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에서는 도시농부들의 농사를 돕고 다층적인 관점에서 농업을 바라볼 수 있도록 다양한 강좌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5월과 6월에는 온라인을 통해 3회에 걸쳐 <하늘의 인문학, 과학 그리고 실용>이라는 제목으로, 24절기를 텃밭에서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안철환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6월 5일(목) <하늘의 인문학, 과학 그리고 실용>의 마지막 시간에는 "절기의 실제 - 실용적으로 하늘 활용하기"라는 제목으로 절기와 음력을 단순한 전통적 풍습이나 명절 행사로 지내는 것을 넘어 생명력과 기운이 가장 왕성한 시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농사 계획을 세우는 실용적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이 전해졌습니다.
<하늘의 인문학, 과학 그리고 실용>이라는 제목으로, 안철환 전통농업연구소 대표가 24절기를 텃밭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온라인 갈무리안철환 대표는 먼저 24절기를 단순한 농경시대의 산물로 보지 않고, 선사시대 인류의 원초적인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철환 대표는 몸 전체로 자연과 교감하고 하늘을 읽으며 생존했던 선사 인류는 태양과 달, 별의 주기를 통해 시간을 측정하고, 수를 인식했다고 보고, 특히 '달이 12번 돌면 1년이 된다'는 개념은 자연 관찰을 통해 이뤄진 놀라운 통찰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이와 함께 안철환 대표는 12지지(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가 음력의 12달과 결합된 시간 체계임을 설명하며, 이 체계에서 24절기의 원형이 나왔다고 보았습니다. 12지지를 중심으로 한 시간 인식이, 태양력과의 오차를 보완하기 위해 절기를 '12중(中) + 12절(節)'로 확장한 것이 24절기라는 해석입니다.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온라인 갈무리중(中)은 음력 각 월의 '중심이 되는 시기'이며, 절(節)은 중과 중 사이를 채우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음력 1월의 중은 우수이며, 그 앞의 절은 입춘입니다. 이렇게 배치된 중과 절의 구조는 달의 주기와 태양력의 간극을 조절하고 보정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와 같은 절기의 실질적 활용은 농사에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입춘이 음력 12월에 드느냐 1월에 드느냐에 따라 봄철 기후의 시작 시점을 예측할 수 있고, 망종과 하지의 간격을 보면 가뭄의 지속 여부나 장마 시작 시점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안철환 대표는 이처럼 24절기가 단순한 계절 나눔이 아니라, 날씨와 농사 시기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천문학적 지혜의 산물임을 강조했습니다.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온라인 갈무리각각의 '중'과 '절'의 시점과 달력상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계절과 기후의 미묘한 변화를 설명하고, '동지', '춘분', '추분'과 같은 큰 절기들은 '중'과 '절', '보름'의 시점에 따라 세분화되어 해석된다고 전한 안철환 대표는 특히 가장 실용적이고 중요한 절기로 '중양절(重陽節)'을 꼽았습니다.
안철환 대표는 '중양절'을 단순히 음력 9월 9일에 한정하지 않고, 음력 1월 1일(설날), 3월 3일(삼짇날), 5월 5일(단오), 7월 7일(칠석), 9월 9일(중양절) 등 양이 겹치는 날을 모두 포함하여 확장해 설명했습니다. 안철환 대표는 이 다섯 날짜를 통칭해 "13579"라고 부르며, 이 숫자 배열 자체가 농사력의 주기를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양의 기운이 겹친다는 것은 파종과 성장을 암시한다고 전한 안철환 대표는 절기 중에서도 가장 양의 기운이 충만한 이 시기들은 작물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5월 5일 단오는 그중에서도 '양의 피크'로 해석해 이 시기를 "생명력이 가장 폭발적으로 터지는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곧 여름 작물의 시작점이자 본격적인 벼농사 진입기로 연결되는 때로, 단오 무렵의 농사는 땅의 기운과 생명의 타이밍을 맞추는 민감한 작업이며, 실제로 많은 전통 농가에서는 이날을 기준으로 모내기 일정을 조율합니다.
안철환 대표가 전한 '13579' 다섯 개의 중양절과 농사의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설날과 대보름, 준비와 시작의 때중양절의 시작점인 음력 1월 1일, 즉 설날은 농사에서 '시작'이라기보다는 '준비'에 가깝습니다. 종자를 고르고 퇴비를 만들며, 한 해 농사를 위한 구상을 세우는 시기입니다. 이와 관련해 안철환 대표는 입춘과의 관계를 함께 살폈습니다. "입춘이 설날보다 먼저 들면 봄이 일찍 오지만 춥고, 설날 이후에 입춘이 들면 봄이 천천히 오지만 따뜻합니다. 중요한 건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절기와 음력의 상호작용을 읽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운의 차이를 바탕으로 안철환 대표는 본격적인 농사 준비는 '정월 대보름'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설날은 노인이 종자를 고르고 퇴비를 돌보는 정도지만, 대보름에는 불태우기(달집 태우기, 쥐불놀이), 땅 고르기 등 본격적인 노동이 시작됩니다. "집 나간 자식도 대보름엔 꼭 돌아와야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농사력의 진짜 시작은 대보름입니다.
삼짇날과 청명, 파종의 기준점봄 파종의 기준은 삼월 삼짇날(음력 3월 3일)과 청명(양력 4월 4-5일경) 사이의 위치에 따라 결정됩니다. 안철환 대표는 이를 매우 구체적으로 도식화하며 설명했습니다. 만약 청명이 음력 2월 25일에 들면, 삼짇날은 그 이후가 되므로 파종은 삼짇날 중심으로 음력 2월 말쯤, 양력으로 4월 7-8일 경이 됩니다. 반면, 청명이 음력 3월 7일이라면, 삼짇날은 청명 이전이 되고 파종 시기는 음력 3월 4-5일, 양력으로는 4월 2-3일이 적절합니다. 이런 미묘한 차이는 냉해를 피할 수 있는지를 결정짓습니다. 안철환 대표는 "이걸 외워서 하려면 헷갈리지만, 당해 연도의 절기력을 보고 현장에서 판단하면 실수할 일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십자화과(배추, 무, 열무 등) 작물은 특히 냉해에 약하기 때문에 파종시기 계산이 중요합니다. 먹기 위한 파종이라면 절기에 맞춰야 하고, 씨앗 확보를 위한 목적이라면 오히려 일찍 심어 냉해를 일부러 겪게 하는 전략도 가능합니다.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온라인 갈무리하지와 단오, 벼 모내기와 밀보리 수확의 교차점하지는 여름철 농사의 분기점입니다. 하지 무렵은 벼를 심고 밀∙보리를 거두는 시기입니다. 안철환 대표는 이 시기를 "모든 생명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절기에 맞춘다고 해도 지역과 토양 상황에 따라 전략은 달라져야 합니다. 안철환 대표는 "지하수조차 말라가던 올해, 단오 전에 모내기를 했지만, 가뭄 속에서는 논의 조건이 매우 중요했다"며 절기와 현장 대응 사이의 균형을 강조했습니다. 천수답에서는 하지 이후의 비를 기다려야 하고, 물이 잘 되는 논은 다소 일찍 모를 내도 무리가 없습니다.
칠석, 가을 작물의 시작점음력 7월 7일 칠석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 작물을 준비하는 시점입니다. 특히 배추, 무와 같은 가을김장 작물은 이 시기에 계획됩니다. 안철환 대표는 입추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어 배추가 웃자라기 쉽고, 처서 이후는 너무 늦기 때문에 처서를 기준으로 칠석과의 중간 지점을 파종 적기로 봤습니다. 그러나 현대 농업에서는 이보다 훨씬 일찍 파종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안철환 대표는 이를 농약이나 비닐멀칭 등 외부 기술에 의존하는 결과라고 비판하며, 자연의 흐름에 더 맞는 농사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중양절, 월동작물의 시작다시 돌아온 중양절, 음력 9월 9일은 월동작물인 밀·보리 파종의 적기입니다. 안철환 대표는 "어느 해는 밀을 한로 무렵(음력 8월 하순)에 심었는데, 웃자람 현상이 심하게 나타났고, 품질이 떨어졌다"며 절기만 보지 말고 음력 날짜와의 관계도 반드시 봐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한로(양력 10월 8-9일경) 무렵이라 해도 음력으로는 한참 이른 경우가 있고, 이럴 때는 웃자람 현상이 생겨 작물이 월동에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늦게 심으면 겨울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절기'와 '음력'을 함께 읽는 능력이 전통농업의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끝으로 안 대표는 알곡 작물의 경우 가급적 음력 보름 이전에 심는 것이 좋다고 전했습니다. 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상현-보름 사이가 씨앗의 생장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봄과 가을은 그걸 따지지만 여름은 그렇게 따지지는 않고 있다"고 전한 안철환 대표는 "여름은 전체적으로 양의 기운이 지배할 때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안철환 대표의 이번 강좌는 단순한 절기 소개가 아니라, 시간의 언어로 땅을 읽는 법, 생명을 타이밍에 맞게 불러내는 법에 관한 깊은 통찰이었습니다. 절기를 신앙처럼 따르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아닌, '읽고 해석하고 조율하는' 감각. 이것이 전통농업의 핵심이며, 오늘날에도 유효한 생태적 기술이 될 것입니다.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는 앞으로도 다양한 온오프라인 강좌와 활동을 통해 도시농부들에게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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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