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2026 기후프로젝트-들꽃텃밭 가꾸기"가 진행됐다. ©서울농부포털문화와 예술의 거리, 대학로 한복판에 새로운 풍경이 생겼습니다. 공연 포스터와 카페 간판이 즐비한 골목들이 만나는 곳,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앞마당에 들꽃과 채소가 뒤섞인 텃밭이 들어섰습니다. 도시개발과 기후변화로 도심 속 생물들이 하나둘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극장은 무대 밖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기후 프로젝트-들꽃텃밭 가꾸기".
두송희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극장운영팀 과장이 시민 참여자들에게 "기후 프로젝트-들꽃텃밭 가꾸기"의 내용과 진행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
시민 참여자들이 각자의 참여 계기를 나누며 인사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은 2024년부터 매년 '기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극장과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기술 중심의 탄소 절감 방식에서 벗어나 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직접 생각과 의미를 나누는 새로운 방식을 실험했습니다.
극장이 텃밭을 만든 데는 단순한 환경 캠페인을 넘는 깊은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텃밭을 운영한 창작자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극장은 씨앗창고를 가져야 한다. 『벚꽃동산』의 벚꽃을 볼 수 없는 시대가 찾아올 것이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순무를 먹어본 적 없는 세대가 나타날 것이다. 재현 불가능한 세상 앞에 씨앗을 내어놓는 극장을 상상한다"라고 말합니다. 무대 위에서 예술의 꽃을 피우고 작물을 키워온 연극이, 정작 그 원본인 자연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을 재현할 수 있겠냐는 질문입니다. 극장이 씨앗을 지키는 것은 곧 극장 자신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는 깨달음이 '기후 프로젝트'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4년과 2025년의 '기후 프로젝트'는 세 팀으로 구성됐습니다. '극장 앞 텃밭' 팀은 극장 앞마당을 토종씨앗 텃밭으로 변모시켰습니다. 화학비료 없이 작물을 기르고, 수확한 채소로 비건 레스토랑을 기획하며 기후 담론을 나눴습니다. 씨앗을 다시 받아 이듬해를 기약하는 채종의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이었습니다. '균넥' 팀은 발효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을 가시화하고, 비인간 생명체와 연결되는 새로운 감각으로 기후위기를 느끼게 했습니다. '박쥐구실' 팀은 오해와 혐오의 대상이었던 박쥐를 재조명하며 생물다양성의 의미를 전파했습니다.
창작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무언가를 줄인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와 같은 무기력한 방법"이 아닌, 예술을 통해 무언가를 '생산'하면서 기후에 대응하는 방식을 찾고자 했습니다. 일상에서 꺼내기 어려운 기후 이야기를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도록, '기후침묵의 장벽'을 허무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실험은 과정 공유회로 마무리됐고, 예술가·극장 운영진·관객이 함께한 모든 과정은 기록집으로 남겨졌습니다.
올해 진행되는 '들꽃텃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도시개발과 기후위기로 점점 사라져 가는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를 시민들과 함께 극장 앞마당에서 되살리는 것이 올해의 핵심 기획 의도입니다. 채소와 꽃을 함께 심는 '섞어짓기'로 다양한 생물을 불러들이는 매개자 정원을 만들고, 파종-돌봄-채종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을 시민들과 직접 경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공공 예술공간인 극장과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관객이자 시민인 참여자들과 기후 감수성을 나누고, 문화예술을 통해 일상적인 기후 인식 변화를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입니다.
올해 "기후 프로젝트-들꽃텃밭 가꾸기"는 마인드풀가드너스의 협력으로, 시민들과 함께 텃밭 정원을 통해 도시 안에서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를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를 위해 김현아 마인드풀가드너스 대표가 시민 참여자들에게 숲과 도시가 만나는 '경계지대'의 개념을 소개하며, 어떻게 '들꽃텃밭'을 생산성보다 야생성을 받아들이며 모든 생명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







시민 참여자들이 '들꽃텃밭' 프로젝트가 진행될 '극장 앞 텃밭'을 정리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


시민 참여자들이 '극장 앞 텃밭'에서 기존에 자라고 있던 토마토에 지지대를 설치해 주고 있다. ©서울농부포털





시민 참여자들이 정리된 텃밭에 모종과 씨앗을 심고 있다. 이날 참여자들은 '들꽃텃밭'에 바질, 노랑당근, 바질, 비트, 페퍼민트, 상추, 토마토, 파인애플세이지, 노란주키니 등 다양한 작물을 심었다. ©서울농부포털
김현아 대표가 심긴 작물들을 보며 텃밭에서 만들어지는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위한 최소 조건 등에 대해 시민 참여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참여한 시민들이 조를 나누어 앞으로 4개월 간 함께 정성스럽게 가꾸게 될 '들꽃텃밭' 이외에도, '기후 프로젝트'에서는 7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업사이클 화분 만들기', '식물 아트 워크숍', '야생벌 살리기', '혜화동 생태 산책', '스머지 스틱 만들기' 등의 주제로, 기후, 환경, 생태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월별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들꽃텃밭 - 먼슬리 기후 프로젝트]). 대학로를 오가며 마주친 의외의 텃밭을 보고 호기심이 생기셨던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참여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매해 여름이 더 길어지고,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교과서나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걷는 대학로에도 조용히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 거리에 자리한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은 그 변화를 외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극장 앞에서 씨앗을 심는 사람들, 관객들이 오가는 그 자리에 올해도 텃밭이 생겼습니다. 무대 위에서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흙을 일구고 씨앗을 심고 채종하는 순환의 과정 속에서 기후 감수성을 나누겠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예술의 거리 대학로가 조금씩, 생명의 거리로도 바뀌고 있습니다.
©서울농부포털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