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유랑기'©<농담>전국의 도시농부들 중 '스스로 양심껏' 청년이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 모여 한바탕 수다, 까지는 아니고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는 자리, <농담>(
['어제의 농사가 오늘의 담소거리' <농담>])이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농담유랑기'라는 제목으로, 어딘가로 떠났던 것이 시작이 되어 농사와 인연을 맺고 담은 청년 농부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공팜 퍼멘터리' 김준혁 농부가 "영국까지 다녀와서는 왜 농사를 지어?"라는 주제로 '농담유랑기'의 첫 번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9월 29일(월)에는 '농담유랑기'의 첫 번째로,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다양한 발효식품을 만들고 있는 '오공팜 퍼멘터리(
[오공팜 퍼멘터리])' 김준혁 농부의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김준혁 농부는 "영국까지 다녀와서는 왜 농사를 지어?"라는 주제로, 한 번의 결단으로 떠난 영국 생활이 어떻게 삶과 직업, 가치관을 바꾸게 했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김준혁 농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김준혁 농부는 대학을 '칼졸업'하고 곧바로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쉼 없이 달렸습니다. 전주·서울을 오가며 타지 생활을 하고, 장거리 연애를 버티고, 회사의 '정답'을 좇다 보니, 어느 순간 삶이 메말라 있었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처음에는 돈을 답으로 삼았습니다. 본업과 병행해 구매대행·빈티지 판매, 파티룸 운영까지 두 가지 부업을 벌였지만, 가슴은 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김준혁 농부와 아내는 결심했습니다. 퇴사와 유학휴직. 비워낸 1년의 목적지는 영국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며, 무엇에 가슴이 떨리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준혁 농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하지만,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현실은 냉정해졌습니다. 월급은 멈췄습니다. 300만 원짜리 방의 '핫플레이트 하나'짜리 주방. 환승 없는 대중교통. 한 번 나갔다 오면 2만 원이 깨지는 교통비. 식당 대신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1만 원짜리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유통기한 임박 스티커가 붙은 식재료를 모아 허기를 달랬습니다. 그럼에도 술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영국까지 왔으니 술만큼은 제대로 마셔보자"는 마음으로 펍을 전전했습니다. 맥주 축제 '일링 비어 페스티벌'에서 처음 '사이더'를 마주했을 때, 첫인상은 "이게 뭐지?"였습니다. 빙글빙글 도는 알코올감, 익숙하지 않은 산미와 탄닌. 그런데 마실수록 호기심이 자랐습니다.
김준혁 농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브라이튼 인근의 한 작은 사이더리를 찾아갔습니다. 차 없이는 접근하기 힘든 곳을 인도도 없는 차도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공장을 예상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건 돼지와 닭이 함께 있는 '농장'이었습니다. 태양광 패널로 전력을 자급하고, 착즙에는 수력 에너지를 쓰며, 사과를 짠 뒤 남은 펄프는 돼지 사료로 보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먹지 못할 사과를 기부하면 사이더로 만들어 되돌려주는 로컬 커뮤니티의 순환. "양조는 공정이 아니라 생태"라는 한 문장이 몸으로 와닿았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양조장과 펍을 돌며 놀랐던 점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거리낌 없이 설명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퍼머컬처 방식의 넓은 텃밭, 재사용 알루미늄 캔으로 탄소 중립을 실천하는 포장, 메뉴판과 벽면에 큼지막하게 적힌 "음식은 지역산·자연산으로 유지합니다. 우리 농장에서는 유기농·생명역동농법으로 키운 채소를 사용합니다."라는 문장들. 위스키 양조장에 들어서자마자 보게 되는 것도 스테인리스와 파이프가 아니라 '보리밭'의 파노라마였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원료와 환경, 그리고 농부였습니다.
김준혁 농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자메이카 출신 호스트 부부와 지내며 식생활 철학을 배웠습니다. "마트에서 채소를 사지 않는다. 내가 직접 가보고 믿는 농부에게서만 산다." 뒷마당의 작은 텃밭, 밥 말리가 실천했다는 '이탈(Ital)' 식단 이야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경험은 김준혁 농부에게 자급자족의 감각을 일깨웠습니다. 웨이트로즈에서 처음 사본 6만 원짜리 올리브오일 한 병, 와인 식초 한 병. "비싸다"라고 중얼거리다 한 숟갈 맛보고는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유기농 식재료를 써도 집밥은 외식보다 싸고, 무엇보다 맛과 신뢰가 있었습니다. 파머스 마켓을 찾아다니며 장바구니가 달라졌습니다.
한국에서 만들 수 있는 술, 한국 재료로 가능한 술을 고민했습니다. 맥주는 보리의 제약이 컸습니다. 대신 사과가 있었습니다. 사이더를 본격적으로 배우기로 했습니다. 1박 2일 워크숍에서 착즙을 하고, 풀밭으로 덮인 사과숲을 걸었습니다. '좋은 술은 좋은 재료에서'라는 말이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전력과 물, 노동까지 아끼는 '시스템의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김준혁 농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사과의 고장 헤리퍼드에서 '빅 애플' 행사 두 차례를 모두 참여했습니다. 영국 전통 사이더의 대부, 올리버스의 조언을 들었고, 맨체스터 사이더 클럽 회장에게 소개받아 전통 사이더리에서 봉사하며 일했습니다. 한 곳은 퍼머컬처 라이프스타일을 바탕으로 자연발효를 고집했고, 다른 한 곳은 대규모 납품 농장에서 독립해 '우리 사과의 품격에 맞는 술'을 만들겠다며 자기 브랜드를 세운 생산자였습니다. 이들이 강조한 건 분명했습니다. "좋은 사과는 생물다양성이 높은 농장에서 나온다." 그리고 "훌륭한 사이더는 땅바닥에서 주워 담은 사과의 야생 효모가 만든다." 자연, 토양, 미생물, 사람이 한데 엮인 술. 김준혁 농부가 꿈꾸는 사이더의 원형이었습니다.
김준혁 농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김준혁 농부는 영국에서의 배움을 토대로 '지속 가능한 술'의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 탄소 배출량이 낮은가- 원료 자급이 가능한가- 부산물이 자연으로 선순환되는가- 지역사회와 함께 하고 기여하는가맥주·와인의 높은 탄소발자국, 보리·포도의 집약 재배, 화학비료·경운에서 비롯되는 환경 부담, 한국의 방목 금지 정책으로 인한 부산물 처리의 어려움 등을 확인하며, 사이더가 가진 비교우위와 지역 순환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런던 프라이드의 세미나에서 얻은 "토양 유기물 1% 증가가 가뭄 저항성을 5-10일 늘린다"는 데이터, "보리 재배 탄소발자국의 85%는 재배 방식에서 온다"는 경고는 김준혁 농부의 설계를 바꾸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기네스 맥주 투어가 '양조 기술'이 아닌 '아일랜드 보리'로 시작하는 이유 또한 명확해졌습니다.
김준혁 농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영국 말미에 찾은 크냅(Knepp. 이사벨라 트리의 재자연화 농장)에서 재자연화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점질토에 지역 건축 폐기물을 파쇄해 섞고, 등고선과 물길을 따라 식생이 스스로 자리 잡도록 돕는 정원. 씨앗을 한 번에 흩뿌리고, 해가 드는 방향·습도·토심에 따라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몇 해에 걸쳐 기록하는 방식. 돼지가 땅을 파헤쳐 만든 요철에 빗물이 고이고, 그 웅덩이가 새로운 미생물을 부르고, 가장자리가 생물다양성을 키우는 장면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인간은 통제자가 아니라 '관찰자이자 조력자'라는 태도가 선명했습니다.
김준혁 농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귀국 후 김포 한강변 누산리에 밭을 얻었습니다. 물이 고이고 바람이 센 점질토의 땅. 트랙터 대신 삽을 들었습니다. '갈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삽으로 들어 올려 두둑을 높이고, 곡선을 따라 웅덩이와 물길을 만들었습니다. 가장자리가 생태를 살린다는 믿음으로 구부러진 밭을 설계했습니다. 버섯 폐배지를 톤백째 들여와 퇴비를 만들고, 유기물을 꾸준히 보태며 토양의 호흡을 기다렸습니다. 생장은 남들보다 보름, 길면 한 달 늦지만, 맛과 밀도에서 오는 손끝의 응답이 김준혁 농부를 붙잡았습니다. 느림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그 속도를 존중합니다.
김준혁 농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이제는 사과를 주워 담고, 사이더를 빚고, 부산물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냅니다. 주민들과 사과를 짜고 주스를 마시며, 자원봉사와 물물교환이 오가는 장면을 일상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영국에서 보았던 '동네 아이가 구운 파운드케이크를 행사에서 파는' 소박한 장면을, 김포의 장터에서도 자연스럽게 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한국의 방목 금지 같은 제약 속에서도 순환의 고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퍼머컬처와 전통 농법, 자연순환 농업을 겹겹이 적용하고 있습니다.
술과 함께 밭을 둘러싼 생활 기술도 자급을 지향합니다. 새송이 버섯 배지를 이삿짐처럼 들고 다니며 길러 보았고, 와인을 배우며 포도나무의 생리와 전정을 익혔습니다. 재생유기농 밀로 빵을 구워 '원료-제분-발효-굽기'의 길을 이해했고, 허브를 키우며 레몬밤과 바질, 그리고 컴프리 같은 다년생 식물의 토양 역할을 배웠습니다. 콤부차의 스코비는 지금도 부엌에서 건강하게 번식 중입니다. 이런 '작은 자급'들이 모여 농장과 양조의 필수 감각을 길러주었습니다.
김준혁 농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농담>결국 김준혁 농부의 꿈은 단순합니다. 멋진 과수원을 마련하여 사람들을 초대하고, 우리가 키운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우리가 빚은 사이더로 잔을 채워 계절을 함께 건너는 잔치를 여는 일입니다. 가을이면 함께 사과를 주워 발효통에 담그고, 겨울에는 빵을 굽고, 봄에는 모종을 나누며, 여름에는 그늘 아래서 잔을 부딪치는 삶. 베짱이처럼 노래하는 하루가, 사실은 가장 성실한 순환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김준혁 농부는 여전히 배우는 중입니다. 토양의 속도를 존중하고, 지역의 숨결을 듣고, 몸을 단단히 돌보며, 생태·양조·공동체의 원을 조금씩 넓혀 가고 있습니다. 술은 결국 땅의 언어로 말하는 문화입니다. 좋은 술을 만든다는 것은 좋은 땅을 만들고, 좋은 이웃과 시간을 발효시키는 일입니다. 김준혁 농부는 김포 오공팜에서 그 발효의 시간을 성실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농담><농담> 시즌2 '농담유랑기'는 10월, 11월 마지막주 월요일 저녁 7시, 앞으로 두 차례 더 온라인(
['농담유랑기' 신청])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청년 농부들의 재미난 유랑기가 궁금하시다면 꼭 한 번 만나러 가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