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 한쪽의 텃밭은 종종 '체험 프로그램'으로 취급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는 그 작은 텃밭의 흙이 학교 교육의 방향을 바꾸는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아이들이 계절을 배우고 생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장소가 학교이고, 그 안에서도 책상 위가 아니라, 볕과 바람이 드는 바깥공간과 흙이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학교가 기후위기와 생태전환 교육의 최전선이 되어야 하는 지금, '학교 공간'은 더 이상 교실 배치나 시설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내용을 바꾸는 인프라가 되고 있습니다. 김성원 PlayAT연구소 소장은 "학교 공간을 '건물'이 아니라 '학습 생태계'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인천시 남동구평생학습관과 온라인을 통해 <도시농부특강>이 열렸다. ©<도시농부특강> 유튜브 갈무리11월 25일(화) 인천시 남동구평생학습관에서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와 (사)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주관한 <도시농부특강>이 열렸습니다.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된 이번 특강에서는 김성원 PlayAT연구소 소장이 "생태전환교육을 위한 학교공간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 다양한 학교들의 생태전환교육과 그에 따른 학교 공간의 재구성 사례들을 소개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김성원 PlayAT연구소 소장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농부특강> 유튜브 갈무리김성원 소장은 먼저 학교 공간이 세계적으로 어떻게 '야외'와 '생태'를 중심으로 변해왔는지, 그리고 한국의 학교가 어떤 지점에서 세계적 흐름과 단절되었는지를 짚었습니다.
김성원 소장은 근대 학교건축의 변화가 단지 교육철학의 산물이 아니라 공중보건의 위기와 맞물려 있었다는 점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1904년 독일 샬로튼브르크의 '숲 학교(발트슐레)'를 시초로, 건물 없이 숲에서 수업을 하는 학교가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던 것을 제시한 김성원 소장은 "학교 건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시 창궐했던 전염병 때문에 숲에서 수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보건, 위생 위기에 따른 학교 교육의 대응은 곧 이어진 1·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 시기를 맞아 '야외 학교'로 진화했습니다. 김성원 소장은 "전쟁이 벌어지면 제일 문제가 되는 게 보건, 위생"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가 학교 공간을 바꾸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건물이 있지만 교실에서 곧장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폴딩 도어를 설치하거나 지붕만 있는 '야외 교실'을 만들어 환기와 채광, 자연 접촉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성원 소장은 "이때 중시되었던 '교육 환경'은 말 그대로 정말 그냥 채광과 환기가 잘되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했고, 이런 흐름은 이내 미국·프랑스·영국 등으로 확산되었다"고 전했습니다.
김성원 소장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농부특강> 유튜브 갈무리'야외 학교'가 환경 위생의 요구에서 출발했다면, 이어 등장한 '열린 교실 학교'는 기존의 '교육 환경'에 교육학이 본격적으로 결합된 모델이었습니다. 김성원 소장은 "학교에서의 수업은 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철학을 반영하고 있는 '열린 교실 학교'는, 집체 교육뿐 아니라 모둠 수업이나 프로젝트 수업을 담아낼 공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전했습니다. 김성원 소장은 '열린 교실 학교'의 상징적 사례로 1940년대에 교실을 일반적인 상자형이 아니라 'L(엘)'자 형태로 만들어 3면으로 채광과 환기가 가능하게 하고, 각 교실마다 안뜰을 조성한 미국 시카고의 크로우 아일랜드 초등학교를 꼽았습니다. 왜 이런 학교가 필요했는지에 대해 김성원 소장은 당시 주거환경의 열악함을 이야기하며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라도 좋은 환경 속에서 자연과 접촉하고 좋은 채광 속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공간을 바꿨다"고 짚고 "3면의 채광과 '뒷문'을 통해 안뜰로 바로 나가는 동선은 교실을 한 방향으로 고정시키는 한국식 교실과 대비된다"고 전했습니다.
김성원 소장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농부특강> 유튜브 갈무리'단층 교사동+안뜰+중앙복도 연결'로 유럽에서 발전한 '파빌리온형 학교'도 야외성과 채광·환기를 구조적으로 담아낸 사례로 소개되었습니다. 김성원 소장은 이 지점에서 일본까지 들어온 '열린 교실 학교'의 흐름이 한국의 바로 앞에서 끊긴 점을 강조했습니다. "일본까지는 파빌리온형 학교가 들어왔지만, 우리나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딱 끊겼다"며 "한국 학교의 상징인 '편복도'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식된 지 백 년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학교 건축의 변화의 흐름으로부터 단절돼 있는 국가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성원 소장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농부특강> 유튜브 갈무리김성원 소장은 '실내와 실외의 유기적 연결'이 현대 학교공간 혁신의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지진 등 안전 요인, 사건 이후 탈출 동선 개선, 그리고 자연 접촉의 문화가 발코니·개방형 교실로 이어졌다고 설명한 김성원 소장은 "반면 한국 학교는 1층에는 주로 교무실, 행정실, 보건실이 자리해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쓰기 어렵고, 특별교실은 구석에 있어 실외활동을 구조적으로 저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김성원 소장은 자신이 사전기획에 참여한 학교 사례들을 통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고양시의 덕양중학교는 미술실·기술실·식당·상담실 등에서 바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동선이 구성되었고, 3층에서 바로 야외 옥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김성원 소장은 "운동장을 좀 줄여야 되는 상황에서 대신 자연과 접촉하고 야외에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기 위해 옥상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하자"는 의도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경기도 연천초등학교는 학년군별 뒷마당 3개를 두고 교실에서 뒷문을 열면 바로 마당으로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김성원 소장은 "이게 없으면 복도를 통해서 애들 데리고 바깥에 나가서 수업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며 야외수업이 의지나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성원 소장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농부특강> 유튜브 갈무리김성원 소장은 '농민학교'도 소개했습니다. 1973년 농민의 자녀들을 위해 지어진 덴마크의 '쉔더마켄 학교'는 목표를 '어린이의 사회성과 농촌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실용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데' 두고, 정규과목과 함께 목공·요리·가사·봉제 등을 교육합니다. 공간 구성도 '건물 앞에 운동장' 같은 일반적인 배치를 벗어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야외 공간을 펜스로 분리해 크고 작은 구기장을 다양하게 설치하고, 놀이시설들도 곳곳에 흩어 놓는 등 초등학생 때 나타날 수 있는 연령에 따른 권력 관계도 고려한 공간 배치로 만들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김성원 소장은 도시농업의 학교텃밭 활동가들이 바라는 '텃밭 면적'에 대한 기대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도시농업하는 분들은 학교에 텃밭이 좀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학교는 텃밭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 텃밭이 운동장 전체를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기능 학습정원' 안에서 균형을 가져야 한다는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김성원 소장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농부특강> 유튜브 갈무리기후위기 시대의 학교 공간과 학습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졌습니다. 김성원 소장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학교를 말할 때 많은 이들이 태양광 등 시설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영국 셰퍼드대 연구를 인용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건축의 디자인이나 시설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조명이나 온도, 공기의 질"이라고 강조한 김성원 소장은 다양한 해외의 사례들을 소개하며 고측창·천창·아뜨리움의 '굴뚝효과'에 의한 자연환기, 차양시설, 녹색커튼(넝쿨식물), 활동기반 조명, 흡음·차음까지 '환경적 요소'를 핵심으로 학생들의 학습조건을 개선하는 방식이 제시되고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성원 소장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농부특강> 유튜브 갈무리특강의 후반부에는 학교 야외공간의 핵심인 '운동장'의 재구조화가 다루어졌습니다. 스페인 교사 엥겔 나바로 빈센트의 문제의식을 소개한 김성원 소장은 "운동장을 남자아이들이 과점해 성차별(그리고 연령차별)을 낳고, 스포츠 중심 구조가 놀이·학습을 가로막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학교의 야외 공간을 '운동을 하는 운동장'으로 개념 짓고 강조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전한 김성원 소장은 체육단체와 조기축구회가 운동장 변화에 저항하는 현실도 언급하며 "학교 야외공간은 철저하게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춰서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다중활용을 고려한 학습정원 디자인', 북미의 '먹을 수 있는 학교 운동장(Edible Schoolyard)', 독일의 '생태통합운동장' 등의 사례를 전한 김성원 소장은 우리나라의 사례로 밀양의 밀주초등학교를 소개했습니다. 운동장 한가운데 둔덕·터널·물길을 넣고 트랙을 한편으로 몰아 직선으로, 구기장은 소형 다목적 코트로 줄이는 방식으로 재구성한 사례를 전한 김성원 소장은 "생태 운동장으로 바꾸면서 이 학교의 학생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공간 혁신이 학교의 매력과 지역의 교육생태를 바꿀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김성원 소장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농부특강> 유튜브 갈무리끝으로 김성원 소장은 "학교에서의 생태전환 교육 또는 학교 공간이 좀 더 생태적 공간으로 바뀌려면 학교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며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결국은 강력한 시민사회의 노력 또는 시민운동이 뒷받침 됐을 때 바뀌더라"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김성원 소장은 시민운동의 '전문성'과 '지속성'도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변화를 일으키려면 민간단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전문성의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고, 또한 요구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거점학교를 정해 집중하고, 지역이 기금과 인력을 모아 학교와 '공동 운영' 구조를 만드는 접근을 통해 지속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성원 소장은 특강을 통해 도시농업이 학교로 들어가는 길은 텃밭의 면적을 넓히는 일이기보다, 학교를 '스쿨야드'로 다시 읽고, 지역이 함께 운영할 수 있는 지속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특강에서 제시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우리의 생태전환교육을 위한 학교공간의 구성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이 발전되길 바라봅니다. "생태전환교육을 위한 학교공간의 재구성"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과 자료는 (사)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블로그의 해당 페이지(
[생태전환교육을 위한 학교공간 핵심 설계 원칙])를 통해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