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많은 것들을 바꾸었고, 더 많은 것들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도시농업 안의 활동들도 예외일 수는 없어서 당장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낼 여건이 되지 않는 이상 모두 멈추거나 미루어졌습니다. '마을장' 역시 멈췄습니다. 지역의 농부들이 생산한 작물들을 우리 마을 안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하며 상생을 꽃피워내던 마을장은, 비대면의 시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을장의 활로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서울의 대표적인 마을장을 일궈온 활동가들이 지난 10월 6일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사무실에 모여 깊은 고민을 안고 나눈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노원 마들장 - 김의동 운영위원장
은평 꽃피는 장날 - 문명희 실무팀장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 노경혜 매니저
금천 화들장 - 김선정 대표
진행 - 조은하 공동대표. 서울도시농업시민협의회.
마을장의 현재와 대안
조은하 - "코로나19로 인해 마을장들이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년이 되더라도 이 상황이 쉽게 끝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각 장터들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함께 나누면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문명희 실무팀장. 은평 꽃피는 장날.
문명희 - "은평구의 '꽃장'은 어렵더라도 올 한 해 어떻게든 장을 열어보려고 했습니다. 은평두레생협과 함께 5팀 내외로 작게나마 '반짝꽃장'을 세 차례 열었고, 7월에서야 장소를 둘로 나누어 그나마 제대로 된 장을 겨우 열었습니다. 하지만 두 곳에서 동시에 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이런 방식으로 지속하기는 어렵겠더라고요. 추진위 단위에서 논의 끝에 올해는 꽃장을 멈추기로 결정했습니다. 실무팀이 매주 회의를 하며 향후 꽃장을 다시 열 방법을 모색 중이에요.
일단은 내년에도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참여하고 계신 각 출점자분들의 공방이나 가게 등의 생업 공간을 활용해 각 동마다 거점을 만들어 소규모라도 매주 장을 여는 방법을 구상 중입니다. 집에서 가까워 걸어서 갈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꾸준히 열면 지속성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 솔직히 풀어갈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장을 정례화하고 전체적인 관리를 하려면 최소 2명 이상의 상근 실무자가 필요할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는 인건비 지원이 없다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어렵지만 작은 장들이라도 어떻게든 멈추지 말고 지속하자는 의지를 갖고 있어요. 올해 장을 열었을 때를 보면, 일단 장이 열리기만 하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매출 자체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꽃장 3년 차인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끈을 놓지 않고 지속성을 유지하면 단골이 찾아올 것으로 봅니다. 현실적으로는 서울시 차원에서 좀 더 유연한 형태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아요."
노경혜 매니저.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노경혜 -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에서 은평 꽃장을 지원한 것은 사회적경제기업들이 꽃장을 통해 판로를 창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작년에 천만원 수익을 넘기는 결과가 있었어요.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올해 큰 기대를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아쉬움이 큽니다. 7월에 진행한 꽃장은 두 군데로 나누어하다 보니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지 않아 기대에 미치지 못한 면이 있었어요. 이대로라면 마음은 있지만 센터도 공조직이다 보니 지원의 당위성이 떨어지게 되는 문제가 생겨서 고민입니다. 가능한 꽃장을 닫기보다는 되는 쪽으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센터에서는 기존에 발행하고 있는 은평 공동체 화폐 '평화' 사용처를 거점으로 삼아 꾸러미 상품 등을 기획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요. 센터가 마케팅을 담당해서 함께 꾸려가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온라인 장터도 얘기가 많이 되고 있는데, 온라인을 통하면 확장은 될 수 있지만 지역성을 살린다는 본질은 흐려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고민이 있습니다."
김선정 대표. 금천 화들장.
김선정 - "기본적으로 마을장은 일단 크면 클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얻어지는 것이 많거든요. 장의 규모가 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가능성은 커지게 돼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규모 장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거점 배송이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화들장'은 동네부엌 '활짝'을 거점으로 삼고 마을의 카페나 센터 등을 지점으로 삼아서 점차 규모를 늘려 거점 배송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장터에 작물을 공급해주고 있는 소농공동체인 '농부 발자국'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농부 발자국은 현재 서울 3곳의 거점을 돌며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는데, 6곳 정도가 되면 최소한의 비용은 충당이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금천구 내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규모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공급하는 분들의 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고, 실제로 거점들이 잘 받아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거점 배송 체계가 마련되면 공간을 죽이지 않고 사람들이 늘 찾을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의동 운영위원장. 노원 마들장.
김의동 - "장터를 운영하는데 '딱 이것이다'라는 해법은 없는 것 같지만, 장이 유지되려면 규모를 키우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장의 규모가 커야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마들장'에서 공연 등의 행사를 함께 여는 것도 규모를 키우기 위한 방편인데, 그러자면 시설비 등의 고정 비용이 들게 됩니다. 현재는 보조금이 있어서 운영이 가능하지만 자체적으로 하려고 하면 무리가 될 수밖에 없어요.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시의 지원이 끊기는 등의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텐데, 민간 직거래 장터의 존립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대규모의 대면 장터가 당분간은 어렵다고 보면 비대면을 통한 자립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데, 저희는 작은 규모로라도 올해 말에 유튜브 중계를 통한 온라인 장터를 생각해 보고 있어요. 구청의 도움 없이 직접 해보려고 합니다. 작은 공간을 마련해서 실시간 드라이브 스루로 주문한 작물을 가져가게 한다든가, 주문받은 작물들을 꾸러미로 만들어 노원에코센터 등에서 찾아가도록 한다든가 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정기적인 중계를 위한 비용과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따로 또 같이. 장터들이 협력할 수 있는 방법.
김의동 -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장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모와 함께 주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들에게 장의 주기를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해요.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대여섯 번으로는 인식시키기 어렵습니다. 횟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한데, 그러자면 고정비용 특히 진행요원들의 인건비 등의 문제가 생겨서 장터들이 개별적으로 실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규모와 주기성에 대한 공감이 있다면, 현재 있는 장들이 연계해 날짜를 정해서 늘 어딘가에서는 장이 열려 있을 수 있도록 돌아가면서 장을 여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제안을 드립니다."
김선정 - "규모와 주기성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돌아가면서 여는 것보다 아예 날을 잡고 한 날에 다 같이 동시에 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장이 산발적으로 열리다 보니 많은 소농들이 참여하는데 어려움이 있거든요. 장을 동시에 열어 공급 규모를 키우면 작은 소농 공동체들도 한꺼번에 공급에 참여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걸 통해 매출의 규모화를 이루어주면 작은 소농 공동체들을 장터가 견인하고 더 많은 농민들을 장터에 참여시킬 수 있습니다."
조은하 - "각 장터가 협력해 하나의 거점이 되어서 다 같이 한 번에 장을 열어보자는 아이디어인데, 좋은 것 같습니다. 장터 간의 협의를 통해 시범적으로라도 올해 안에 열어 볼 수 있을까요?"
김선정 - "아무래도 코로나19 상황에서 당장은 규모가 있는 장터를 여는 것 자체가 힘들 것 같습니다. 향후를 위해서라도 서울시와 함께 협의를 해야 할 텐데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그런 문제를 논의할 적극성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책 측면에서 서울시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거점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데, 현재와 같이 일시적으로 장이 열리고 철수하는 방식은 지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이 열릴 수 있는 거점이 필요합니다. 정책을 지원하는 시에서 장터가 열리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깊게 하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상황에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시와의 대화가 꼭 필요합니다."
문명희 - "서울시와의 협력과 소통을 좀 더 긴밀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터가 처음 만들어질 때의 의의나 지금까지 장터의 성과 등을 정리해서 시에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마을 공동체 활성화에 장터가 미치는 역할과 중요성을 알려서,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서는 큰 규모의 장터보다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만날 작은 단위의 거점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김의동 -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마주하면서 시와 공통의 방법을 도출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보조금에 의지하면서 장을 운영할 수만은 없지만, 당장 독자적으로 존립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시와의 대화가 꼭 필요합니다."
문명희 - "현재 서울시가 제시하는 한 달에 한 번 개최나 몇 팀 이상이 참가해야 한다 등의 정량적인 방식에 의한 예산 집행은 코로나19를 맞은 이상 앞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을 장터의 당위와 내년도의 사업에 대해 시와 얘기할 자리가 필요합니다. 거대 담론이 아니라 실천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방식으로 예산이 책정되고 집행된다면 장터의 운영은 어려워집니다.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새로운 형태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예산의 용도와 사용이 자유로워야 가능합니다."
노경혜 - "내년도 예산이 올해와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되고, 그 안에서 용도의 자율성을 줘야 새로운 기획이 유연하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에서도 정량적인 수치를 요구하려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치라는 것은 기준을 정해서 만들기 나름이기 때문에, 관 차원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선정 - "직거래 장터를 바라보는 시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의 소농들과 마을의 주민들이 만나서 서로 상생한다는 직거래 장터의 가치를 시에 전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시 담당자와 만나서 서로의 관점에 대해 대화를 해보고 싶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함께 갈 수 있는 방향을 찾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명희 - "오늘 같은 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도시농업 내부에서의 소통도 더 넓히면 좋겠습니다. 마르쉐를 비롯한 다른 마을장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은하 - "마을장의 자체적인 활로 개척이 아직은 어려운 상황이라면, 시 관계자와 협력을 위한 소통의 자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서울도시농업시민협의회 차원에서 서울시와의 대화 추진을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