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금) 서울가족플라자에서 <아이러브 농(農)>의 첫 번째 강의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농업·먹거리·농촌을 알고 싶은 청년들이 모여 함께 배우고 연결되는 자리, 청년 아카데미 <아이러브 농(農)>제4기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재단법인 지역재단과 농업먹거리청년모임이 함께 기획한 이 프로그램은 기후위기와 지방소멸, 먹거리 불평등의 시대에 청년들이 모여 농촌과 밥상을 새로 질문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되었습니다. 재단법인 지역재단은 '순환과 공생의 지역 만들기'를 비전으로 지역리더를 키우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비영리 재단이며, 농업먹거리청년모임은 농업·먹거리 운동 진영의 청년 학습과 네트워크를 통해 세대교체와 새로운 활력을 준비하는 청년 모임입니다.
허헌중 (재)지역재단 이사장이 <아이러브 농(農)> 참여자들을 환영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
<아이러브 농(農)> 제4기 참여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서울농부포털11월 14일(금) 서울가족플라자(서울 동작구 노량진로 10)에서 <아이러브 농(農)> 제4기의 첫 번째 강의가 "기후위기 시대 농촌과 먹거리"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강의를 맡은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박사는 안부를 넘어 인간의 조건을 묻는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질문을 들고, 기후위기 시대의 농촌과 먹거리, 그리고 우리의 삶을 깊이 있게 짚었습니다.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박사가 "기후위기 시대 농촌과 먹거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정은정 박사가 바라본 농촌의 첫 이미지는 '위태로움'이었습니다. 석면 슬레이트 지붕, 무너지는 흙벽, 바람 빠진 경운기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세대와 시대를 상징합니다. 이제 경운기는 거의 팔리지 않고, 그것을 모는 이들도 대부분 80대 노인들입니다. 농업의 최전선은 고령 농민들에게 남겨졌고, 그마저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정은정 박사가 강연을 통해 위태로운 농촌의 풍경을 전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정은정 박사는 이어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을 떠올리며 '사발면과 숟가락의 세계'를 이야기했습니다. 하청과 재하청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 속에서, 유품으로 남은 사발면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현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공구와 식기가 뒤엉킨 사진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할 식사 행위는 노동의 폭력적인 환경 속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정은정 박사는 "우리가 수렵과 채집, 불의 발견, 요리와 공동체의 형성을 통해 인류가 되어 왔다면, 식사는 곧 정치"라며 "우리는 음식을 나누며 규칙을 만들고, 공동체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정은정 박사가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의 유품 사진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음식의 정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농촌사회학을 가르치는데 쌀 이야기는 해봐야 잘 먹히지 않는다"며 정은정 박사는 '치킨'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1년에 소비되는 닭은 약 12억 마리입니다. 하지만 닭을 키운 농민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닭 한 마리당 500원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먹는 치킨 한 마리의 값 속에 농민과 치킨집, 배달 라이더의 몫은 모두 10% 안팎에 불과합니다. 정은정 박사는 치킨을 '기후위기 시대 가장 문제적인 음식'으로 꼽았습니다. 밀가루, 설탕, 식용유, 물엿, 옥수수 사료와 닭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푸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원료를 빙글빙글 돌려 먹고 있을 뿐이고, 그 안에서 쌀농사를 짓는 농민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배달 온 치킨 상자 하나에는 농부, 유통업자, 튀기는 사람, 배달하는 사람, 설거지하고 치우는 사람의 인생이 함께 도착합니다. 정은정 박사는 "한 번쯤은 이들을 떠올리며 먹어보자"며 우리가 매일 하는 '먹기'라는 행위에 정치성과 윤리를 불어넣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정은정 박사가 치킨을 통해 먹는다는 것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정은정 박사는 개인적인 경험을 꺼내며 우리의 근간에 깔린 사람의 마음, 농업의 마음도 전했습니다. 정은정 박사가 사회학자가 된 계기는 '어머니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 농약에 대한 경각심이 없던 시절, 밭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다시 가사노동에 '출근'해야 했던 어머니. 그 이중의 멍에는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하나의 완성된 여성 농민의 서사였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묻는 자리 앞에서 모내기가 한창이던 장면은 정은정 박사에게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숟가락을 놓았는데, 눈앞에서는 누군가의 숟가락을 위한 행위가 펼쳐지고 있었어요. 숟가락을 드는 인간은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이를 낳고, 나무를 심고, 내일을 준비합니다. 인간은 세계의 영속성을 믿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밭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굽힌 할머니가 집에 와서 또 꽃을 가꿉니다. "이쁘잖여"라는 한마디에는 인간이 단지 성과와 효율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달맞이꽃, 황금 들판, 노을의 아름다움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감각이 바로 삶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정은정 박사는 "이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이야말로 사회에 커다란 '승수 효과'를 주는 자원이며, 세계는 그런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지금까지 지켜져 왔다"고 전했습니다.
정은정 박사가 감수성이 지켜온 우리의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이어 정은정 박사는 기후위기와 농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기후위기의 책임이 가장 큰 산업 중 하나는 운송, 차량 부문입니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은 이를 새로운 '기회'로 포장하며 수소·전기차를 앞세웁니다. 하지만 전기와 에너지는 대부분 농촌의 발전소에서 나옵니다. 에너지 전환이 '정의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농촌을 파먹으며 버티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농사에 있어서도 기후위기 속에 잡초는 점점 더 세지고, 제초의 강도는 심해집니다. 정은정 박사는 환삼덩굴을 뽑느라 허리가 휘어가는 노인 농부들 앞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극곰과 펭귄도 중요하지만, 이 노인 농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기후위기는 농부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공동체를 갈라놓는 힘으로 작동합니다. 어려워질수록 협력이 아니라 경쟁으로 내몰리는 구조 속에서, 관계는 더 팍팍해집니다.
정은정 박사가 기후위기와 농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정은정 박사는 먹거리 민주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정은정 박사는 "사회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지만, 몸의 민주화, 혓바닥의 민주화, 삶의 민주화는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먹는 영역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폭압적인 독재 시대'라는 것입니다. 거대 식품기업과 유통 구조, 플랫폼이 장악한 먹거리 체계에서, 소비자인 우리는 스스로를 '선택하는 주체'라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습니다. "농민이 어렵게 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 정은정 박사는 "우리 모두는 이미 글로벌 푸드 시스템 안에 갇혀 있는 구조의 피해자이자 동참자"라며 "이 구조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민주화를 다시 생각하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선식품이 가장 잘 닿지 않는 곳이 농촌입니다. 농가에는 자기가 재배하는 작물은 있지만, 도시처럼 다채로운 식재료를 손쉽게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은정 박사는 마을공동급식,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시스템, 학교급식의 담장을 낮추는 공공급식 체계를 제안했습니다. 이미 1980년대 여성 농민들은 "감옥에 가면 밥을 주는데, 학교는 왜 안 주냐?"며 싸워 학교급식을 쟁취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대학교의 '천 원의 아침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선 싸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작은 합의도 가능했다면, 이제 우리는 후배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 정은정 박사는 "상상하는 만큼 현실이 따라온다면, 먹거리를 둘러싼 민주주의 역시 상상하고 조직해야 할 과제"라고 전했습니다.
정은정 박사가 먹거리의 민주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끝으로 정은정 박사는 앞으로 10년 안에 한국 사회에는 어떤 형태로든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전하며, 그 위기를 건너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는 한 명의 농민, 한 사람의 '순복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농부와 함께, 농촌과 함께, 밥상과 함께 위기를 건너겠다고 마음먹는 사람들, 순복씨 마냥 '달맞이꽃의 아름다움을 알아?'라는 질문에 '안다'고 대답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전한 정은정 박사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 길에 나서실 분들, 원하시는 분들, 여기 계신 분들, 말리지 않겠다"고 밝히며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정은정 박사가 "위기는 결국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손을 서로 맞잡는 것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
참여자들의 각자의 소감을 나누며 <아이러브 농(農)> 제4기 첫 번째 수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아이러브 농(農)> 제4기는 12월 12일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 서울가족플라자 등지에서 기후위기 시대 우리의 식탁과 농업을 이해하는 인문 강연, 도시와 농촌을 잇는 청년 농촌기획자의 이야기, 식생활 문화와 로컬푸드, 청년 기획자의 실전 사례 등의 강의·현장 사례·네트워킹 파티가 결합된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이러브 농(農)>을 통해 청년 세대의 관점으로 농업과 먹거리의 미래를 그려보고, 서로의 활동을 이어 주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길 바라봅니다.
©서울농부포털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