연농을 할 수는 없는 상황임을 전한 오도 교사는 "다만 땅을 살리고, 순환하고, 자급하고, 나누고, 같이 살고, 농촌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누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밭을 만드는 것부터 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해서 씨를 받는 것까지 풀무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자연 친화적인 농사 교육의 한 해 살이를 전한 오도 교사는 교육 과정 중에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2003년부터 씨앗 받는 것을 시작했는데 자료가 없어서 모든 과정을 공부하는데 10년도 넘게 걸렸다"며 "학교라는 특수성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농사를 지을 사람들을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도 교사는 농사와 함께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중요성도 강조했다. 농사짓는 집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지었고, 그것이 싫어 도망치듯 떠난 일본 유학 중에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학교를 접하고 받은 감동을 전한 오도 교사는 "그때 받았던 감동을 나누고 싶어 2003년 풀무학교에 부임하자마자 정원을 가꿨고, 이것을 통해 농사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같이 사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무엇보다 농사는 온전한 신뢰를 가르친다"고 전한 오도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2년의 교육 과정을 거치며 농사를 짓고 나면 신뢰가 생기는 것 같다"며 "학교를 졸업한 친구는 나의 평생 동료이자 친구가 된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발표 후 질의응답과 토론 시간에는 두 농부의 실제적인 농사 방법부터 농사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세상과 소통하는 각자의 방식을 나누는 시간으로 마련되었다.
오후 토론회에서는 오전에 이어 종합재미농장의 안정화 농부의 진행으로, '나의 지구 농사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지고 하늘뜨락자연농원의 정선웅 농부, 고양찬우물농장의 이상린 농부, 풀풀농장의 이연진 농부, 채소생활의 박형일 농부, 맑똥정미소의 김영대 농부가 각자의 농사 이야기와 생각들을 풀어냈다.
하늘뜨락자연농원의 정선웅 농부, 고양찬우물농장의 이상린 농부, 풀풀농장의 이연진 농부, 채소생활의 박형일 농부, 맑똥정미소의 김영대 농부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농부시장마르쉐 유튜브 갈무리먼저 하늘뜨락자연농원의 정선웅 농부는 자연농 농부로서 작물의 뿌리를 키우는 것과 미생물이 풍부한 흙을 만드는 것을 중요시한다고 전하고, 식물과 식물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 지역의 유전 정보까지 나누는 존재들이라며 "이것을 살리는 것이 자연농의 힘"이라고 말했다. 또 기후 위기와 관련해서는 무경운을 통한 '탄소를 저장하는 농사'를 강조했다.
고양찬우물농장의 이상린 농부는 도시농부들이 도시라는 자연스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소량 다품종, 도심 순환 농법, 무농약・무화학비료・무검정비닐멀칭을 통한 유기 재배를 이야기한 이상린 농부는 "다만, 도시텃밭의 한계로 무경운・무투입 농법까지 이르지는 못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도시민의 주말농장이 작은 공간에서 많은 수확을 끌어내는 집약적인 농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적절한 경운과 양분의 투입이 땅심을 유지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풀풀농장의 이연진 농부는 자연농사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먼저 풀을 살리는 것으로 땅을 살리고 작물을 살리는 방식의 농사를 짓고 있다고 밝힌 이연진 농부는, 농사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농사 방법부터 수확하는 작물에 대한 만족감까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이연진 농부는 "무심히 가다 보면 돈은 어느새 내 옆에 와 있다"라며 "자연농의 경제적 자립은 이런 것"이라고 전했다.
채소생활의 박형일 농부는 "농사는 철학도 아닌 사업도 아닌 생업"이라며 "나에게 농업은 꿈이자 밥"이라고 말했다. 퍼머컬처와 마켓가드닝의 방법론을 통해 지속 가능한 농업의 가능성과 현실성을 찾으면 좋겠다고 말한 박형일 농부는, 지구 농사에 대한 이야기가 "무경운・무농약・무투입 등에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무엇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가치지만 토양 생물 다양성, 순환, 지구 생태계 복원과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겠다"고 말했다. "미래의 농업은 디자인 집약적 농업"이 될 것이라고 전한 박형일 농부는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가지의 해답, 새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맑똥정미소의 김영대 농부는 지구를 위한 다양한 농사를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진행 중인 마을 공유지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전통적인 '계'의 방식으로 각자의 농지 중 일부를 마을 농지로 내놓고, 새로운 농부를 받아들여 보증금을 받고 빌려주는 방식의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마을은 공공기금을 만들 수 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은 적정한 면적의 농지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한 김영대 농부는 "농사라는 공통의 생산 및 생활방식을 가진 마을 공유지를 통해 마을의 자치력도 복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발표 후 질의응답과 토론 시간에는 자연농의 개념, 가치뿐만 아니라 향후 농업의 변화, 자연농과 현실의 조화, 기술적인 방향,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자연농의 자세 등 농부 각자가 서있는 위치에 따른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갔다. 진행을 맡은 종합재미농장의 안정화 농부는 "토론자분들께 농사를 하며 지치지 않는 방법을 묻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토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쳐있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시간이 된 것 같다"며 "오늘 자리가 작은 시도이고 앞으로 어떤 영향을 만들어낼지 알 수는 없지만, 농사를 둘러싼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위기의 시대이지만 희망을 본 것 같다"고 전하며 포럼을 마무리했다.
농사펀드와 재단법인 숲과나무와 협력해 농부시장 마르쉐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파타고니아의 후원으로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되었으며, 농부시장 마르쉐의 유튜브 채널(
[YouTube])에서 다시 볼 수 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