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제주담을매장 텃밭에서 265번째 '자연그대로 농민장터'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7월 6일(토) 한살림 제주담을매장(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광로 12) 텃밭에서 장터가 열렸습니다. "씨앗을 이어가는, 생태농사를 짓는, 지속가능한 삶을 사는,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나와 우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장터.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한결로 모두를 반기는 장터.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의 265번째 만남에 다녀와 보았습니다.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에서 생산자들이 직접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자연그대로 농민장터(이하 '농민장터')'는 제초제, 화학농약,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Non-GMO(Non-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비 유전자 변형 식품) 농산물과 가공품만을 취급하는 제주의 대표적인 생산자 직거래 장터 중 하나입니다. 그 시작은 2018년이었습니다. 박성인 '농민장터' 전 운영위원장에게 제주에서 올곧이 친환경 농사를 짓던 소농들이 우리의 장터를 만들어 보자고 힘을 모은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친환경 농사라는 게 어렵고 힘들더라도 의미가 있고, 그 안에 즐거움이 있는 것은 분명하죠. 하지만 처음에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사람들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떠나게 만든 게 판매의 문제였어요. 그런 현실을 두고 제주에서 친환경 농사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우리끼리 한 번 장터를 만들어 보자고 얘기가 된 거죠."
그렇게 '농민장터'를 만들자고 모인 '갸하하파머스마켓의 농민들', '어설픈농부들의연합', '언니네텃밭', '제주 토농회', '청정제주농업모임' 다섯 개 단체 구성원들은 장터를 여는 데 있어 두 가지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장터에 나오는 작물들은 제초제, 화학농약,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야 하고, Non-GMO여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친환경 농사라는 게 방법도 다양하고 농부들의 개성이 들어갈 여지가 많기 때문에 서로의 방식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되, 어쨌든 저 네 가지만큼은 지키면서 가자는 것이었죠. 둘째는 정기적으로 매주 한차례 반드시 장터를 열자는 것이었어요. 일반적인 지역 장터들이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데, 사실 농사짓는 입장에서는 늘 수확물이 나오는데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장터는 시늉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었거든요. 또 소비자들에게도 언제나 그날 그 자리에 장터가 열린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찾기도 쉽고 신뢰가 더 생기는 것이기도 하고요. 물론 제주의 특성상 바람이 센 날도 많고 특히 여름이 되면 기상 예측이 불가능할 때가 많아서 몸도 마음도 굉장히 복잡해지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정기적으로 장터를 여는 것이 중요했고 그걸 지켜가고 있어요."
실제로 '농민장터'는 코로나19 시기와 같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태풍이 불 때도, 폭설이 내릴 때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장터를 열어 머지않아 300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박성인 전 운영위원장은 긴 호흡을 가지고 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10년은 이렇게 해야죠. 최소 10년은 돼야 '농민장터'가 제주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봐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에서는 가공품을 판매가 아닌 물물교환 형태로 거래하고, 음식은 자율 기부 형식으로 나누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농민장터'는 여느 장터처럼 농산물을 사고 팔지만 가공품에 한해서는 '물물교환'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농민장터'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마을장터들에 공통적인 문제가 있는데, 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모호한 지점에 놓여 있다는 것이에요. 특히 장터에서 가공품을 판매하려면 기업이나 대규모 농가에서나 가능한 각종 허가나 자격을 갖춰야 하는데, 개인이나 소농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대처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게 물물교환이었어요. 예를 들어 소비자가 장터에 나온 매실청을 구매하고 싶다면 판매자가 원하는 물품을 바로 옆의 한살림 매장에서 사다가 교환하는 등의 방식이죠. 음식을 조리해 판매하는 것도 법적으로는 안되기 때문에, 자원자가 장터 안의 농산물들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면 원하는 분들이 자율적으로 기부를 하고 가져가는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막 활성화된 건 아니지만 나름의 방법을 찾아보는 거죠."
마을장터가 활성화되면서 그 법적 지위에 대한 논의도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소농들이 가공품을 판매하려면 제조업자 내지는 유통업자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을 타개해 보려는 움직임도 농민시장 단체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농부시장 연대의 시작점. '2023 농부시장 포럼'"]"조례 개정 등을 통해서 농민시장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데, 2018년에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가 유야무야 된 적이 있었어요. 물물교환은 어디까지나 저희 '농민장터'가 나름으로 고안한 방법인 것이고, 제도의 문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힘을 모아서 큰 틀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봐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수공예품 등의 소품도 판매하는 프리마켓(free market)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농부가 아니더라도 친환경 농사의 가치에 동의하고 직접 만든 제품만 판매한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누구나 판매자로 동참할 수 있다. ©서울농부포털박성인 전 운영위원장은 '농민장터'의 가장 큰 의의를 '즐거움',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판매자들이 모여 만든 장터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파는 게 좋은 것이고, 중요한 것이기도 하죠. 하지만 '농민장터'의 방점이 꼭 거기에 있지는 않아요. 서로를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어우러지는 게 '농민장터'의 가장 큰 즐거움이고 의의죠. 매주 판매자들이 제주 전 지역에서 물품을 이고 지고 와요. 와서는 천막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발적으로 서로 뭐라도 장터에 보태려고 해요. 돈을 벌겠다고 온다면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겠죠. 표정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다들 그냥 모이는 게 즐거운 거예요. 찾아주시는 소비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장터를 들렀다가 즐거운 마음을 담으면 다른 사람들을 연결시켜요. 서울에서 누가 콩을 사고 싶은데 누구 없어요 하면 여기를 알려주고, 제주 감귤을 먹고 싶어요 하면 '농민장터'를 소개하는 거죠.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정보를 나눌 수 있는 허브가 되고 있어요. 판매자가 곧 농부니까 농사 방법도 알려주고 농부로 사는 경험도 들려줄 수 있고. 그렇게 농사를 지어 다시오면 자연스럽게 이곳이 유통 플랫폼이 되는 거죠."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는 한살림과 함께 자체 텃밭을 만들어 '자연그대로 텃밭학교'를 운영하고, 채종포에서 토종씨앗을 채취하며, 퍼머컬처 텃밭 '가이아의 정원'을 가꾸고 있다. 텃밭 한 편에는 판타지 영화 속 모습 그대로 '호빗 만화방'도 만들어 찾는 이들에게 재미를 주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농민장터'는 '노동의 가치', '농업의 가치', '생태적 가치'를 공유하는 농민들, 생산자와 소비자, 또 소비자와 소비자가 만나 그 가치와 문화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박성인 전 운영위원장은 '농민장터'가 단순히 친환경 물품을 파는 장터가 아니라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놀이터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농업에 있어서나 생태적으로나 지금이 위기 시대라고 하잖아요. 이런 문제들의 해결이라는 게 농부나 생산자나 소비자 누구만의 몫이 아니에요.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해법이 나올 텐데, 그런 의미에서 '농민장터'는 문제 해결을 위한 아주 작은 몸짓이라고 생각해요. 취지에 동의하시는 모든 분들이 여기 모여서 수다도 떨고 같이 놀기도 하면서 즐겁게 방법을 찾기를 바라요. '농민장터'는 매주 토요일 언제나 이곳을 지키고 있으니까 누구라도 오셔서 놀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성인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전 운영위원장이 아코디언 연주로 장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농부포털기자가 찾은 날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던 '농민장터'의 나루 운영위원장은 향후 '농민장터'의 계획에 대해 "오래 지속해 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앞으로도 자연그대로 농민들이 서로 약속한 원칙들을 지켜가고, 어려운 점들은 대안적 실천으로 극복해 가면서 '모두의 행복을 즐겁게 가꾸는 생태적 삶의 보금자리' 농(農)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기후위기, 생태위기의 시대에 갈라지고 끊어지는 모든 것들을 함께 이어가고 오래 지속하는 '농민장터'가 되겠습니다. 씨앗을 이어가는, 생태농사를 짓는, 지속가능한 삶을 사는,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내가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입니다. 함께 어우러진 우리가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입니다."
'농민장터'는 매년 시농제를 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농제가 열렸던 2019년의 축문에는 '농민장터'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 바람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뿌리내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내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백주할망! 세경할망 님!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무를 생산한 농부가 마음껏 무를 완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농사지을 자기 밭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어설픈 농민이지만,
지구를 지킨다는 자존심 하나만은 올곧은 순이, 마리, 나루 농부가 그 자존심만은 지켜나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자연재배로 제주감귤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민경 농부의 마음을,
한번 하면 제대로 하는 탐모란 농민이 흘린 땀방울을,
그리고 자연생태텃밭 농민의 부지런함을 모두 소중하게 여겨 주십시오.
인생맛귤로 농민장터를 꿋꿋이 지켜온 자연농원 농민의 매대가 풍성한 농작물로 채워지게 해 주십시오.
'검질이 안심하고 자라는 농원, 버렝이가 안심하고 먹는 농작물'을 모토로 내걸었지만,
검질과 버렝이 때문에 남모르게 속 타는, 이 한심한 농부에게도 힘을 주십시오.
농민장터에서 책이 다 팔려, 더 이상 팔 책이 없어 달빛서림이 문을 닫도록 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부추와 달래를 캐고 다듬는 언니네 텃밭 손길이,
토종농자를 보존하고 가꾸는 토종 농부의 손길이
제주 농업과 농민을 살리고, 제주의 흙과 자연을 살리고, 이 사회를 살리는 손길이 되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매주 장바구니를 들고 농민장터로 걸음을 하는 소비자분들이,
비록 농작물 이름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혼내지 마시고,
농민장터를 함께 지켜가는 벗으로 올곧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2019년 시농제 축문> 중
©'자연그대로 농민장터'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