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하고 가세요."
서교동 경의선 책거리를 따라 늘어선 건물 틈 사이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능숙한 듯 아닌 듯, 수줍은 듯 아닌 듯. 말을 걸어온 목소리가 벌려놓은 좌판의 물품들이 가지각색이다. 말통에 담긴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부터, 수세미, 토마토, 양파 같은 농산물이 있는가 하면, 수제 면 마스크, 대나무 칫솔, 생분해 치실, 꾸찌뽕 발효액까지 있다. 이건 무슨 조합인가? 하얀 다마스에 초록 걸개가 걸려 있다. '움직이는 소분 상점. 그린 오큐파이(GREEN OCCUPY)'
©서울농부포털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제로 웨이스트는 다음과 같다. '제로 웨이스트: 모든 제품, 포장 및 자재를 태우지 않고,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토지, 해양, 공기로 배출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생산, 소비, 재사용 및 회수를 통해 모든 자원을 보존하는 것'
[제로 웨이스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환경 문제가 나날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해가고 있는 상황을 맞아, 스스로 해법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로 웨이스트 상점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을 배제하고, 친환경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제품만을 판매하며, 제로 웨이스트를 삶의 방식으로 스며들게 만드는 상점들은, 거대한 무언가보다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방법에서부터 환경 보호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용기를 각자 가져와서 소분도 직접 하고 무게도 직접 달아야 한다. ©서울농부포털"망원동에 살고 있습니다. 동네에 제로 웨이스트 상점이 있어서 이용하기 시작했고, 제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었죠."
환경 단체에서 일하기도 했던 송윤지 씨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로 웨이스트 상점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네 상점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SNS에서는 '우리 동네에도 상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반응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수익이 보장될 수 없는 조건에서 다양한 지역에 오프라인 상점이 갖춰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죠. 더군다나 지금 같은 코로나 19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생각해봤죠. '그러면 우리가 직접 가면 안되나?'"
송윤지 씨는 친구들과 함께 움직이는 소분 상점 '그린 오큐파이'를 기획했다. 기존의 제로 웨이스트 상점 대표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재단법인 '숲과나눔'으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냈다.
"곳곳으로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자는 의미에서 작은 승합차를 이용한 상점으로 기획했어요. 다마스는 일단 보기에 위협적이지 않잖아요. 상품은 기존 상점들에서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제품들을 추천받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저희가 직접 사용해 보고 좋았던 제품들을 가져왔습니다. 농산물은 경남 산청에서 지내고 있는 친구를 통해 지역 농부 생산자 플랫폼인 '농부애곳간'과 연계해서 직거래로 매주 공급받고 있고요."
다마스의 트렁크에는 가지각색의 친환경 제품들이 담겨 있다. ©서울농부포털경남 산청에서 매주 신선한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받고 있다. ©서울농부포털'그린 오큐파이'는 상점을 제대로 해보려는 생각으로 사업자 등록도 마쳤다. 하지만 '그린 오큐파이'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품을 판매하는 것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포장재나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가장 바라는 것은 '그린 오큐파이'를 통해서 사람들이 다른 방향의 삶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영감을 얻게 되는 것이에요. 제로 웨이스트 상점에 시간을 내서 찾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저희의 대상은 그런 분들은 아니에요. SNS도 안 하시고 제로 웨이스트가 뭔지도 모르시는, 그냥 이 앞을 지나가시는 할머니, 아주머니께 '집에서 다 쓰신 세제 플라스틱 용기나 페트병 있지 않으시냐. 그걸 가져와서 세제를 무게만 달아서 가져가시면 된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너무 심각하니까'라고 얘기할 기회를 만나길 바라는 거고, 오며 가며 '통수세미가 뭐야? 왜 세제를 저렇게 팔아?' 하는 질문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목적이에요. 그래서 길거리에 상점을 여는 것이고요. 캠페인의 성격이 더 강한 활동입니다."
©서울농부포털'그린 오큐파이'의 목표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제로 웨이스트를 알리는 것이다.
"움직이는 상점의 장점이지요. 제로 웨이스트 상점이나 문화가 아직은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만 봐도 주로 마포나 서대문 지역 이외에는 별로 찾아보기 어렵고요. 앞으로 곳곳을 다니면서 이런 문화에 생소한 분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가능성을 보여드리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그린 오큐파이'의 올해 상반기 일정은 이번 주가 마지막이다. 4월 24일 토요일에 페이퍼넛츠(11시-14시)와 오브젝트 서교점(15시-18시)에서 다마스의 트렁크가 열린다. 하반기에는 SNS를 통해 요청받은 지역으로 직접 출동할 예정이다. 공간이 있고 여건이 되면 길거리형 워크숍이나 캠페인, 쓰레기 상담소 같은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해볼 계획이다.
"아쉽지만 상반기 일정은 4회 차로 마무리됩니다. SNS
(https://www.instagram.com/greenoccupy)를 통해 계속 요청도 받고 소식도 전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팔로우 부탁드립니다. 상반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반기에 더 알차게 준비할 테니 기대 많이 해주세요."
함부로 버리지 않고 순환시킨다. 도시농업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플라스틱 자재 사용을 지양하고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땅을 살리는, 보다 친환경적인 농법을 고민한다. 어찌 보면 제로 웨이스트는 이미 도시농부의 삶 속에 들어와 있다. 좀 더 확장된 실천의 형태로 제로 웨이스트 상점을 이용해 보는 건 어떨까. 상반기 마지막 다마스와 그들을 만나고 싶다면 이번 토요일, 서교로 달려가 보자.
©그린오큐파이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