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907 기후정의행진> 본집회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9월 7일(토) 서울 강남의 한복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색색의 깃발과 손팻말을 들고 강남역부터 신논현역까지 700m의 도로를 가득 메운 2만여 명의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고 외쳤습니다. <907 기후정의행진>은 그렇게 기후변화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며, 단순한 탄소 감축을 넘어 사회 구조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강남구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907 기후정의행진> 본집회가 열렸다. 2만여 명의 참가자들이 신논현역부터 강남역까지의 700m 도로를 가득 메웠다. ©서울농부포털'기후정의(climate justice)'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특히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에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저소득 국가나 지역사회, 그리고 기후위기의 피해를 많이 받는 노동자, 농민, 여성, 원주민 등의 권리를 강조하며, 기후변화가 이들에게 미치는 불평등한 영향을 비판했습니다. 이후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기후 활동가와 시민단체들이 기후정의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그로부터 다양한 국제적 기후정의 행진들이 각국에서 조직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특히 북반구의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이나 저소득 국가들에게 더 큰 부담을 떠넘기며 자신들의 기후위기 대응책을 정당화하는 문제들이 부각되었던 때로, 기후정의 운동의 정당성이 힘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기후정의 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 세계에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2014년 뉴욕에서 열린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정의 행진인 '피플스 클라이밋 마치(People’s Climate March)'에는 4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해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가수 '이랑'과 907 기후정의 합창단이 본집회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박진영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집행위원장, 강석헌 홍천군 송전탑반대대책위 간사, 박규석 공공운수노조 발전HPS 지부 지부장이 본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아지트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조선형 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 레나 한국여성노동자회 연대사업국장,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907 기후정의행진>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본집회 참가자들이 다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첫 번째 기후정의 행진이 이루어진 이래로 팬데믹 이후 2022년과 2023년에 이어 올해 네 번째 행진이 진행되었습니다. 올해 <907 기후정의행진>의 중요한 메시지는 기후 위기의 영향은 전 지구적이며 모든 사회적 계층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피해는 특히 취약 계층에게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후 재난은 노인, 여성, 어린이, 저소득층,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피해를 미치며, 지금의 탄소저감 정책으로는 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참가자들은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온실가스 감축이 아니라,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인 개발과 착취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글로벌 공급망의 문제, 대규모 생산 시스템의 착취 구조 등이 기후 붕괴를 가속화하는 중요한 요소로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글로벌 경제 구조 자체가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의 <907 기후정의행진>은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진행되었던 예년의 행진과는 달리 강남역에서 출발해 대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는 테헤란로를 경유하는 경로로 기획되었습니다.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대기업들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와 같은 친환경 이미지를 마케팅에 사용하면서도 실질적인 기후위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참가자들이 강남역을 출발해 삼성역까지 행진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행진에는 액을 물리치는 '삼두매', 망자들을 저승으로 보내주는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 처리할 수 없어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핵폐기물통', 죽어가는 생명들과 물에 의지해 살아가는 모든 물살이들을 나타내는 '붉은정령'과 '푸른정령' 등 다양한 상징들이 등장했다. ©서울농부포털행진 도중 참가자들은 역삼역에서는 "생태파괴 난개발에 맞서자!"는 주제로, 선릉역에서는 "기후재난 불평등에 맞서자!"는 주제로, 포스코사거리에서는 "정의로운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자!"는 주제로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외침을 전했다. ©서울농부포털행진의 막바지에 참가자들이 바닥에 누워 죽은 척하며 기후 변화로 인해 위협받는 생명과 지구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다이인 퍼포먼스(die-in performance)를 벌이고 있다. '붉은정령'과 '푸른정령'들이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도시농업 단체들도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907 기후정의행진>은 예정보다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어 별도의 행사 없이 참가자들 각자의 갈무리로 끝을 맺었다. ©서울농부포털<907 기후정의행진>은 기후위기가 단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소득 국가와 지역사회,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환경운동을 넘어선 사회 정의 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 가닿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기후위기의 문제들을 함께 어깨를 걸고 해결하는,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길 바라봅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