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회색의 콘크리트와 버려진 도시의 공간을 생명이 자라는 녹색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민들의 작은 발걸음을 시작으로 서울지역에 20여 개의 도시농업단체가 활동하고 있고, 이들이 나아가 서울의 생태, 환경, 공동체의 복원을 꿈꾸며 시민네트워크 서울도시농업시민협의회(이하 시민협)를 구성했습니다.
저 또한 같은 꿈을 가진 도시농부로 노원도시농업네트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시민협과 맺은 인연을 통해 서울시농업기술센터 학교텃밭 원예프로그램 강사로 학생들을 지도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2년 동안 서울봉화중학교 <텃밭 가꾸기 동아리> 학생농부들과 학교텃밭 활동을 통해 흙과 생명의 소중함, 노동과 결실의 즐거움을 배우고, 지구를 위한 한 걸음을 실천하며 행복한 성장을 하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학교텃밭, 어우러짐 속에서 텃밭의 가치를 배운다2020년 봄은 전례 없는 팬데믹 현상으로 등교가 미뤄지면서 학생 없는 학교텃밭으로 존재하다가 6월이 되어서야 학생들과의 첫 만나게 됐습니다. 첫 수업에서는 텃밭 동아리를 지원하게 된 이유와 텃밭활동의 경험을 물어보는데,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왔다, 다른 동아리에 탈락해 등 떠밀려 왔다, 도시에서의 농사는 아주 생소하다는 대답들 사이에 학교텃밭이나 주말농장을 잠시라도 경험해본 친구들은 스무 명 학생 중 두세 명에 불과한 현실입니다.
그럼 학교텃밭과의 첫 만남이니 학생들에게 도시농업의 가치, 작물 재배에 관해 가능한 쉽게 재미를 더해 설명해보려 하지만, 조금만 지나도 지루한 표정들이 역력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우선 교실을 벗어나보자!’는 심사로 텃밭에 나가 15년 생애 처음으로 상추를 따보고, 키보다 큰 지주대를 있는 힘 다해 세우고, 묶어주고, 호미질에 놀란 지렁이까지 만나면 시끌벅적해지며 활기가 돕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어도 얼마 만나지 못해 어색함이 감돌고 또 각반에서 모여 서먹했던 친구들은 자연스레 텃밭에서 하나로 어우러지고, 장황한 설명보다 몸으로 체험하며 텃밭의 가치를 절로 알게 되는 순간들입니다.
텃밭에서 만나는 시간들이 늘어가며 모두 초록풀로만 보이던 텃밭 작물들을 구분하고 특성에 맞게 돌보는 과정 속에서 차츰 노동의 즐거움도 알아가니 이제 수확의 기쁨을 맛볼 시간. 방금 교실에서 감자의 한 살이를 사진으로 설명 들었으나, 진짜 땅 속에서 줄줄이 나오는 감자를 보물이라도 본 듯 캐내며 어느새 땅강아지가 된 아이들을 보면 지금 여기가 도심 속 학교텃밭이 맞는가 싶고, 한 친구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자 땀으로 얼룩진 얼굴들에 웃음과 보람이 넘쳐납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체험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꿈과 끼를 펼친다학업 활동은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현격히 활동량이 줄어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동아리수업을 지도하다보니 무엇보다 흥미와 재미를 일으켜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이고 정서적 효과를 얻으면서 여기에 진로탐색의 활동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유연한 프로그램 구성을 고민하게 됩니다.
동아리 활동의 목적에 부합해 진로탐색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농업의 중요성과 농업기술의 발달에 대해 알아보고 농업생명과학 분야의 직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이를 원예활동과 연계하여 사람과 자연에 해를 주지 않는 식물영양제와 천연방제제를 제조해보고, 텃밭 생태계 속에서 익충을 유인하고 해충을 쫒는 방법을 배워봅니다. 이 외에도 천연염색, 누름꽃 작품 만들기, 텃밭 수확물로 간단한 요리는 물론 수세미와 메리골드를 넣어 허브비누를 만들며, 자연과의 공존 속에서 힐링과 치유를 경험하면서 직업체험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의 자원순환실천으로 커피찌꺼기로 해충을 쫒고, 퇴비를 만들어 작물의 성장을 돕는 활동과 버려지는 빈 병과 아이스팩을 이용해 방향제를 만드는 다양한 체험들을 통해 꿈과 끼를 발휘하며 뿌듯해하는 표정들 속에서 한층 높아진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학교텃밭 체험의 기회가 많아지고, 지속성 있는 교육으로 행복한 성장이 이루어지길이른 봄 황량한 텃밭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 싱그러운 텃밭을 일궈낸 친구들도 가을텃밭의 김장채소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끝없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놀라는 모습들이 재밌습니다. 간간이 나와 배추벌레잡이와 부지런한 발자국 소리를 들려준 친구들 덕분에 장미꽃보다 예쁘게 결구를 시작한 배추와 땅을 박차고 나온 무는 전교생의 눈과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고, 학교의 자랑거리가 됐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져 가을 햇살 아래 눈부시게 웃고 있는 우리 도시농부들처럼 더 많은 학생들에게 학교텃밭 체험의 기회가 제공되고 지속성 있는 교육을 통해 보람과 즐거움을 맛보며 행복한 성장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시민협 역량강화프로그램을 통해 발전을 꾀하다서울 각 지역에서 활동 중인 시민협의 학교텃밭 강사들은 만남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도 한 달에 한 번 비대면회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유대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원옥분 대표의 진행으로 수업에 유용한 정보와 애로사항을 나누고 개선책을 함께 모색하며 여기에 적절한 수다까지 더해지면 친밀감은 절로 형성됩니다. 이 회의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텃밭활동을 비롯해 도시텃밭에 적용 가능한 주제들로 의견을 수렴해서 지난 8월에는 <2021 강사역량강화 워크숍>을 실시했습니다.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전문강사들을 초빙하고, 시민네트워크답게 학교텃밭과 도시농업 강사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기회를 제공했으며, 강사로의 발전을 꾀하는 유익한 시간이 됐습니다.
운동장마저 인조잔디로 덮여가는 요즘 학교텃밭은 교육적, 사회적, 정서적으로 미래세대에게 요구되는 많은 가치를 담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그 필요성의 인식이 확대돼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과 텃밭에서 함께 땀 흘릴 수 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즐거운 고민을 할 수 있는 학교텃밭 강사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모든 학교에 텃밭이 생기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이은숙 도시농부기자단(서울도시농업시민협의회 텃밭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