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긴 겨울을 보내고 하늘이 차츰 맑아지는 청명(淸明)을 맞아 양평의 고즈넉한 산자락 어느 한옥 마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바로 '토종벼를 지키고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
양평에서 재배된 토종벼 ©서울농부포털지난 4월 5일 양평군의 맑은숲 한옥펜션 내 대강당과 저잣거리에서 '제7회 전국 토종벼 농부 대회(이하 '토종벼 대회')'가 열렸습니다. 토종벼를 널리 알리고 나누기 위해 '전국토종벼농부들'과 '우보농장'이 매년 개최해 온 '토종벼 대회'는 지난해부터 양평군과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양평군 토종자원 클러스터'의 설립과 함께 양평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
[토종볍씨의 산실 '우보농장'이 새로운 터에 자리잡았다.])
이 날 '토종벼 대회'는 "토종벼의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주제로 열린 '토종벼 심포지엄'과 '토종쌀 막걸리 시음회', '토종 볍씨 나눔' 등의 행사로 구성되었습니다.
먼저 맑은숲 한옥펜션 대강당에서 열린 '토종벼 심포지엄'은 황의충 동네정미소 전 공동대표의 진행으로 7명의 연사가 나서 토종벼와 토종쌀의 의미와 재배, 가공과 유통의 가능성에 대해 각자의 활동 경험과 의지를 전했습니다.
'토종벼 심포지엄'에서 발표에 나선 연사들 ©서울농부포털'양평 토종벼 단지 조성과 그 의미'라는 제목으로 발표에 나선 양평군 토종자원팀의 백태현 팀장은 지난 1년간 운영된 '양평군 토종자원 클러스터'의 현황과 성과, 향후 방향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백태현 팀장에 따르면, 현재 양평군은 양평군 청운면 일대에 32,753㎡ 규모의 토종자원 보존 거점 기반을 조성했고, 지역 농가와 협력해 마련한 10.5ha 규모의 채종포에서 264 품종의 토종벼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백태현 팀장은 올해 토종벼의 유통・판매 플랫폼을 만들어 생산-가공-유통-서비스 체인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향후 양평군을 제2의 친환경농업특구로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단양 마중물자연음식연구소의 김서진 선생은 '토종쌀의 특징과 밥맛'이라는 제목으로 35종의 토종쌀로 직접 밥을 지어먹어본 경험을 발표했습니다. 토종쌀 각각의 이름의 유래를 생각해 보고, 맛과 향, 특징 등을 전하면서 그에 맞는 활용법까지 고민했습니다.
인천 도시농업네트워크의 전경순 활동가는 '토종벼와 도시농업'이라는 제목으로 인천 사리울초등학교에서 일 년간 진행한 논 학교 프로그램을 소개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논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토종벼의 한살이를 경험했던 소회와 아이들이 보인 반응, 교육적 효과 등을 전했습니다.
홍천의 류정렬 농부는 '자급하는 소농과 토종벼'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며, 소농으로서 토종벼를 재배하고 있는 이유와 가능성에 대해 "받은 씨앗대로 다음에 다시 받을 수 있는 토종벼가 소농에게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밝혔습니다. 류정렬 농부는 "긴 세월 씨앗과 농부가 상호작용한, 자연과 인간의 소중한 공동 자산인 토종벼를 통해 인류의 생존과 경이로운 삶의 복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토종벼 심포지엄'에서 참가자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창원의 우봉희 농부는 '토종벼와 자연재배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며, 자연농법을 통한 토종벼의 재배는 자연과의 공존과 함께 충분한 수확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습니다. 자연성 회복의 차원에서 무투입을 원칙으로 하는 자연재배를 하고 있는 우봉희 농부는, 우리 풍토에 맞춰져 있는 토종벼야말로 자연재배와 꼭 맞는 작물이라고 소개하며, 이를 통해 앞으로도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지 않는 농사를 짓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밀양의 김진한 농부는 '토종벼로 이루는 다랑이논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다랑협동조합'의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김진한 농부는 다랑협동조합을 통해 경남 지역의 방치된 다랑논을 보전해 토종벼를 자연재배로 복원하고 있다고 밝히며, 토종벼의 다양성과 다랑논의 활용성을 접목해 개인과 공동체, 도시와 시골을 잇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행사를 주관한 우보농장의 이근이 대표는 '토종벼 가공과 유통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토종벼를 활용하는 사례들을 전했습니다. 발표에서 이근이 대표는 한미 정상회담의 국빈 만찬에서 사용된 남과 북의 토종벼를 소개하고, 토종벼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화장품, 초콜릿, 약재, 아이스크림, 수제 맥주 등의 실제 상품화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이근이 대표는 "현재 토종쌀은 일반적인 유통 구조로는 도저히 가격을 맞출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고, 오늘 발표한 사례들은 그 가능성을 찾기 위한 과정 중의 일부"라고 밝혔습니다. 이근이 대표는 특히 토종벼의 확산과 새로운 판로 개척을 위해 만든 '토종쌀 꾸러미 절기 구독'(
['토종쌀 꾸러미 절기 구독' - 집에서 편하게 다양한 토종쌀을 맛보는 방법])을 소개하며 올해 더 많은 구독자를 모집하는 것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심포지엄에 이어 저잣거리에서는 '토종쌀 막걸리 시음회'와 '토종볍씨 나눔' 행사가 열렸습니다.
'토종쌀 막걸리 시음회'는 토종벼 활용의 가능성을 살피는 일환으로 양평, 고양, 서울, 제천 등에서 활동하는 12명의 주모가 토종벼 22 품종으로 빚은 22가지 막걸리를 내놓고 각자의 맛을 품평받는 자리였습니다. 전문 양조장을 운영하는 주모부터 농사짓는 틈틈이 집 안 한 편에서 막걸리를 빚어낸 주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맛이 참석자들의 혀 끝을 간질였습니다.
'토종쌀 막걸리 시음회'에는 22 품종의 토종쌀로 빚은 22종의 막걸리가 선을 보였다. ©서울농부포털시음회와 함께 한쪽에서는 '토종볍씨 나눔' 행사가 열렸습니다. 매년 '토종벼 대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이어 오고 있는 행사로 나눔을 통해 토종벼의 확산과 보존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해 양평에서 재배한 품종 중 우보농장이 선정한 메벼 29 품종, 찰벼 13 품종, 유색미 7 품종 총 49개 주력 품종의 볍씨를 나누었습니다.
'토종볍씨 나눔' 행사에서는 메벼 29 품종, 찰벼 13 품종, 유색미 7 품종 총 49개 품종의 볍씨를 나누었다. ©서울농부포털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