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통섭원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실에서 '잡초 두고보자!'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지난 3월 27일(수) 이화여자대학교 통섭원에서 잡초를 보러 가는 모임이 열렸습니다. 생명다양성재단에서 마련한 '잡초 두고보자!'는 도시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감수성을 키우자는 의미의 프로그램입니다. 친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높아지고 있는 도시농업의 텃밭에서도 최근 잡초를 새롭게 바라보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잡초 탐험대의 활동에 뛰어들어 보았습니다.
안선영 생명다양성재단 책임연구원이 잡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탐험에 앞서 '잡초'라고 불리는 존재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안선영 생명다양성재단 책임연구원은 '잡초 두고보자!'에 대해 "잡초를 자기 자리에 그냥 '두고', 있는 그대로 잘 들여다 '보자'"라는 의미로 설명했습니다. 안선영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잡초는 인간이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인간에 의해 재배되지 않고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여러 가지 풀들을 싸잡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인간의 쓸모'라는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엄연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생명이고, 어찌 보면 초록이 형편없이 적은 도시 속에서 가장 가깝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생물입니다. 그나마 뿌리내릴 곳이 없는 상황에 인간이 보기에 좋다는 이유로 화단 안, 가로수 밑, 보도블록 사이에서 어렵게 자리 잡고 있는 풀들마저 뽑고 자르고 없애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안선영 책임연구원은 "잡초를 포착하고 알고 즐기는 재발견을 통해 우리 자연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며 "모든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구획되고 재단되어 스러지는 세상에서 이런 발견들을 하나씩 쌓아가며 야생성(野生性)을 회복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안선영 책임연구원이 "식물 분류의 기본은 만지기"라고 소개하며 참가자들에게 쑥을 만져보도록 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재야생화(rewilding)로 이어졌습니다. 재야생화는 인간 활동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자연 생태계의 흐름을 복원하여 생물 다양성을 증가시키고 생태계를 개선하는 활동으로, 다양한 갈래가 있지만 주로 인간의 개입이 없는 자연 스스로의 복원을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안선영 책임연구원은 "도시의 재야생화를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나고 자라고 우리 동물들의 먹이가 되고 서식지가 되는 잡초가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와 가장 가깝고 친숙한 식물인 잡초에서부터 야생의 재시작을 그려 보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안선영 책임연구원이 우리가 길 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들을 소개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개망초, 꽃다지, 꽃마리, 돌나물, 바랭이, 질경이, 괭이밥 등 우리가 오며 가며 그저 풀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던 식물들의 이름을 알려준 안선영 책임연구원은 "잡초라 불리는 풀들도 시간이 지나 꽃을 피우면 그나마 이름을 가지게 된다"며 "그냥 잡초로 보고 방치할지 꽃으로 보고 보듬을 것인지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전했습니다.
참가자들이 탐험에 앞서 다과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참가자들은 준비된 다과와 함께 간단한 담소를 나눈 후 본격적인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안선영 책임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이화여자대학교의 곳곳을 둘러보며, 참가자들은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풀들의 이름을 배우고 감촉을 느끼고 모양을 눈에 담았습니다. 안선영 책임연구원은 "식물의 이름에 대해 너무 부담을 갖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이름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오히려 식물과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식물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둘러보는 동안 안선영 책임연구원은 "학교의 조경팀이 너무 일을 열심히 하셔서 해가 갈수록 길가에 풀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경관과 안전을 위한 것이겠지만, 자연에게 과한 것은 인간에게도 과한 일이 될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안선영 책임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이화여자대학교 내에서 잡초 탐험을 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잡초 두고보자!'는 3월의 '길에서 보자'에 이어 4월 '밥상에서 보자', 5월 '꽃으로 보자', 6월 '불러보자', 7월 '다시 보자' 등으로 여름이 오기 전까지 한 달에 한 번 잡초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잡초 두고보자!' 프로그램은 생명다양성재단이 올해 진행하고 있는 '야생의 재시작 - 리와일딩으로 되찾는 생태적 미래'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야생화에 대한 개념을 알리고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야생의 재시작' 사업은, '잡초 두고보자!' 이외에도 고라니를 통해 도시 야생의 귀환을 꿈꾸는 '한강 고라니 클럽', 재야생화에 대한 이론과 사례를 소개하는 '야생학교', 재산인 부동산을 생명공동체인 땅으로 되돌리는 '야생신탁'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5월의 생명다양성재단 10주년 행사, 9월의 재야생화 심포지엄 등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야생의 재시작' 사업에 대해 안선영 책임연구원은 "자연 복원은 꽤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는데 그 방향이 너무 인간의 관점으로 자연에 개입하는 방식이라는 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자연 스스로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겠다는 것이 사업의 목적"이라며 "재야생화의 방향을 놓고 아직 논란이 많기도 하고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올 한 해 최소한 자연이 생태적인 리듬을 찾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게 우리의 바람"이라고 밝혔습니다.
'야생의 재시작 - 리와일딩으로 되찾는 생태적 미래' ©생물다양성재단 인스타그램생명다양성재단은 올해 내내 재야생화의 화두를 가져갈 예정입니다. '잡초 두고보자!'와 함께 '야생의 재시작' 사업의 프로그램들에 관심이 있으시거나, 꼭 자연이나 재야생화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에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라면 생물다양성재단의 SNS(
[생명다양성재단 인스타그램])을 방문해서 관련 소식을 받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