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가 주관하는 '농생태학 공부 모임'이 열렸다. ©'농생태학 공부 모임' 구글 미트 갈무리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 토양 황폐화와 먹을거리 불안이 겹쳐지는 시대입니다. 이에 따라 위기 시대의 농업을 '더 많이 생산'하는 기술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가 주최하는 '농생태학 공부 모임'이 지난 3월 5일(목) 온라인을 통해 열렸습니다. 이번 모임은 스티븐 R. 글리스먼의 "농생태학 :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체계의 생태학"을 1년 동안 함께 읽으며, 농업과 생태, 지역사회와 먹을거리 정의를 함께 고민하는 장기 학습 프로그램입니다.
이 공부 모임의 부제는 '밥상 위의 생태학 : 기후위기 시대, 농생태학으로 여는 지속가능한 미래'입니다. 이름 그대로 농생태학을 단지 농사 기술의 한 갈래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산하며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함께 묻는 관점으로 다룹니다. 매월 첫 번째 목요일 저녁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모임은 사전 읽기, 발제, 토론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참가자들은 지정된 챕터를 미리 읽고, 발제를 통해 핵심 개념을 정리한 뒤, 각자의 농사 경험과 지역 현장의 사례를 나누며 책의 문제의식을 현실과 연결하게 됩니다.
첫 번째 모임의 발제는 프로그램을 마련한 김충기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대표가 맡았습니다. 김충기 대표는 인천 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의 경험과 앞선 독서모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모임을 "책을 한 번 완독하는 것을 넘어 농생태학의 기본 개념을 함께 세우는 과정"으로 소개했습니다. 김충기 대표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책을 충실히 읽고, 다시 정리하고, 서로의 생각과 현장 경험을 나누다 보면 농생태학과 관련된 개념이 생길 것"이라며, 이번 모임이 부담 없는 속도로 깊이 있는 학습을 이어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농생태학 공부 모임' 구글 미트 갈무리첫 번제 발제는 책의 1장과 2장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장이 산업형 농업의 한계와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체계의 필요성을 짚는 장이라면, 2장은 농장을 하나의 생태계, 곧 '농업생태계'로 이해하기 위한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장입니다. 김충기 대표는 먼저 오늘의 농업 체계를 '산업형 농업'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습니다. 산업형 농업은 생산의 최대화와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구축된 체계입니다. 대규모 단작, 집약적 경운, 합성비료와 화학농약, 유전자 조작, 공장식 축산과 같은 요소들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며, 생산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농업을 조직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김충기 대표는 산업형 농업이 토양 유기물을 고갈시키고, 침식과 토양 구조 악화를 낳으며, 물을 과도하게 사용해 지하수와 대수층을 위협한다고 짚었습니다. 또 화학적 방제와 유전자 조작 역시 단기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성 잡초와 저항성 해충 같은 새로운 문제를 낳으며 다시 더 많은 투입을 요구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산업형 농업은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또 다른 문제를 키우는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충기 대표는 특히 산업형 농업이 농지를 살아 있는 생태계가 아니라 투입재를 넣어 생산량을 끌어올리는 작은 공장처럼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적절한 비료와 농약, 기계와 물, 에너지를 넣으면 언제나 수확량을 높일 수 있다는 사고가 농업 전반을 지배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 방식이 토양과 물, 기후와 생태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무시한 채 농업의 기반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는 단지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외부 투입재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농업은 국제 유가, 무역 구조, 공급망 변동에 더 쉽게 흔들리는 취약한 체계가 됩니다.
발제에서는 먹을거리 체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농장 바깥으로 넓혀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었습니다. 지금의 농업 체계는 지역 주민이 필요로 하는 먹을거리를 중심에 두기보다는, 세계 시장과 글로벌 농식품 체계의 요구에 맞춰 작동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지 결정하는 기준이 지역의 필요보다는 수출 경쟁력과 가격, 시장 논리에 좌우되면서 지역의 통제력은 약해지고, 농민이 가져가는 몫은 계속 줄어드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김충기 대표는 이 과정에서 지역의 식량 자립과 먹을거리 주권 역시 약화된다고 짚었습니다.
©'농생태학 공부 모임' 구글 미트 갈무리김충기 대표는 이 같은 문제의식 위에서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체계'가 무엇인지도 짚어 나갔습니다. 김충기 대표에 따르면 지속가능성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준과 방향을 갖춘 실천의 언어여야 합니다. 최소한 농업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낮추며, 토양 비옥도를 보존하고 재건해야 합니다. 또한 지하수와 물을 과소비하지 않고, 농업생태계 안에서 양분이 순환하도록 설계해야 하며,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지역사회가 지식과 기술, 먹을거리 체계에 보다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식량안보와 식량권, 지역 중심의 통제력 회복, 정치적·경제적 불이익의 완화까지 포함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체계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발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농생태학이 단지 환경친화적 농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김충기 대표는 농생태학을 과학적 연구, 현장 실천, 사회 변화가 함께 가는 전환의 틀로 설명했습니다. 농생태학은 생태계의 원리를 이해하는 학문이면서, 그 원리를 농업 현장에 적용하는 실천이고, 더 나아가 먹을거리 체계 전체를 바꾸려는 사회적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책 역시 앞부분에서는 생태학과 농업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뒤로 갈수록 먹을거리 정의와 사회적 전환, 네트워크 형성의 문제까지 다루게 된다고 소개했습니다.
©'농생태학 공부 모임' 구글 미트 갈무리2장 발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농업을 생태계의 언어로 읽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김충기 대표는 농장을 단순히 작물을 재배하는 공간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생물적 요소와 비생물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생태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나의 작물만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작물을 둘러싼 토양과 물, 공기, 미생물, 곤충, 잡초, 주변 식생과 경관까지 함께 봐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김충기 대표는 생태계의 구조를 유기체, 개체군, 군집, 생태계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특히 개체를 넘어 군집과 생태계 수준에서 나타나는 '신생 속성'의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추 한 포기와 여러 포기가 모인 고추밭은 단지 숫자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됩니다. 더 나아가 곤충과 풀, 미생물과 주변 환경이 함께 얽히는 순간 농장은 훨씬 더 복합적인 생태적 속성을 갖게 됩니다. 이런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농업을 개체 단위의 관리기술로만 축소하게 되고,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는 핵심 조건도 놓치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농생태학 공부 모임' 구글 미트 갈무리김충기 대표는 생태계의 기능으로 에너지의 흐름과 양분의 순환도 짚었습니다. 식물은 태양 에너지를 받아 바이오매스로 저장하고, 그 에너지는 먹이사슬을 따라 한 방향으로 흐르며 점차 소실됩니다. 반면 양분은 토양과 대기, 생명체 사이를 순환합니다. 농업생태계의 관건은 이런 자연의 원리를 얼마나 잘 살려내느냐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생태계는 내부의 순환으로 유지되지만, 농업생태계는 생산물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열린 체계이기 때문에 에너지와 양분의 손실이 더 크게 일어납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농업은 외부 투입재를 무한히 늘리는 대신, 농업생태계 안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양분 순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 김충기 대표의 설명이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저항성과 탄력성입니다. 생태계가 외부의 충격을 견뎌내는 힘이 저항성이라면, 충격 이후에도 다시 원래 상태에 가깝게 회복하는 힘은 탄력성입니다. 김충기 대표는 종다양성과 군집의 복잡성이 높을수록 이런 힘이 커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결국 단작과 균일성에 기반한 농업보다, 다양한 종과 상호작용을 살리는 농업이 기후위기와 병해충, 외부 충격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농생태학이 말하는 생산성은 단순히 한철의 수확량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농업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조별 발표가 진행되고 있다. ©'농생태학 공부 모임' 구글 미트 갈무리김충기 대표의 발제 후에는 모든 참가자들이 참여하는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0여 명의 참가자들은 8개 조를 만들어 이날 다루어진 내용의 이론과 실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각 조별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발표를 통해 참가자들은 도시농업, 먹을거리 정의, 생태 전환, 지역의 자립을 각각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먹을거리 체계로 연결해 보려는 농생태학의 시도를 평가하며, 이를 통해 도시농업을 실천하는 시민과 지역 활동가들에게 농생태학은 텃밭 재배 기술을 넘어, 도시와 농촌의 관계, 생산과 소비의 구조, 기후위기 대응과 공동체 회복을 함께 바라보게 하는 렌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충기 대표는 "책의 사례는 미국과 중남미 중심이지만, 토론에서는 우리가 직접 겪은 한국의 사례를 풍부하게 나누며 우리만의 공부와 실천, 사회적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제안하며 첫 번째 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농생태학 공부 모임'은 앞으로 빛과 온도, 물과 토양, 개체군과 군집, 작물 간 상호작용, 먹을거리 정의와 주권 등으로 논의를 확장해 갈 예정입니다. 첫 모임은 익숙한 문제의식을 다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농업을 생태학의 언어로 새롭게 읽기 시작한 출발점이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을 지속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길이 과학과 현장, 사회 변화의 연결 속에서 어떻게 가능해질지, 이번 1년의 공부가 던질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아 보입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