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토종씨앗 강좌 "토종씨앗, 뭣이 중헌디?!"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4월 27일(월)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용산구 백범로99길 40)에서 (사)가배울이 주관하고 한국여성재단과 사랑의열매가 지원한 토종씨앗 강좌 "토종씨앗, 뭣이 중헌디?!"가 열렸습니다. 강좌를 주관한 (사)가배울은 여성주의 문화단체로, 여성들의 토종씨앗 농사가 공동체 문화의 바탕이라는 깨달음으로 최근 활발한 토종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날 강좌도 토종씨앗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 널리 알리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습니다.
강좌에서 「토종씨앗의 역습」의 저자인 김석기 (사)토종씨드림 이사가 토종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발표는 우리 사회에 토종씨앗의 의미와 가치를 환기시키고 보존에 대한 고민을 던진 책 「토종씨앗의 역습」의 저자인 김석기 (사)토종씨드림 이사가 맡았습니다. 김석기 이사는 우리 농업에서 왜 토종은 사라지게 되었는지, 토종씨앗은 어떤 특성이 있으며 이러한 토종을 왜, 어떻게 보전해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김석기 이사는 먼저 토종을 '우리 땅에서만 처음부터 자라온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한국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해 온 생명'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석기 이사는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 땅에만 있던 것은 콩 정도이고, 나머지는 시기를 두고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라며, 그래서 토종을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은 원산지가 아니라 적응의 시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좌에서 「토종씨앗의 역습」의 저자인 김석기 (사)토종씨드림 이사가 토종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서울농부포털토종씨앗의 가치를 설명하며 김석기 이사는 러시아의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를 소개했습니다. 바빌로프는 1900년대 초반 전 세계를 다니며 작물의 기원과 다양성을 연구한 인물로, 조선에도 온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석기 이사는 바빌로프의 연구를 빌려 "작물이 다양하면 그걸 활용한 문화도 다양하다"고 말하며, 토종씨앗이 다양하면 농사법도 다양해지고, 그 작물로 만든 음식 문화 역시 풍성해진다고 전했습니다.
토종씨앗은 식량주권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김석기 이사는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을 구분해 설명했습니다. "식량안보가 먹거리를 확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면, 식량주권은 먹거리에 대해 주체적인 권리를 갖는 것"이라고 설명한 김석기 이사는, 단지 배를 채울 식량이 있는지를 넘어, 어떤 씨앗을 심고 무엇을 먹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양한 토종작물은 건강한 밥상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최근 색깔별 식품의 영양을 강조하는 '컬러푸드'가 주목받고 있는데, 김석기 이사는 "우리의 다양한 토종작물은 그 자체로 컬러푸드"라고 전했습니다. 토종쌀, 콩, 기장, 수수, 채소와 열매들이 지닌 색과 모양, 맛의 차이는 곧 다양한 영양 공급원으로 이어집니다.
강좌에서 「토종씨앗의 역습」의 저자인 김석기 (사)토종씨드림 이사가 토종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발표에서는 유전적 다양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도 소개됐습니다. 1800년대 중반 약 100만 명의 사망을 가져온 아일랜드 감자 기근과 최근 대두되는 바나나 멸종 위기는 특정 품종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를 보여줍니다. 김석기 이사는 모든 토종이 곧바로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라고 짚으면서도, 중요한 것은 다양한 토종이 존재해야 변화 속에서 그중 적응력이 뛰어난 것들이 살아남고, 다음 세대 농업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석기 이사는 야생갓에서 양배추, 콜라비, 케일, 브로콜리, 콜리플라워가 분화된 사례를 들며 하나의 식물이 얼마나 다양한 작물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설명했습니다. 작물의 다양성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며, 오랜 시간 자연과 농민의 선택이 함께 만들어 온 결과라고 전했습니다.
토종의 중요한 특징으로는 '수평저항성'이 소개됐습니다. 김석기 이사에 따르면, 토종은 어떤 저항이 와도 꾸준히 버티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새롭게 만들어진 품종은 특정 병해충이나 환경에는 강하지만 다른 조건에는 취약할 수 있습니다. 이를 '수직저항성'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신품종으로 각광받은 통일벼는 생산성이 높았지만 냉해에 약해 4월 초중반 꽃샘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축적된 육종관리 기술은 이후 더 좋은 품종을 개발하는 기반이 됐습니다.
김석기 이사는 토종이 농약과 비료를 많이 쓰지 않는 전통농업과 도시농업에도 잘 어울린다고 전했습니다. 일정한 모양과 대량생산을 목표로 하는 상업농과 달리, 도시 텃밭은 다양한 작물을 심고 관찰하며 씨앗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김석기 이사는 도시농업 텃밭이 토종씨앗을 보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강좌에서 「토종씨앗의 역습」의 저자인 김석기 (사)토종씨드림 이사가 토종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서울농부포털현재 토종씨앗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김석기 이사에 따르면 자급을 목적으로 하던 농업이 돈벌이 중심의 농업으로 바뀌면서, 집에서 먹기 위해 기르던 다양한 작물들이 두세 가지 환금작물로 대체됐습니다. 1986년 농촌진흥청이 한국 최초로 토종종자를 수집한 뒤 7년 후 재조사했을 때, 이미 약 74%의 종자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1903년 상업 종자회사들이 판매하던 여러 작물의 수백 가지 품종은 80년 뒤 70-80%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씨앗의 소멸은 농민의 소멸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 농가인구는 급격히 줄고 있고, 고령화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토종씨앗을 지켜 온 이들은 대부분 여성 농민입니다. 김석기 이사는 괴산군 토종종자 수집 결과를 언급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농민들이 토종종자 지킴이 역할을 해 왔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10-15년 전 이야기이며, 현재는 그 수가 더 줄어든 상황입니다. 농민이 사라진다는 것은 씨앗을 고르고 보관하고 다시 심어 온 지식과 기억이 함께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위협으로는 GM종자와 유전자편집기술이 언급됐습니다. 김석기 이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GM작물이 크게 재배되지는 않지만, 수입된 GM작물이 사료나 가공식품에 활용되고 있다고 전하고, 또 GM작물 재배는 세계적으로 포화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전자편집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대규모 재배를 확대하는 중국의 흐름도 주목해야 할 변화로 소개됐습니다.
종자산업의 구조 변화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IMF 이후 몬산토, 신젠타, 사카다 같은 다국적 회사들이 국내 종묘회사를 인수하며 한때 국내 채소 종자시장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습니다. 특히 몬산토는 2018년 독일 바이엘에 인수되었고, 전 세계 농화학업계가 인수합병을 거치며 점점 더 소수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씨앗이 기업의 상품과 특허권 중심으로 관리될수록, 농민이 씨앗을 받아 다시 심고 나누는 권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석기 이사가 각종 콩류부터 무, 시금치, 파, 고추, 상추, 배추, 오이, 호박, 참외, 감자 등의 토종작물을 소개하고, 씨앗의 채종과 보관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
강좌를 마무리하며 김석기 이사와 강좌에 참가한 청중들이 질답을 나누고 있다. ©서울농부포털김석기 이사는 씨앗이 단순한 농업 자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씨앗에는 지역의 풍토, 농민의 손길, 밥상의 기억, 그리고 앞으로의 기후위기에 대응할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일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토종씨앗을 심고, 관찰하고, 나누는 일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더 많은 다양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도시 텃밭에서부터 토종의 확산이 시작되길 바라봅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