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텃밭 ©서울농부포털비가 내리면, 이런 몽글몽글한 풍경이 떠오릅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할 무렵, 하늘에서 톡, 톡, 가벼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소나기였지만, 누구 하나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며 번지는 미소가 가을밤의 공기를 따스하게 감쌌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비는, 산성비, 황사비와 같이 빠르게 피해 가야 하는 '더러운 비'나 폭우, 태풍, 가뭄 같이 부정적인 기후 변화의 느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많이 와도 걱정이고 안 와도 걱정인 비는 어느새 낭만보다는 애증의 대상이 된 것만 같습니다.
도시의 삶 속에 스며든 이런 인식을 바꾸자며 빗물을 '하늘물'이라는 새 이름으로 부르자는 '물 문화운동'이, 단순한 구호를 넘어 서울 노원구 불암산 자락에서 시민 축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0월 10일(토) 저녁, 노원구 천수텃밭 숲 속에서 시민단체 녹색어울림이 주관한 '우리 동네 환경 예술제'의 첫 번째 행사, '하늘물 환경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천수텃밭 숲 속에서 '우리 동네 환경 예술제'의 첫 번째 행사, '하늘물 환경 영화제'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하늘물' 운동은 2019년 제주도 탐나라공화국에서 시작됐습니다. 강우현 탐나라공화국 대표, 한무영 전 서울대 교수, 이은수 녹색어울림 대표 등이 "빗물은 관리로, 하늘물은 문화로"라는 주제로, 빗물을 '하늘에서 내려온 물'이라는 뜻의 '하늘물'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바꿔 부르면서, 빗물을 단순히 관리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문화로 바라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운동입니다. '하늘물 환경 영화제'의 1부는 이런 운동의 취지를 말이 아닌 체험으로 만나도록 꾸려졌습니다.
천수텃밭 숲 속에서 '우리 동네 환경 예술제'의 첫 번째 행사, '하늘물 환경 영화제'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오후 5시, 천수텃밭 숲 속에서 시작된 1부의 중심은 '하늘물'을 직접 확인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맛 블라인드 테스트와 빗물 산성도 체크는 '산성비', '더럽다'는 빗물의 오래된 이미지가 사실과 얼마나 맞는지 스스로 따져 보는 코너였습니다. 녹색어울림은 빗물도 수돗물이나 생수처럼 정수 과정을 거치면 마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정수한 빗물 샘플을 전문 수질측정기관에 보내 시험성적서를 받았고, '먹는 물 수질 공정 시험 기준' 46개 항목에서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난 9월 노원수제맥주축제에서도 '하늘물'과 시판 생수, 수돗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열었는데, 참가 시민들은 '하늘물'을 가장 맛있는 물로 꼽았습니다. 이날 천수텃밭을 찾은 시민들도 눈을 가린 채 여러 물을 맛보며 어느 쪽이 '하늘물'인지 가늠해 봤습니다.


이은수 녹색어울림 대표가 시민들에게 '하늘물'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하고, '하늘물'로 직접 양조한 '하늘물 맥주'를 소개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










'하늘물 환경 영화제'에서는 이끼 관찰, 장수하늘소 관찰, 표본 전시, 식물로 곤충 그리기, 도토리 팽이 만들기, 이끼 테라리움, 떡메 치기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이 진행됐다. ©서울농부포털


'하늘물 환경 영화제'에서는 다양한 체험 활동과 함께 투호 던지기, 비석 치기, 제기 차기 등의 놀이도 진행돼 시민들에게 자연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서울농부포털
본격적인 영화제에 앞서 이은수 녹색어울림 대표가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오후 7시부터는 2부 환경 영화제가 이어졌습니다. 상영작은 새만금 간척으로 사라져 가는 마지막 갯벌 '수라'와 그곳을 지켜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수라'였습니다. 영화는 20여 년간 활동해 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과 함께 걸으며, 방조제 공사로 물길이 끊긴 지 15년이 넘도록 작은 '수라갯벌'에 기대어 살아가는 저어새, 넓적부리도요, 흰발농게 같은 멸종위기 동물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아름다운 갯벌에 닥친 공항 건설이라는 대재앙을 막아내고 지키려는 사람들의 생생한 현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황윤 감독이 7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은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2023년 6월 정식 개봉해 그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다큐멘터리 '수라'를 관람하고 있다. 천수텃밭 숲 속 야외무대는 영화관 못지 않은 영상과 음향 시스템으로 관객들에게 더 깊게 내용을 전달했다. ©서울농부포털이날 숲 속에서 함께 본 두 이야기는 사실 하나의 물줄기로 이어졌습니다. 하늘에서 내려 땅을 적시는 '하늘물'과, 강을 따라 흘러 마지막으로 닿는 갯벌 '수라'는 같은 물의 시작과 끝입니다. 빗물 한 방울을 소중히 여기자는 '하늘물' 운동과, 그 물이 흘러드는 갯벌 생태계를 지키자는 '수라'의 메시지는 결국 "물 한 방울도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하나의 흐름으로 모입니다. 천수텃밭 숲 속에서 물맛을 보고 산성도를 확인하며 물의 소중함을 되새긴 시민들이 곧이어 그 물의 끝자리인 갯벌 이야기를 영화로 만난 것은, 이 흐름을 한자리에서 체감하게 한 구성이었습니다.
영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다큐멘터리 '수라'를 관람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이은수 녹색어울림 대표는 "지난 6월 반딧불이 체험 행사에 많은 시민이 찾아준 데 힘입어 가을에는 숲 속에서 편안하게 체험하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리로 '하늘물 환경 영화제'를 마련했다"고 전했습니다. 서울특별시, 노원도시농업협의회, 천수텃밭농원이 후원한 이번 행사는 서울시 민간축제지원사업의 하나로, 참가비 없이 무료로 운영됩니다.
녹색어울림의 '우리 동네 환경 예술제'는 이달 15일(목) '하늘물 환경 문화제', 25일(일) '하늘물 환경 음악회'로 이어집니다.
영화제가 하늘물의 '지금'을 체험하는 자리였다면, 15일(목)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열리는 문화제는 하늘물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입니다. '빗물 박사' 한무영 전 서울대 교수와 도시 물관리 전문가 최종수 박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품어 왔는지를 재미있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본 행사에 앞서 다양한 현장 체험 활동이 마련되고, 낭독극과 공연도 함께 펼쳐집니다.
25일(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하늘물 환경 음악회'가 열립니다. 천수텃밭은 녹색어울림이 해마다 주민들을 초청해 가을 숲 속 음악회를 열어 온 곳으로, 올해는 음악회에 하늘물이라는 이름을 더해 시민들과 만납니다.
'우리 동네 환경 예술제' ©녹색어울림빗물을 '하늘물'로 바꿔 부르는 일은 작은 말 바꾸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산성비, 더럽다, 폭우 같은 말이 먼저 떠오르던 빗물에 '하늘에서 내려온 물'이라는 새 이름을 붙이면 바라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이날 천수텃밭 숲 속에서 시민들은 물맛을 비교하고 산성도를 확인하며 빗물에 대한 오래된 선입견을 스스로 시험해 보았고, 영화 '수라'를 보며 하늘에서 내린 물 한 방울이 강을 따라 바다와 갯벌까지 닿아 생명을 키운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빗물은 관리로, 하늘물은 문화로"라는 주제처럼, 그 물을 어떻게 모으고 아끼며 지킬지 생각해 보게 하는 첫걸음을 시민들과 함께 내디딘 하룻밤이었습니다. 이달 15일 문화제와 25일 음악회를 거치며 '하늘물'이라는 이름이 이웃과 마을 속에 깊이 자리 잡길 바라봅니다.
녹색어울림의 '우리 동네 환경 예술제'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정보와 참여 방법은 녹색어울림의 블로그(
[녹색어울림])을 통해 얻으실 수 있습니다.
©서울농부포털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