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을 통해 <귀농한 도시농부들과 대화 시리즈>가 진행되고 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8월 한 달간 매주 화요일, '도시농부로 살다가, 더 농부다운 삶을 찾아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온라인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가 마련한 <귀농한 도시농부들과 대화 시리즈>는,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도시농업 활동을 하다가 귀농해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좀 더 생태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는 용기 있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8월 12일(화)에는 시리즈의 첫 번째 시간으로,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5년 동안 도시농부로 활동하다가 결국 귀농을 선택해 2년 8개월째 전남 곡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임진실 농부의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현재 "자율과 협동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 임진실 농부는 이야기를 통해 단순히 직업을 바꾼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전환했다고 전했습니다.
임진실 농부가 <귀농한 도시농부들과 대화 시리즈>에서 귀농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천도시농업네크워크 온라인(zoom) 갈무리임진실 농부의 귀농 이야기는 대학 시절의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도시의 경쟁적이고 소비적인 삶에 회의감을 느끼며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 임진실 농부는, 충북 보은의 한 공동체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처음으로 감자도 엄청 많이 캐보고, 낫질도 해보고, 들깨도 심는데 그게 살아 있다는 경험을 주더라고요. 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살아 있는 느낌이었고. 도시에서는 뭔가를 죽이는 삶을 사는 것 같았는데, 여기는 정반대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경험을 통해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삶, 이런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임진실 농부는 그 경험을 글로 남겼습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서로 힘을 빌릴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꾼다." 이 다짐이 결국 귀농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임진실 농부가 <귀농한 도시농부들과 대화 시리즈>에서 귀농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천도시농업네크워크 온라인(zoom) 갈무리물론, 바로 농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임진실 농부는 귀농을 꿈꾸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먼저 제주와 전북 장수의 선배 농부들을 찾아다니며 유기농, 토종씨앗, 직거래의 철학을 배웠습니다.
"제주에서 한 달, 전북 장수에서 3주 정도 머물면서 유기농 농사에 대해 배웠어요. 그런데 같은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부라 하더라도 각자의 삶과 농사의 철학은 다 다르시더라고요. 많은 이야기와 경험을 통해 농부의 삶 자체가 유기적이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농사를 짓는 방식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인천으로 돌아온 임진실 농부는 농사의 이론과 기술을 좀 더 깊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도시농부 기초 과정과 전문가 과정 교육을 받으면서 농사의 한 해 살이를 처음 경험하게 되었어요. 이 교육을 통해서 농촌에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제가 꿈꾸던 농사의 가치가 도시의 텃밭을 매개로도 실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좀 놀랐고, 바로 도시농업에 빠지게 되었어요."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 합류한 임진실 농부는 5년 동안 텃밭 공동체를 꾸리고, 100평 밭을 일구는 등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씨앗을 심고,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씨앗 나눔 장터'를 열기도 했습니다. 꿈꾸던 농사를 도시에서 실험하고, 공동체와 생태적 가치를 실현하는 가능성을 찾던 임진실 농부는, 하지만 늘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주체적으로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부족하기도 했고, 농사 기반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와 활동가로서의 활동 사이에서 말과 실제 삶의 괴리감이 커지는 게 힘들더라고요. 자꾸 남의 것을 빌려다가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 같아서 부채감 같은 게 생기기도 했어요. 특히 건강한 먹거리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바쁘다는 이유로 일상에서는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 등등 문제의식이 쌓이게 됐고, 결국은 안식년을 갖게 되었어요."
임진실 농부가 <귀농한 도시농부들과 대화 시리즈>에서 귀농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천도시농업네크워크 온라인(zoom) 갈무리2023년, 안식년을 보내던 임진실 농부는 청년 귀농 프로그램 '청년 자자공'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 자자공'은 '자연, 자립, 공유'의 정신을 바탕으로 선배 귀농인들이 마련한 전남 곡성의 셰어하우스, 커뮤니티 가든, 토지 기반에서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일단 경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곡성으로 왔는데, 자자공에서 선배 귀농인들이 준비해 준 덕분에 안정적으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또래 청년들과 함께 하고 선배들의 도움을 받으니 훨씬 든든했죠."
임진실 농부가 자자공 동료들과 함께 처음 도전한 것은 쌀농사였습니다. 300평의 논을 공동으로 경작해 손모내기를 하고 토종벼를 심었습니다. 수확은 1인당 약 60kg으로, 자급이 가능한 양이었습니다.
"논농사를 제대로 지어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직접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은 쌀의 맛은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쌀농사가 이렇게 큰 수고를 필요로 한다는 걸 몸으로 배웠고, 자급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큰 기쁨이었어요."
임진실 농부는 논농사뿐만 아니라 밭농사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콩, 들깨, 고추, 바질, 가지 등을 무경운·무투입 방식으로 열심히 키웠지만 고라니 피해 등으로 실패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실 농부는 그 과정조차 의미 있게 받아들였습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원리가 자연농이나 유기농업과 맞닿아 있어서 도시에서 이론적으로 공부했던 것과 비슷하게 실제 적용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사실 농사를 짓는 방법 같은 것보다는 농사를 짓는 데 있어서 결과를 대하는 자세라든가 실제로 내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떤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고 없고를 가늠하고 배우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특히 이런 농사가 가능하고, 다른 사람과 나눌 만큼 수확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어 좋았어요."
귀농 이후 임진실 농부는 농사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적정 기술도 익혔습니다. 집의 처마나 데크를 만들면서 각종 공구를 손에 익히는 한편, 생태 화장실 퇴비를 만들고, 옷을 직접 제작하고, 요리 실력도 키웠습니다.
"처음으로 용접도 해보았는데, 똥손 중에 똥손인 저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많은 것들이 가능해지더라고요. 이제는 직접 감물 염색을 하고 바느질을 해서 옷도 만들고, 하다 보니 도시 생활에서와는 달리 요리도 잘하게 되어서 먹는 것도 맛있게 잘 해결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임진실 농부가 <귀농한 도시농부들과 대화 시리즈>에서 귀농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천도시농업네크워크 온라인(zoom) 갈무리임진실 농부의 귀농 생활을 지탱해 주는 또 다른 축은 공동체입니다. 곡성의 친구들과 풍물패, 뜨개모임, 요가, 수제맥주와 빵 만들기 동아리 등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고, 제철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직접 기획하고 연출하고 출연하는 농민 영화제, 음악회, 운동회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장이 되었습니다.
"인천에서도 굉장히 바쁘게 살았는데 여기서도 그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어요. 다만 큰 차이가 있다면 '자율적이다'라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거의 하지 않고 정말 원하는 것들을 선택해서 할 수 있었고, 제가 살고 싶은 방향으로 실천하면서 살 수 있었어요. 이 삶이 내가 배웠던 농생태적인 삶과 동일하고, 내가 꿈꿨던 자급하고 자율적인 삶이라는 판단이 섰어요. 그래서 인천의 친구, 동료들에겐 죄송하지만 안식년 후 복직을 포기하고 완전한 귀농을 결심했습니다."
물론, 귀농을 하며 원하던 삶을 찾긴 했지만 홀로 서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살 집을 찾는 것부터 새로운 논밭을 구하는 것, 스스로 농사를 짓는 것, 생활하는 것 모든 것이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빈 집은 많지만 실제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워 집 찾는 것부터 엄청나게 고군분투를 했고, 새롭게 논밭을 만드는 것도 주변의 많은 도움과 협업으로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 가고 있습니다. 특히 먹거리에 있어서 자연에서 나는 것들을 최대한 먹고 다년생 작물을 중심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노력 중인데, 다행히 농번기나 아주 더울 때가 아닌 이상 식탁이 굉장히 풍성하게 차려지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현재 임진실 농부는 '청년 자자공'의 운영진을 맡아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먹거리나 다양한 교육∙체험 사업들을 만들고 있고, 기후위기 대응 활동, 지역의 현안들을 돌아보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귀농을 해서도 나는 왜 계속 이렇게 살까'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저와 같이 귀농의 꿈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이 계속 들어올 수 있도록 널리 소개하고 농생태적 가치를 좀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 일을 맡게 되었어요.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배우고 쌓아왔던 경험을 여기서 잘 발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임진실 농부가 <귀농한 도시농부들과 대화 시리즈>에서 귀농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천도시농업네크워크 온라인(zoom) 갈무리끝으로 임진실 농부는 실질적인 경제적 문제부터, 친환경 농사에 대한 어려움, 주거의 불안정성 등 쉽지만은 않은 귀농의 생활을 말하고 현재의 고민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꿈을 찾아 이루어 가고는 있지만 함께 농사짓는 친구들이 맞닥뜨리는 어려움들을 지켜보면서 '그래서 나의 미래가 저렇게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지금은 나도 저런 상황이 되면 또 어떻게 해야 될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임진실 농부가 <귀농한 도시농부들과 대화 시리즈>에서 귀농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천도시농업네크워크 온라인(zoom) 갈무리임진실 농부가 전한 한 시간 가량의 이야기는 청년들이 귀농을 준비하면서 어떤 고민과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현실에서 어떻게 이루어 가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었습니다. 임진실 농부는 이날 이야기를 시작하며 "제가 원하는 삶은 많은 사람들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이고, 이런 것들이 좀 더 많이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꿈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부디 귀농의 꿈과 함께 원하는 삶도 이루어지길 바라봅니다.
<귀농한 도시농부들과 대화 시리즈>는 첫 번째 임진실 농부에 이어 남원 실상사농장의 오창균 농부와 제주에서 농부로 정착한 김안나 농부의 이야기를 차례로 전할 예정입니다. 좀 더 자세한 정보와 소개는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홈페이지(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