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교육실에서 '퀘벡의 도시농업활동가에게 듣는 캐나다 도시농업 이야기' 특강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지난 3월 20일(수)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교육실에서 흥미로운 특강이 열렸습니다. '퀘벡의 도시농업활동가에게 듣는 캐나다 도시농업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열린 특강에서, 한국에서 농사를 배워 캐나다에서 도시농업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발표자가 퀘벡 공동체 텃밭의 세세한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특히 발표자의 유창한 한국어 강연으로 이전의 해외 사례 발표에서 갖기 어려웠던 충실한 의미 전달이 이루어진 특강이었습니다.
톰 아토 활동가가 퀘벡의 '흙 체험장'을 소개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톰 아토(Tom Ato)는 캐나다인으로 2001년 대학생들과 교류하기 위해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가 2006년부터는 아예 전북 무주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인과 결혼하고 생태적인 삶에 대한 관심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던 톰은 2018년 고향 퀘벡으로 돌아가 현재는 도시텃밭의 직원이자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지배 권력에 맞서 사람들의 힘을 모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아나키스트(Anarchist)'로 소개한 톰은, "다만 오늘은 큰 이야기보다 좀 더 구체적인 퀘벡의 텃밭을 전달하고 싶다"며 "오늘 이야기는 캐나다 도시농업 전반에 대한 것은 아니고 내가 일하고 있는 공동체 텃밭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텃밭 활동 내용을 전달하기에 앞서 톰은 한국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톰은 "한국에는 자본주의에 포섭되기 이전 시대의 농사 경험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느낀다"며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민들에게도,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자연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 농부들도 지금의 농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톰은 "토종과의 관계를 놓지 않으면서 생태 가치를 자연스럽게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도시에 살더라도 자연과 관계 맺고 싶어 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이 도시농업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흙 체험장' 전경 ©톰 아토톰은 먼저 퀘벡의 기후와 환경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톰에 따르면, 퀘벡은 기본적으로 춥고 습하며 불규칙한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4월까지 눈이 내려 땅이 젖어 있고, 5월 말까지 서리가 내리는 기후로 노지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간은 6월에서 10월까지 5개월 정도입니다. 인구 50만 명의 퀘벡시는 퀘벡주에서 몬트리올 다음으로 큰 도시로, 1960년대 자가용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 계획 때문에 밀집도가 낮고 고속도로가 많은 도시입니다. 따라서 고속도로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으며 톰이 일하고 있는 공동체 텃밭도 고속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톰이 일하고 있는 공동체 텃밭의 이름은 '흙 체험장(Les Ateliers à la Terre)'입니다. 원래 근처 수녀원이 자급을 위해 농사짓던 커다란 농지가 국유화되면서 고속도로가 생겼습니다. '흙 체험장'은 정부로부터 빌린 땅으로 고속도로 옆에 있어 소음이 심합니다. "위치가 좀 이상하긴 하다"고 말한 톰은 "하지만 도시 안에서 농사를 배우기에는 아주 좋은 땅"이라고 전했습니다. 텃밭의 바로 뒤로는 도시 속의 작은 섬 같은 숲이 있습니다. 숲 덕분에 경사가 있고 토질도 복합적이어서 다양한 작물 재배와 실험이 가능합니다. "역시 독특한 구조이긴 하다"고 말한 톰은 "하지만 숲이 농사를 짓다가 쉬는 쉼터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작물의 저장고가 되기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흙 체험장' 참가자들의 활동 모습 ©톰 아토톰은 캐나다의 도시텃밭을 공동 농장(collective garden)과 분양식 농장(community garden)으로 구분했습니다. "캐나다에서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시텃밭은 분양을 통해 개인적으로 짓는 분양식 농장이지만, 우리는 통일된 계획에 따라 보다 큰 농사를 '함께' 짓는 공동 농장을 추구한다"고 말한 톰은 "모든 것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일하기 때문에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고, 실력과도 상관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퀘벡의 도시농업도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대부분 분양식 농장으로 운영되고 있고, 공동 농장은 5개 정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동 농장은 개인의 농업적 생산성보다 노력과 사람 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개인화되는 사회 흐름과는 좀 떨어져 있는 방식"이라고 말한 톰은 "그러다 보니 분양식 농장은 사람들이 자리를 얻기가 어려울 정도이지만, 공동 농장은 점차 참가자 수가 줄고 있고 자리가 남아 있다"고 전했습니다.
'흙 체험장'의 운영은 직원과 참가자가 구성한 위원회를 통해 일 년 계획과 매달 계획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텃밭이 운영되는 시기 일주일에 5일, 하루 8시간 직원이 밭에 상주하며 일반 참가자들은 그 안에 언제든지 와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직원의 설명과 텃밭의 상황에 따른 작업 목록을 참고해 할 일을 결정합니다. 톰은 "이 모든 것이 공동체가 필요한 것과 개인이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균형을 찾는 협상"이라고 표현하며 "공동 농장의 가장 큰 어려움은 소통해서 서로의 이익에 균형을 찾는 것이고, 이에 담당 활동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흙 체험장'의 작물 꾸러미 ©톰 아토참가자들은 각자 일하는 시간에 따라 작물 꾸러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보통은 6시간을 일하면 꾸러미 한 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단, 봄에는 일이 많고 수확할 것이 적어서 좀 더 많은 시간을 적립해야 합니다. 참가자들이 적립하는 시간에 비해 일의 양이 많기 때문에 사실상 몇몇이 더 많은 일들을 처리하지만 그렇다고 더 많은 작물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톰은 "꾸러미는 일하는 만큼 주고, 필요한 만큼 준다는 원칙으로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누군가는 일을 더 하게 되는 구조이지만, 소통을 통해 불만이 없는 선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흙 체험장' 참가자들의 활동 모습 ©톰 아토'흙 체험장'에서는 수확량이 많아지는 시기가 되면 일주일에 두 번 꾸러미가 준비되고 나눠집니다. 넓은 텃밭은 아니지만 보다 다양한 작물을 가져갈 수 있도록 혼작과 함께 밀집도가 높은 농사를 짓고, 총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솎아내면서 작은 야채들을 여러 차례 수확합니다. 음지와 양지가 반반의 텃밭의 특성상 밭을 두 구역으로 나눠 윤작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땅을 갈아엎지 않고 쇠스랑으로 풀어주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호미나 괭이 등의 손도구를 이용해 농사를 짓습니다. 녹비작물과 멀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퇴비를 직접 만들어 사용합니다. 텃밭의 부산물과 주민들이 가져온 음식물로 퇴비를 만들고, 만들어진 퇴비는 주민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퀘벡에는 쓰레기 분리수거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퇴비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게 되었고, 현재는 동네 퇴비장이 '흙 체험장'의 가장 크고 정규적인 사업이 되었습니다.
'흙 체험장'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작물들 ©톰 아토'흙 체험장'에서 운영하고 있는 동네 퇴비장 ©톰 아토'흙 체험장'에서는 텃밭에서의 농사 이외에도 플라스틱 통을 재활용한 상자텃밭을 만들어 지역에 보급하고, 단풍나무 수액으로 메이플 시럽을 만들며, 약초를 활용해 연고 등의 약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양봉을 통해 만들어진 꿀은 지역 주민들에게 판매하는 '흙 체험장'의 유일한 상품입니다. 최근에는 숲 속에서 버섯과 토마토를 함께 키우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흙 체험장' 참가자들이 메이플 시럽을 만들고 있다. ©톰 아토'흙 체험장' 참가자들이 양봉을 하고 있다. ©톰 아토'흙 체험장'의 목적에 대해 "신선한 채소를 재배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고, 농사 실력을 기르고, 사교적 경험을 가지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전한 톰은 "'흙 체험장'에서는 늘 어린이랑 놀고, 자연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고, 같이 요리하고, 맥주를 만들고 잔치를 연다"며 "비가 오면 천막 아래, 해가 맑으면 숲에서 모이는 즐거운 공동체"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흙 체험장' 참가자들이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톰 아토강연이 끝난 후에는 참가자들이 질문과 답변을 나누며 서로의 소감과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특강을 마련한 김충기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는 "대개 이런 해외 도시농업 사례 특강을 마련하면 도시농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나 의미를 설명하느라 실제 농장이나 텃밭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듣기 어려운데, 특정한 농장의 운영방식과 고민들에 대해 들을 수 있어 좋은 사례 연구가 된 것 같다"며 "기회가 되면 오늘 톰과의 인연을 계기로 캐나다 현장에 방문해서 '흙 체험장' 참가자들의 인터뷰도 하고 퀘벡 도시텃밭연합 같은 단체들과 전반적인 도시농업운동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운영 방식을 어떻게 하느냐는 모든 텃밭마다 각양각색으로 다르지만, 공동체를 지향하는 도시텃밭이 하고자 하는 생태적인 농사법과 자급의 생각, 함께 힘을 모으자는 마음은 세계 공통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교류가 더 많아져서 모두가 풍요롭게 나누는 마음이 공간을 넘어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