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금), 9일(토) 이틀간 '정릉 교수단지'에서 '제15회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 정원 축제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서울 성북구 정릉동, 북한산 자락이 완만하게 흘러내려 도시와 만나는 경계 어디쯤에 '정릉 교수단지'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습니다. 1965년 서울대학교 교직원들을 위해 조성된 이 주거 단지는 반세기가 넘도록 낮은 지붕과 오래된 담장을 유지하며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 태조 비 신덕왕후의 능, 정릉(貞陵)과 이름을 나눠 가진 이 마을에서 해마다 5월이면 담장 안 정원들이 일제히 문을 엽니다. 올해로 15회를 맞이한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 정원 축제입니다.

축제에서는 마을투어 프로그램을 마련해 방문자들에게 마을의 역사와 각 정원의 아름다움을 소개했다. ©서울농부포털5월 8일과 9일, 이틀간 정릉 북악산로5길과 아리랑로19길 일대는 다시 한번 살아있는 정원으로 변했습니다. 올해 축제에는 주택 15가구와 어린이집 1곳이 저마다 이름 붙인 정원을 공개했습니다. 방문객들은 골목길을 따라 하모니정원, 도도화정원, 담쟁이정원, 나우리정원, 금낭화뜨락 등 개성 넘치는 이름의 정원을 차례로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방문자들이 마을투어를 하며 주민들이 각자의 주택 안에 조성한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몇몇 주민들은 정원사의 이름으로 방문자들을 맞아 직접 꾸민 정원을 소개하기도 했다. ©서울농부포털'정원이 들려주는 소리' 축제가 태어난 배경에는 마을을 지켜낸 특별한 역사가 있습니다. 2000년대 후반, 서울 곳곳을 휩쓸던 재건축 바람은 정릉 교수단지도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의 수십 년 손때가 묻은 골목과 정원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이곳 주민들의 저항 방식은 달랐습니다. 메가폰을 들거나 현수막을 내거는 대신, 대문마다 꽃 화분을 들이고 골목 구석구석을 꽃으로 채웠습니다. 말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이 마을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 조용하고 완강한 저항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2012년 주민들은 재건축 반대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며 마을을 지켜냈습니다. 승리 이후 주민들은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을을 함께 가꾸자는 뜻을 모아 공동체 '정릉마실'을 결성했고, 꽃으로 저항하던 그 정신을 계승해 2014년 처음으로 모두에게 열린 정원 축제를 열었습니다.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방문자들이 마을투어를 하며 주민들이 각자의 주택 안에 조성한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정원 관람 외에도 축제는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졌습니다. 정원 곳곳에서 밴드 공연이 열렸고, 그림 전시와 백일장·낭독회가 함께 진행되어 마을 전체가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작동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페이스페인팅과 반려돌·모빌 만들기 체험 부스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고,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플리마켓도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마을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정원뿐 아니라 정릉 교수단지의 역사와 골목 이야기를 귀로 들으며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에는 정원 관람 이외에도 플리마켓, 체험, 공연, 전시 등이 마련되어 풍성한 축제의 장으로 꾸며졌다. ©서울농부포털

각 주택의 정원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이 꽃으로 채워져 있다. ©서울농부포털'정릉마실'이 15년간 이 축제를 이어온 의미는 단순히 꽃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도시의 빠른 개발과 재건축 사이에서 '어떤 마을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정원이라는 언어로 던져온 것입니다. 낮은 담장 너머로 이웃의 정원을 들여다보고, 그 정원사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걷는 이틀의 경험은 수직으로 높아지는 도시에서 수평으로 이어지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정원 축제에 참여하는 주택 정원 중 상당수는 텃밭과 식물 재배 공간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도시 속 작은 땅에서 식물을 기르는 행위가 개인의 취미를 넘어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고, 나아가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정릉마실은 15년의 실천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올 5월에도 북악산 바람을 타고 골목마다 꽃향기가 번진 정릉 교수단지.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는 내년 봄에도 어김없이 담장을 열 것입니다. 그 소리가 더 많은 도시에 퍼져나가길 기대해 봅니다.
©서울농부포털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