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퍼머컬처네트워크가 주최한 '탄소가 지구를 구한다고?' 토론회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지난 3월 15일(금) 정동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토양탄소와 기후농업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퍼머컬처네트워크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탄소가 지구를 구한다고?'라는 제목으로 기후위기 시대의 대응 방안으로 탄소를 토양에 고정시키는 방법과 의미, 이를 위한 정책 수립의 방향 등을 이야기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토론회의 전후로 퍼머컬처네트워크 회원들의 씨앗 나눔이 진행되었다. ©서울농부포털유가영 경희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토론회는 토양생태학자인 유가영 경희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의 발표로 시작되었습니다. 유가영 교수는 "탄소중립과 토양의 탄소 흡수"라는 제목으로 토양이 탄소를 흡수하는 원리와 고정 방법을 설명하고, 이를 통한 탄소중립의 가능성을 소개했습니다. 유가영 교수는 "토양을 지금까지 식물에게 양분을 공급하는 역할로 인식하는 데에 그쳤지만, 이제는 모든 생명의 기반이자 기후변화 해결의 열쇠라고 인식해야 한다"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유가영 교수는 먼저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언급하고 "이 당시 토양학자로서 고무적인 발표가 나왔다"며 '4 per 1000 계획(4 per 1000 Initiative)'을 소개했습니다. '4 per 1000 계획'은 토양에 저장된 탄소가 연간 0.4%(4 per 1000) 증가한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CO2)의 증가량이 크게 감소한다는 것으로, 농업, 특히 농업 토양이 식량 안보와 기후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국제적인 행동 계획입니다. 유가영 교수는 이에 대해 "원래 대기와 식생을 합한 것의 2배 이상의 탄소가 표토에 저장되어 있었지만, 인간의 활동으로 탄소가 대기 중으로 다시 배출되어 기후 변화가 오게 된 것"이라며 "연간 0.4%만 되돌려도 현재 인간이 배출하고 있는 탄소를 다시 토양에 저장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고, 그 식물의 낙엽이나 잔사가 토양으로 유입되어 탄소가 저장된다고 설명한 유가영 교수는 "식물이 단순히 탄소를 흡수해 머금는 것만으로는 탄소 저장의 효과가 없고, 반드시 그 산물이 토양 속으로 들어와야 탄소가 저장되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를 위해 농사에 있어 녹비작물을 재배하고, 퇴비를 사용하며, 초지 및 습지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유가영 교수는 "특히 무경운이 중요하다"며 "지난 100여 년 동안 땅을 갈아내며 발생한 탄소 배출이 기후 변화의 큰 원인 중 하나이고, 경운으로 인해 토양의 유기물도 절반 이하로 떨어져 생산력도 크게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유가영 교수는 탄소를 토양에 저장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바이오차(Biochar)'를 소개했습니다. 바이오차는 유기물을 고온으로 열분해해 만든 숯으로, 이 방법을 사용하면 유기물 속의 탄소가 공기 중으로 배출되지 않고 결정화됩니다. "바이오차는 탄소를 포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흡수된 탄소를 결정 속에 고정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유가영 교수는 "바이오차는 타공성과 넓은 표면적을 가지고 있어 더 많은 탄소를 고정시킬 수 있고, 구조가 단단해 미생물이 쉽게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오래 탄소를 저장할 수 있게 된다"며 "아직 질적인 보장이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탄소 저장 이외에도 다양한 효과와 장점이 밝혀지고 있어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다음으로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이 "탄소농업의 의미와 잠재력"이라는 제목으로 탄소농업의 개념부터 회의론과 비판까지 소개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내용 발표에 앞서 2021년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발표한 국가식량계획을 언급한 김현우 소장은 "온실가스 배출 관리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기후변화, 탄소흡수,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결국은 스마트팜으로 정부 정책이 모아지고 있다"고 밝히고 "더 나아가 현재까지 농림부는 온실가스 감소에 사실상 대책이 없이 여전히 연구해 보겠다는 수준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전했습니다.
EU 집행위원회가 정의한 탄소농업(carbon farming)은 "생물다양성과 자연 자본 전반에 이로운 생태적 원리를 고려하여, 살아있는 바이오매스, 고사 유기물 및 토양에 탄소 격리를 증가시켜서 탄소 포집을 강화하거나 대기로의 방출을 줄이는, 개선된 토지 관리 관행을 채택한 토지 관리자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녹색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전한 김현우 소장은 "쉽게 말해, 토양에서 이산화탄소 흡수하거나 저장을 향상하는 농업"이라고 설명하고, 바이오차 활용, 경운의 최소화, 유기농 뿌리 덮개, 피복 작물, 가축 분뇨 관리와 퇴비화, 재삼림화, 혼농임업 등을 그 방법으로 소개했습니다.
탄소농업이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회의론과 비판도 만만치 않다고 전한 김현우 소장은 "특히 학자들 사이에서 탄소의 저장 기간이나 저장 용량, 효과와 지속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그 측정 방법에 대한 신뢰성 논란이 진행 중이고, 흡수량 인정을 둘러싸고 권력과 자본력이 개입되면서 불평등과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농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전한 김현우 소장은 "저탄소 농업에 대한 부담감이 올해 초 프랑스에서 전국적으로 일어난 농민 시위의 원인 중 하나가 될 정도이고, 이로 인해 EU까지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탄소농업의 방향에 대해 김현우 소장은 "탄소 농업은 많은 이점과 필요성이 분명하지만, 협의의 탄소농업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가장 시급하거나 효과적인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당장 화학비료 투입을 중단하고, 푸드 마일리지 감소와 채식 전환 촉진 같은 보다 광범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에는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해외 사례에서 볼 수 있는 탄소배출권과 연계하는 등의 협의의 탄소농업 지원 제도 논의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김현우 소장은 "그린워싱이나 제도 구멍의 우려가 있고, 적용과 실행에서 농민들의 이해와 동기를 고려해야 하며, 기술과 제도가 논의되고 실현되는 시간과 과정도 충분히 거쳐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탄소농업 운동의 전략의 틀을 '농업, 농지 보전, 국토 가꾸기 자체에 대한 가치 인정과 지원 요구'로 짜야한다고 밝힌 김현우 소장은 "농촌 기본소득의 단계적 확대와 친환경 직불제에 대한 적극적인 설계로 농민운동 내에서 정리된 목소리와 전략을 만들어야 하며, 도시민이 공감하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소란 퍼머컬처네트워크 대표활동가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끝으로 소란 퍼머컬처네트워크 대표활동가가 "탄소농업과 기후농업정책"이라는 제목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탄소농업의 방법들을 소개하고, 퍼머컬처네트워크의 기후농민육성 시나리오를 공개했습니다. "오늘 발표는 퍼머컬처 농부로서의 하소연이자 선언"이라고 운을 띄운 소란 대표활동가는 "기후위기 활동가들은 우울할 수밖에 없는 요즈음이지만, 퍼머컬처네트워크는 할 수 있는 확실한 일이 있기 때문에 즐겁다"고 전하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대기 중의 탄소를 현재 400ppm에서 350ppm까지 줄이려는 'Drowdown' 프로젝트와 '4 per 1000 계획'을 소개한 소란 대표활동가는 그 방안으로 탄소농법을 제시했습니다. 탄소농법의 갈래로 무경운, 다년생 재배, 토양 멀칭, 미생물농업, 재생농업, 다층 혼농임업, 재야생화, 숲밭, 재생유기농 등을 소개하고 다양한 농업 방식의 개념과 방법을 설명한 소란 대표활동가는 "탄소농법의 하나 혹은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퍼머컬처농법"이라고 전했습니다. "현재 노령의 농부들이 은퇴하는 향후 10년 내외로 새로운 농업의 세대를 맞는 대전환기가 올 것"이라고 말한 소란 대표활동가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는 벼농사를 줄여야 하고, 다양한 종자와 작물로 이루어진 숲을 지향하는 농사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 농업에 새로운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힌 소란 대표활동가는 '탄소기본소득'을 통한 기후농민 육성을 제안했습니다. 현재 농업 활동을 통해 환경보전, 농촌공동체 유지, 식품안전 등의 공익기능을 증진하도록 농업인을 지원하는 '공익직불제'가 있지만, '1년 중 반드시 1회 이상 경운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무경운을 기본으로 하는 기후농부들은 직불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농작물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탄소도 저장하는 탄소농업에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의거해 발급되는 탄소배출권 크레딧을 허용해 지원과 함께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소란 대표활동가는 "이를 통해 탄소를 저감하면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고, 농민을 직접 지원할 수 있으며, 청년농부들을 유입시킬 수 있고,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며 "특히 기업이 농업과 연계해 탄소배출권의 크레딧으로 직접 탄소를 구입하는 사례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소란 대표활동가는 "누군가가 해주길 바랄 것도 없이 퍼머컬처네트워크가 자체적으로 생태거점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탄소기본소득을 실시할 계획"이라며 "총회를 거쳐 연내에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현우 소장과 소란 대표활동가가 청중들과 함께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모든 발표가 끝난 후에는 김현우 소장과 소란 대표활동가가 청중들과 함께 토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중들은 발표 중에 나왔던 내용들과 함께 퍼머컬처에 대한 질문부터 탄소기본소득의 세부 사항, 탄소배출권 크레딧의 해외 사례, 농민기본소득의 현황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며 열띤 이야기로 토론회를 마무리했습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