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농부포털'4월 11일'을 어떤 날로 기억하고 계신가요? 4월 11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기려야 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입니다.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선포하고 민주주의를 천명한 3・1 운동의 정신에 따라, 이 땅에 역사상 최초로 민주공화제 정부가 수립된 날입니다. 한편으로는 도시농부들에게 또 다른 의미로 역사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바로 <도시농업의 날>입니다.
<도시농업의 날>은 2015년 도시농업 전국 네트워크가 출범하며 처음 제안, 선포된 이래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하여 기념되다가, 2017년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 공포되면서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어 매년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와 함께 각 지자체, 민간단체들의 기념식과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도 농림축산식품부는 도시농업이 주는 공익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고, 도시민들의 도시농업 체험을 통한 즐거움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도시농업의 날>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지자체나 도시농업 민간단체의 기념행사와 연계해 마련된 각종 씨앗과 모종 나눔, 토종 강연, 반려식물 클리닉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전국 5대 권역, 7개 도시(인천 해바람텃밭, 시흥 배곧생명공원, 울산 도시농부학교, 창원 제덕공영텃밭, 전주 도시농업체험농장, 순천 신대도시텃밭, 계룡 새터산근린공원)에서 열렸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과학기술정책과 김기연 과장은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2011년 제정된 이후, 도시농업 참여자는 2024년 150.4만 명으로 약 9.8배 증가하였고, 도시텃밭 면적은 952ha로 약 1.2배 확대되었으며, 테라리움, 바이오월 등 다양한 형태의 도시농업 관련산업도 성장하고 있다"면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도시공간 내 헬스케어 식물과 다양한 반려식물을 농림 자원으로 발굴·확산하고, 이를 활용한 사회정서 교육형 텃밭 등 한국형 도시농업 모델을 개발하는 연구·개발(R&D)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전했습니다.
<탄소중립 관점에서 보는 '이끼 활용 세미나'> 참가자들이 <도시농업의 날>을 맞아 기념식을 열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도시농업의 날>이 4월 11일로 지정된 것은 4월이 봄과 함께 농사의 의욕이 충만해지는 달이고, 11일은 흙(土)을 상징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숫자 10을 한자로 쓰면 '十'이 되고, 숫자 1을 한자로 쓰면 '一'이 되어 합치면 '土'가 됩니다. 이에 따라 농업과 관련된 날은 11일로 지정되곤 합니다. '농업인의 날'은 11월 11일, '흙의 날'은 3월 11일입니다.
<도시농업의 날> 기념식에서 빠지지 않고 낭독되는 것이 바로 '도시농부 선언문'입니다. '도시농부 선언문'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2017년 총회에서 채택되어, 같은 해 농림축산식품부의 <도시농업의 날> 기념행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도시농부는 단순히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공익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선언입니다.
도시농부 선언문
대도시를 중심으로 온 나라에 퍼지는 도시농업은 사람들의 경작본능을 일깨우며 확산되고 있다. 도시농업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 도시농부는 도시농업운동의 출발에서부터 도시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실천해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시농부는
- 회색의 콘크리트와 도시의 버려진 공간을 생명이 자라는 녹색의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
- 단절된 세대와 이웃,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잇는 공동체텃밭을 만들어간다.
- 버려지는 유기자원을 이용한 자원순환 퇴비 만들기, 빗물의 이용, 화학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배우고 실천한다.
- 꿀벌을 기르며, 풀과 곤충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생태도시의 미래를 일군다.
- 텃밭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며, 농부학교를 통해 시민교육의 장을 형성해 간다.
이러한 도시농부들의 실험과 도전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공동체텃밭은
- 문화적, 사회적, 세대 간 다양성을 담고 이웃과 함께 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 자연체험, 생물다양성, 식량주권과 토종종자 보전의 공간이다.
- 도시와 농촌 농업을 잇는 다리이다.
- 자연과 공생하는 인류,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공정한 가격,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인식을 높여준다.
- 환경교육, 공동학습, 교환, 공유의 장소이며, 휴식과 치유를 위한 공간이다.
-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더 많은 공동체텃밭, 더 많은 경작공간, 더 많은 도시농부들을 요구하고 있다.
- 우리는 공동체가 자라나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가 싹트며, 인류의 근본인 먹거리와 농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희망의 씨앗인 이 텃밭들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도시가 우리의 텃밭이다. 도시를 경작하자!
대한민국 도시농업의 산증인이자 선언문의 초석을 다진 이들 중 하나인 안철환 온순환협동조합 대표는 "도시농부 선언문의 이해"라는 특강
([탄소저감은 이렇게. <탄소중립 관점에서 보는 '이끼 활용 세미나'>])을 통해 '도시농부 선언문'에 담긴 의미를 '시민의 기본권으로서 경작권 실현', '식량 자급안의 대안', '탄소중립, 기후농업', '공동체 복원', '미래농업, 미래농부'라는 5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안철환 온순환협동조합 대표가 <탄소중립 관점에서 보는 '이끼 활용 세미나'>에서 "도시농부 선언문의 이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시민의 기본권으로서 경작권 실현'은 먹거리를 자급할 경작권이야말로 행복, 자유, 평등, 사회, 청구, 참정권의 근본이 되는 권리로, 도시농업을 통해 도시민들이 농사를 지어 자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 나아가서는 모든 사회가 다시 사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안철환 대표는 "최근 대두되는 기후위기도 자급자족을 전제로 하는 모든 생명이 다 함께 사는 먹거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식량 자급안의 대안'은 도시농업을 통해 우리의 먹거리를 '사서 먹는 식량'이 아니라 '자급하는 식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쿠바의 도시농업을 그 성공적인 사례로 든 안철환 대표는 "식용 도시(edible city)나 서리텃밭(누구나 따 먹을 수 있게 하는 텃밭)이 이상적인 방향인데, 10년이 훌쩍 넘는 우리나라의 도시농업에서 아직 혁신적인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해 아쉽다"며 "현실적으로 도시 안에서의 혁신이 어렵다면 도시농부들이 농촌으로 가서 관계인구로 엮이는 새로운 발상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습니다.
'탄소중립, 기후농업'은 도시농업을 통해 도시의 다양한 공간을 녹색으로 만들고, 도시의 생물다양성을 증진하며, 자원순환을 앞당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핵심은 퇴비화를 통한 순환으로 땅에서 나온 것을 다시 땅으로 되돌려 탄소중립을 이루고, 땅심을 회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안철환 대표는 "자원순환에 관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확산이 쉽지 않다"면서 "농촌에서도 퇴비를 만들지 않는 실정이니 도시농부들이 더 앞장서서 퇴비화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공동체 복원'은 도시농업을 통해 파편화된 도시 안에서의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로, 안철환 대표는 이것이 도시농업의 성과 중 가장 미진한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안철환 대표는 "현재 도시농업이 분양 텃밭을 통한 1년짜리 농사, 머물다가 떠나는 농사로 이루어져 공동체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조건"이라며 "도시농업 정책이 열심히 하는 농부에게 경작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도시농업의 범위를 도시에 국한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안철환 대표는 "현재 농지법을 준용해 300평 이하 경작자를 도시농부로 만들어 소농으로 인정하는 등의 개념으로 확장하면 저절로 공동체가 살아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미래농업, 미래농부'는 미래의 농업을 책임질 미래의 농부는 우리의 아이들이라는 의미로, 안철환 대표는 "우리 도시농업의 꽃은 학교텃밭"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 미래의 도시농업은 치유농업과 사회적농업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밝힌 안철환 대표는 "여기에 더해 오래된 미래인 토종을 보존하는 것이 향후 농업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사)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과 <도시농업의 날>이 공교롭게도 한 날로 만났습니다. 암울했던 시기에 새로운 의지와 희망을 심었던 그때처럼, 또 한 번 <도시농업의 날>을 맞아 위기의 시기에 우리의 미래와 지구를 살리는 도시농업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