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서울 양천구에 도시농업의 봄이 찾아왔다. 서울 서남권 최초의 도시농업공원인 양천도시농업공원이 개장하고 도시농업조례가 제정됐다. 도시농부학교가 처음 시작되고 도시농부들이 배출됐다. 양천구 도심 속 신트리공원도 이런 변화와 함께했다. 공원 내 자연학습장을 자원 순환형 도시텃밭으로 정비했다.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공원이 농사를 체험할 수 있는 생태교육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 신트리공원은 양천구의 도시농업 원년 선포와 함께 도시농업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받았다. 공원의 변화에 맞춰 아이들의 도시농부학교도 열렸다. 신트리꼬마농부학교가 그렇게 시작됐다.
2022년 마지막 ‘이달의 농부’에 신트리꼬마농부학교 학교장인 박은숙 도시농부가 선정됐다. 그는 아이들과 도시농부들 사이에선 ‘홍감자’라는 재밌고 친근한 이름으로 유명하다.
“처음 초등학교 텃밭 강사 활동 중에 텃밭 채소를 따서 애칭을 만들었어요. ‘감자샘~ 감자샘~’으로 불리었죠. 도시농업시민단체 활동 중에 한 분이 제 이름을 물어 감자라고 답했다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서 ‘붉은 감자’가 됐어요. 그래서 홍감자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어요. 토종씨앗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 토종감자 중에 홍감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 재밌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12월 27일 박은숙 씨가 작년 한 해 도시농업에 대한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은 신트리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신트리공원은 공원의 적지 않은 공간을 텃밭에 할애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했다. 공원의 일부를 텃밭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텃밭에 공원적 요소를 가미한 도시농업공원과는 또 달랐다. 관리와 점유, 농작물의 소유와 손실, 텃밭 이용자와 공원 이용자 간의 갈등 등의 문제로 텃밭과 공원은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기존 공원에 텃밭을 조성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극복한다면 얼마든지 정적인 공간이 아닌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생동감이 공간이 될 수 있다. 바라만 보는 공간이 아닌 시민이 참여하고 활동하는 공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텃밭 관리자의 역량과 역할이 중요하다. 신트리꼬마농부학교 학교장이자 텃밭 관리자이기도 한 박은숙 도시농부의 어깨가 더 무거웠다.
한겨울 삭막한 텃밭에 쌓인 눈도 박은숙 도시농부가 작년에 쏟은 땀과 노력을 모두 덮을 수 없었다. 푸르른 작물은 없지만 곳곳에 농사의 흔적과 텃밭의 형태가 보였다. 가지런히 놓인 틀밭은 어떤 형태가 남아 있었다. 텃밭의 두둑이 화분과 하트 모양이었다. 틀밭 옆 다른 텃밭들도 독특했다. 이랑과 고랑이 일(一)자로 반복되는 단조로운 두둑이 아니라 나뭇잎, 미로, 전통 문양의 두둑들이었다.
“공원 안에 있는 텃밭이다 보니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기존 두둑이 아닌 디자인이 들어간 정원텃밭을 구상했어요. 나뭇잎 텃밭, 미로 텃밭, 화분 텃밭, 전통 문양 텃밭 등으로 디자인을 한 거죠. 그랬더니 텃밭이 창의적이면서도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죠. 특히 가을에는 전통 문양 텃밭에서 착안해 배추와 쪽파. 시금치. 갓, 쑥갓 등을 문양에 맞춰 심었는데 배추 농사가 너무 잘 되었어요. 디자인 텃밭에 더해 배추와 작물들이 예쁘게 자라니 주민들의 칭찬이 자자했어요. 양천구 홈페이지에 칭찬의 글까지 올라왔다고 해요.”
정원텃밭은 단지 보기 좋게 하려고 한 것만은 아니었다. 공원과 조화를 이루는 정원텃밭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됐다.
“두 종류의 식물을 함께 심어 생육을 촉진하는 공영식물을 바탕으로 구상한 텃밭이기도 해요. 진딧물과 개미의 공생 관계처럼, 서로 어우러져 돕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성과 협동심을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식물의 다양한 색과 모양의 조합을 통해 아이들의 시각적, 미적 감각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재미도 느끼고, 창의성과 시각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작년에는 텃논도 특별했다. 10종이 되는 토종벼를 키웠다. 텃논을 토종벼의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여 공원과 잘 어울리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토종벼와 그 가치를 알리는 목적도 있었다.
“토종벼는 우보농장 이근이 농부의 토종볍씨를 나눔 받아 10종을 심었어요. 상자텃논에는 꼬마농부들이 볍씨 파종부터 손 모내기를 직접 하였습니다. 토종벼의 다양한 색에 주민과 꼬마농부들의 관심이 많았어요. 보리벼의 분홍색 까락은 무척 예뻤어요.”
공원은 시민들이 휴식과 놀이를 즐기고 공간이고, 특히 녹지가 부족한 도시에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박은숙 도시농부는 텃밭이 공원에 대한 시민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짜내고 정성을 기울였다. 봄에는 토종 순무를 심어 유채꽃처럼 노란 꽃을 볼 수 있게 하고, 가을에는 메밀을 심어 하얀 메밀꽃에서 가을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텃밭뿐만 아니라 텃밭 사이의 자투리 공간도 빼놓지 않았다.
“자투리 공간에는 쓰레기를 버리거나 방치되기 쉬운데 그런 공간에 꽃이나 나무를 심었어요. 꼬마농부들과 같이 한 거죠. 프로그램으로 꼬마농부들과 게릴라 가드닝 활동을 하건데 공원 내 시계탑 화단에 던져 화단이 풍성해져 인기 장소가 되었죠.”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도시농부
박은숙 도시농부는 올해로 도시농업을 시작한 지 10년을 맞는다. 처음에는 텃밭을 경작하는 평범한 도시농부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도시농업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시민들을 도시농부로 양성하는 농부의 농부가 됐다. 시작은 2014년 자기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였다.
“학교 텃밭을 관리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제가 힐링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날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 파견한 스쿨팜 강사가 학교에 오셨는데, 그분을 보고 나도 50대에는 저런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관악구에 도시농부학교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돼서 입학했어요.”
박은숙 도시농부는 스스로를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했지만, 도시농업 일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식생활 개선 프로그램이나 자원순환 활동에 보조강사를 자원해서 맡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박은숙 도시농부의 적극성과 책임감을 높이 평가해 학부모 텃밭동아리 운영을 맡겼고, 그는 3년 동안 동아리를 이끌었다.
박은숙 도시농부는 자신을 “만들어진 농부”라고 말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릴 적에 농사를 체득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대신 그는 계속 공부하면서 스스로를 도시농부로 만들어갔다. 관악도시농부학교를 나오고 서울시도시농업전문가 과정 수료한 후에는 방송통신대 농학과에서 공부했다. 토종종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인천토종학교도 졸업했다. 현재는 논생태해설사 심화과정을 듣고 있다. 공부하면서 복지원예사와 유기농업기능사, 도시농업관리사, 종자기능사 자격 등을 따고 현재는 식물보호기사에도 도전하고 있다.
그가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 온 것은 도시농업에서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도시농업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사람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점차 현실화하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시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도시농업을 활성화하는 도시농부가 되고 싶었다.
“기후위기시대에 도시농업이 꼭 필요해요. 도시에 자연스럽게 텃밭과 정원, 숲이 조성되고 그 안에 곤충, 양서류, 조류, 야생동물이 살면서 도시의 생물 다양성을 높여줄 수 있고요. 도시텃밭은 탄소를 줄여주고, 도시의 온도도 낮춰주어 시원한 도시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음식물쓰레기를 퇴비화하고 자원순환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신트리꼬마농부학교
박은숙 도시농부는 신트리꼬마농부학교의 교사로서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10개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는 대략 150명의 꼬마농부들에게 텃밭농사, 생태교육, 텃밭놀이 등을 가르쳤다. 총 26주 동안 26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꼬마농부들은 이른 봄 직접 텃밭을 가는 것부터 시작해 벼와 잎채소, 열매채소의 씨를 뿌리고 키워 수확하고, 늦가을에는 내년 봄에 자랄 앉은뱅이밀 씨앗을 뿌리는 것까지 한해 모든 농사를 체험했다. 박은숙 도시농부는 매주 다른 다채로운 텃밭 프로그램과 놀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오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텃밭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업에 쓸 재료를 준비하느라 정말 바쁜 한 해를 보냈다.
“5월에 만보기로 재어보니 여기서 일을 하면서 하루에 2만 5천 걸음이나 걸었더라고요.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일이 너무 즐겁고, 저도 즐겼던 것 같아요.”
박은숙 도시농부가 신트리꼬마농부학교에서 특히 신경 썼던 것은 아이들이 자연의 소중함을 느껴 자연을 지키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그리고 도시농업을 통해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플라스틱 컵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커피 찌꺼기를 활용해 병해충을 방제하고 퇴비로도 활용하도록 했다. 기후위기에 대해 알려주며 종이 휴지를 사용하지 않고 손수건을 사용토록 하기 위해 손수건 염색도 꼬마농부들과 함께했다. 토종종자에 대해 교육으로 토종벼를 키우고, 다양한 토종종자에 대해 알려주고, 쥐이빨옥수수로 팝콘을 만들어 먹는 놀이도 했다.
박은숙 도시농부는 텃밭 디자인, 자원순환, 토종씨앗, 생태교육 등 그동안 자기 계발을 통해 쌓아온 모든 역량을 신트리꼬마농부학교에 쏟아부었다. 그래서 도시농부로서 활동했던 어느 해보다 특히 많은 보람을 느꼈다.
“여태까지 배웠던 모든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점이 너무 좋았고 행복했습니다. 사실 스쿨팜이나 자유학기제 강사를 가봤지만 이렇게 텃밭을 디자인하고 프로그램을 모두 구상해서 하는 경우가 그렇게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는 제가 자유롭게 마음대로 기획하고 연출했던 것 같아요. 원래 학교는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교사가 보조하는 역할인데, 제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어요. 계속 행복했다고 말하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뭔가 완성된 느낌이 들어요. 아이들과 함께해서 얻은 성취감이죠.”
그래서 신트리꼬마농부학교의 마지막 수업이 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한 해 동안 정들었던 아이들을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꼬마농부학교 마지막 프로그램을 하면서 아이들로부터 감사편지를 받았을 아쉬움이 컸어요. 마지막을 느꼈는지 제 등 뒤에서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은 아이가 있었거든요. 평소에 제 눈에는 띄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텃밭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서 저와 텃밭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많이 했나 보더라고요. 앞으로는 아이들과 더 마음이 통하는 따뜻한 대화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처음 신트리꼬마농부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흙을 만지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어엿한 꼬마농부도 성장했기 때문이다. 박은숙 도시농부는 자신이 도시농업 교육을 받기 전과 후의 삶이 달라졌듯이 아이들도 신트리꼬마농부학교의 전과 후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꼬마농부들은 미래의 희망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일, 도시농업 교육에 매진할 계획이다.
“벌써 도시농업 10년 차가 되어 갑니다. 아직도 배우는 도시농부로서 도시농업에 처음 발을 내딛는 새내기 도시농부들에게 도시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실천하는 도시농부가 될 수 있도록 소통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최승덕 책임편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