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숲의 개념
먹거리숲은 수목과 화초, 농작물이 조화롭게 다층 구조를 이루어 다양한 먹거리를 생 산하는 숲을 말한다. 먹거리숲은 Food Forest를 번역한 용어로 비슷한 개념이 여럿 있다. 숲 텃밭, 숲 정원 또는 숲밭(Forest Garden)은 먹거리숲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작은 규모의 산림농업 형태로 자연적인 숲의 생태를 농경에 적용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복합경작(Polyculture)은 다년생 식용작물을 골고루 섞어서 기르는 것을 말한다. 산림농업(Agroforestry)은 동일한 경지에서 농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 수목 재배를 동 시에 하는 집약적인 토지이용 시스템을 일컫는다. 이외에도 임업과 농업을 결합한 방식인 임간 경작(Silvoarable System)과 임업과 축산업을 결합한 방식인 임간 축산 (Silvopasture)도 넓게 보면 먹거리숲의 범주에 포함된다.
먹거리숲은 세 가지 원리에 바탕을 두어 조성되고 운영된다. 첫째, 퍼머컬처(Permaculture)의 원리이다. 퍼머컬처는 영속적인 문화(Permanent Culture)와 영속적인 농업(Permanent Agriculture)을 줄인 합성어이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패턴과 관계를 모방해서 지역에 필요한 음식, 섬유,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설계한 경관을 말한다. 다년생 작물과 자가 파종하는 작물 위주로 배치하여 경작지 스스로 생장하고 발전하는 시스템이 곧 퍼머컬처이다. 둘째, 7층의 원리이다. 먹거리숲은 7단계의 층상구조를 이룬다. 장소의 여건에 따라서 5층이 되거나 3층이 될 수도 있다. 일정 장소의 수직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먹거리숲의 핵심 개념이다. 7층은 대교목층(견과류 나무와 과일나무), 소교목층(왜성 과 일나무), 관목층(블루베리 등 각종 베리류와 꽃나무), 초본층(채소, 꽃, 허브), 지피식물 층(딸기, 클로버), 덩굴층(포도, 오이, 머루, 다래), 뿌리층(마늘, 양파, 감자, 무)으로 이루어진다. 셋째, 길드(Guild)의 원리이다. 길드는 서로 조화롭게 짜인 식물과 동물의 모임을 말한 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식물 3종 세트를 세 자매 길드(Three Sisters Guild)라고 하는데 강낭콩, 옥수수, 호박은 잘 알려진 세 자매 길드 중 하나이다. 세 자매를 함께 심으면 이 작물 중 어느 하나를 비슷한 면적에 격리하여 심은 경우보다 먹거리가 더 많이 생산되고, 물과 비료는 더 적게 든다. 보통 과일나무를 기준으로 하여 배나무 길드, 사과나무 길드, 복숭아나무 길드가 만들어진다. 길드는 다양한 기능을 하는데, 질소고정 식물은 질소를 공급하고, 꿀벌 유인 식물은 꽃가루받이에 도움을 주고, 피복식물은 토양표면을 빽빽이 덮어 잡초 발생을 억제한다.
먹거리숲의 역사
최근 들어 먹거리숲이 도시농업의 새로운 형태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 위기 시대에서 우리나라 도시농업이 정체기를 맞고 있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먹거리숲이 미세먼지를 줄여주고 숲 자체가 탄소 흡수원 역할을 한다. 다양성과 활력을 잃어 가고 있는 우리나라 도시농업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방식이 먹거리숲이다. 여기서 이러한 먹거리숲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본다. 먹거리숲은 열대지방에서 수 천 년 동안 존재해오던 방식이다. 마야 문명시대의 밀파 (milpa) 시스템은 화전 방식의 일종으로서 먹거리숲의 시초로 받아들여진다. 1980년대 영국인 로버트 하트(Robert Hart)는 열대 먹거리숲 개념을 온대지방의 정원에 이식하면서 숲 정원 가꾸기(Forest Gardening)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현대적 의미의 먹거리숲의 역사는 생각보다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관련 문헌이나 현장을 조사해본 결과,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나 접근방법에서 우리나라의 산나물 문화와 외국의 먹거리숲 시스템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크고 작은 나무와 머루와 다래 등 넝쿨식물과 각종 산나물 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경관이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이러한 경관이 곧 먹거리숲이 라고 볼 때, 한국식 먹거리숲은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녹아들어 전해오는 퍼머컬처라고 말할 수 있다.
◇ 먹거리숲의 해외사례 : 미국
헤이즐우드(Hazelwood) 먹거리숲
200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 헤이즐우드 지역에 있는 공한지를 먹거리숲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지방자치단체와 다른 유관 단체와 협의하면서 먹거리숲이라는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는데 거의 1년이 걸려 2010년 봄과 여름에 걸쳐 식재가 이루어졌다. 890㎡ 면적에 견과류, 과일나무, 베리류, 허브류 등 100종의 식물이 심어졌다.
먹거리숲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이 장소를 식량 생산의 공간이자 학습과 공유의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였다. 재정 지원이 거의 없고 상근직원도 없으며 외부로부터 자원 투입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자급적이고 지속가능한 먹거리숲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다.
비컨(Beacon) 먹거리숲
미국 시애틀에 있는 비컨 먹거리숲은 2009년에 조성 논의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전적으로 지역사회단체 소속 자원봉사자가 주도하는 활동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비컨 먹거리숲 집단농장(Food Forest Collective)이라는 이름 아래 2명의 임시직원이 있는 등록 비영리기관이 되었다. Seattle Public Utilities가 소유한 14,160㎡면적의 공유지에 2012년에 먹거리숲 조성 준비 작업이 시작된 이후, 1단계 조성 작업이 2013년 가을에서 2014년에 걸쳐 이루어졌고 2단계 조성작업이 2018년부터 시작되었다. 2018년 1월 현재 7,000㎡에 먹거리숲이 조성되어 있다. 2018년에 과일, 채소, 허브를 포함하여 약 1.26톤을 수확했다.
◇ 먹거리숲의 해외사례 : 영국
다팅턴(Dartington) 먹거리숲
마틴 크로포드(Martin Crawford)가 1994년에 영국 토트네스에 있는 슈마허 칼리지 부지 내에 8,000㎡ 면적의 먹거리숲 조성을 시작하였다. 그는 2011년 토트네스 인근에 43,300㎡ 먹거리숲을 추가로 조성하고 온실형 먹거리숲을 만드는 등 크고 작은 먹거리 숲을 계속해서 조성하고 있다.
레딩(Reading) 시 옥상 먹거리숲
2001년에 영국 레딩 시에 있는 RISC(Reading International Solidarity Center)의 약 200㎡(32m×6m) 면적의 옥상에 정원을 만들자는 논의가 건물 누수 문제 해결방안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계획 주도자들은 옥상정원 조성계획에 로버트 하트의 먹거리숲 아이디어를 채택하기로 했다. 현재 185종 이상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으며, 옥상 면적의 반 정도 되는 100㎡는 상자텃밭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 이 글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가 발간한 도시농업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이창우 한국도시농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