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학관 502호에서 생명다양성재단의 '야생학교'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7월 24일(수) 이화여자대학교(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학관 502호에서 야생(野生)에 대해 배우는 학교, '야생학교'가 열렸습니다. 생명다양성재단이 올해 연중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야생의 재시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된 야생학교는, 인간 본위의 관점에서 자연을 재단하고 관리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연에게 주도권을 돌려주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리와일딩(Rewilding. 재야생화)'을 교과목으로 8월 말까지 총 5강의 강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생명다양성재단 김산하 대표가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이날 열린 강좌는 야생학교의 첫 번째 시간으로, 황윤혜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교수가 '조경가의 관점에서 본 도시의 야생화'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강의에 앞서 황윤혜 교수에 대한 소개와 인사를 전한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는 "본격적으로 리와일딩을 확산하고 담론으로 만들기 위해 먼저 그 개념을 배워보자는 의미에서 야생학교를 기획했고, 오늘 첫 시간으로 조경과 리와일딩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며 "인간은 자연에서 한발 물러서라는 리와일딩에 있어 조경은 어쩌면 '적대적'일 수도 있는 관계이지만, 조경의 입장에서 리와일딩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을까 궁금해서 황윤혜 교수님을 모셨다"고 전했습니다.
황윤혜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교수가 '조경가의 관점에서 본 도시의 야생화'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강의에 나선 황윤혜 교수는 먼저 "조경은 다양한 분야를 통합하는 것을 지향하며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며 "싱가포르에서 조경과 함께 리와일딩을 연구하며, 자연에서 배운 모습이 인간의 생활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현재 나의 연구 방향"이라고 밝혔습니다. 황윤혜 교수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싱가포르관에 설치된 작품
'SEEING FOREST'를 소개하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로버트 자오 런후이(Robert Zhao Renhui) 작가의 'SEEING FOREST'는 싱가포르의 2차림(secondary forests. 목재 수확이나 농업 개간, 파괴적 훼손 등 인간이 야기한 교란이 일어난 후 자연 회복의 과정을 통해 재생된 숲 또는 삼림 지대 지역)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황윤혜 교수는 "작품의 내용도 리와일딩의 단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이런 작품이 싱가포르의 대표 작품으로 설치되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전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어두운 면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런 작품이 전면에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환경에 대한 위기감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황윤혜 교수는 "국가 사회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황윤혜 교수의 리와일딩 연구 구조도. 황윤혜 교수는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정책적 부문의 상호 관계와 연결을 설명했다. ©서울농부포털황윤혜 교수는 도시의 리와일딩을 고민하는 자신의 연구 뼈대를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정책적 부문으로 나누고 각 부문의 상호 관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특히 최근 치중해서 들여다보고 있는 부문을 경제적 부문이라고 밝힌 황윤혜 교수는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고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함께, 홍수와 같은 위기 상황에 리와일딩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는 점을 알리는 등 경제적 문제를 건드려야 사람들이 참여하게 된다"면서 "참여한 사람들의 힘을 통해 정책적 부문을 바꿔내야만 사회 전체가 더 나은 환경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황윤혜 교수는 현재 싱가포르에서 진행하고 있는 리와일딩에 관한 자신의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그냥 자라게 놔둬라(Let them grow)'는 싱가포르 내 가꿔진 녹지(공원)를 인간의 개입 없이 그냥 놔뒀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관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황윤혜 교수는 "3곳의 대상지에서 실험을 한 결과 각 녹지는 모두 제각각의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흙의 수분 함량∙밀도∙공극률 등에 대한 개선이 일어났다"며 "좀 더 체계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연구 결과가 필요하지만, 자연에게 맡기면 환경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도시에 남겨진, 이름 없는 숲을 보호하자(Save forests)'는 단순히 숲을 보호하자는 것을 넘어 개발과 리와일딩이 같이 갈 수 있는가를 탐색해 보는 프로젝트입니다. 황윤혜 교수는 "리와일딩이 어렵지 않게 도입될 수 있는 현실적인 시작 지점"이라며 "조경가 입장에서 조경이 자연과 닮아 있을 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를 탐구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로, 기존의 숲은 최대한 살리고 새로운 녹지는 숲과 닮게 만드는 전략적 리와일딩의 과제로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전했습니다.
'돌보거나 두려워하거나(Care or scare)'는 리와일딩을 통해 야생동물이 도시에서 발견된다면 어떻게 공존해 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도시 속의 야생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복잡한 시선을 설명한 황윤혜 교수는 "리와일딩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기존의 보호나 규제를 넘는 '공존'에 관한 갑론을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에 대한 정답은 없기 때문에 리와일딩을 디자인할 때부터 공존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황윤혜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교수가 '조경가의 관점에서 본 도시의 야생화'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이외에 황윤혜 교수는 자연환경에 대한 싱가포르 사회의 인식 변화에 대해서도 소개했습니다. 황윤혜 교수에 따르면, 리콴유가 지배했던 싱가포르의 녹지 정책은 '깨끗하고 쓰레기가 없는, 모기나 뱀이 없는 안전한 환경 유지'에 중점을 둔 '시티 가든(City Garden)'이었지만, 최근 들어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시티 네이처(City Nature)'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19였습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관리가 어려워지면서 방치되었던 도시 정원들이 그럼에도 별문제 없이 유지되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정부도 녹지에 반드시 개입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연 그대로 방치된 숲의 경계만 살짝 정리해 줘도 사람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황윤혜 교수는 "이런 부분이 리와일딩에 대한 조경의 전략이 될 수 있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여러 가지의 자연 형태를 리와일딩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끝으로 황윤혜 교수는 한국의 리와일딩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황윤혜 교수는 "리와일딩에 있어 한국의 경우는 싱가포르에 비해 더 많은 것이 가능할 것"이라며 "특히 한국의 인구 감소는 분명 사회경제적 악재일 수 있지만, 자연환경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리와일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한 황윤혜 교수는 "서울 이외 지역에서의 리와일딩을 생각해 보고, 좀 더 전략적으로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질 수 있을 방법을 고민해서 구현한다면, 한국의 리와일딩은 가능성이 꽤 높다고 본다"고 전하며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황윤혜 교수가 청중들과 질문과 답변을 나누고 있다. ©서울농부포털강의 후에는 청중들과의 질문과 답변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리와일딩을 실행했을 경우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만 자연이 생성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질문에 황윤혜 교수는 "그래서 전략적인 방향 설정이 필요하고 여기에 조경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라며 "다만 생태적 미를 찾는 방향을 고민해야 하고, 그 기준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자연 그대로 놔두어 보니 환삼덩굴 같은 것들이 다 덮어버리더라는 고민에 황윤혜 교수는 "그런 강력한 야생종은 관리가 필요하다"며 "무언가를 넣고 빼자는 것보다는 모든 것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제어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강의 중 나왔던 싱가포르의 시티 네이처 정책에 대한 질문에는 "시민들이 녹지의 질을 비교하며 잔디와 숲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 흐름이 오고 있는 결과로, 이런 흐름이라면 기후위기 속에서 리와일딩이 전 세계 어디서나 적용 가능해질 것"이라는 답이 나왔고, 리와일딩의 세계적 흐름에 대한 질문에는 "유럽에서는 이미 꽤 보편적인 생각으로 자리 잡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국지적으로 늑대 보호와 같은 개별 프로젝트로 실험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끝으로 리와일딩에도 여러 맥락과 층위가 있다는 의견에 황윤혜 교수는 "내가 추구하는 리와일딩은 자연을 무작정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배운 모습을 가져와 인간 생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적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산하 대표는 "생명다양성재단이 인간은 자연에서 한 발 물러서는 리와일딩의 가장 근본적인 지점을 지향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현재는 리와일딩의 다양한 생각들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찾아 파이를 키우자는 것이 방향성"이라며 "아직은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리와일딩의 큰 틀 안에서 무엇이든 잘 되는 것이 많아지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전하며 야생학교의 첫 번째 강좌를 마무리했습니다.
생명다양성재단은 <야생의 재시작> 사업으로 다양한 리와일딩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야생의 재시작. '잡초 두고보자!') 특히 '야생학교'는 9월에 열릴 '아시아 리와일딩 포럼'을 준비하는 사전 오리엔테이션의 개념으로,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매 강좌마다 참여자들을 모집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생명다양성재단의 SNS(
[생명다양성재단 인스타그램])을 방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생명다양성재단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