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4일(화) 금천구청 앞 광장에 장터가 열렸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왁자한 웃음과 활기를 자아내는 여느 마을 장터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이날 장터에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얹혀 있었습니다. 바로 판매자 농부들과 소비자 주민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반가운 마음과 묵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4년 만에 돌아온 '화들장'이었습니다.
금천구청 앞 광장에서 '화들장&같이살장'이 열렸다. ©서울농부포털이날 장터에는 '언니네텃밭'과 연계된 횡성∙장성∙거금도∙가평∙영광∙음성∙창녕 등의 지역특산품과 제철 맞은 과일, 직접 만든 반찬까지 풍성한 농산물과 먹거리가 나와 도농직거래 장터의 전형을 보여줬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역의 도시농업 단체, 먹거리 관련 단체들과 여러 사회단체들까지 함께 해 마을과 함께 하는 장터의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화들장'이 추구했던 모습 그대로의 '화들장'.
'화들장&같이살장'에서 '언니네텃밭'의 농부들이 지역특산품과 각종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금천구의 대표적 도농직거래 마을 장터였던 '화들장'은 지난 2017년 시작해 매주 화요일 농부들과 지역 주민들을 이으며 200회가 넘도록 진행됐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전후해 들이닥친 여러 이유들로 인해 4년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터 공간을 확보하는 문제가 있던 와중에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화들장'을 쉬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금세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틈에 4년이 흘러버렸네요. 올해는 꼭 장터 농부님들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화들장&같이살장'에서 금천 지역의 도시농업 단체, 먹거리 관련 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이 나와 홍보와 판매를 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화들장'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김선정 건강한농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오랜만의 만남에 복잡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판매자 농부님들과 매주 한 번씩 3년 동안 만났었기 때문에 가족보다 더 끈끈한 사이였어요. 멈추고 4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농부님들 단톡방이 남아있기도 하고요. ''화들장' 열립니다' 하니까 다들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참여하겠다고 말씀 주셔서 바로 어제까지도 함께 했던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분들 모두 다 건강하게 계셨다가 다시 뵐 수 있다는 게 너무 마음이 좋기도 하고, 또 그 사이 세월이 흘렀으니 많이 늙으신 분들도 계셔서 좀 짠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드네요. 어찌 됐든 오늘이 계기가 되어서 다시 한번 직거래 장터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원래 '화들장'은 소소하게 운영되어 왔었고 이번 장터도 그렇게 마련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화들장'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단체들이 합류하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텃밭보급소의 '같이살장'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그동안 금천 지역에서 먹거리를 고민해 오던 사람들과 단체들이 모여 '금천먹거리돌봄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함께 하고 있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회복지기관, 먹거리 관련 단체들과 지역의 여러 단체들이 장터에 함께 하겠다고 나서 주셨어요. 거기다가 소식을 들은 텃밭보급소에서 '기왕 여는 거 크게 하자'며 '같이살장'도 합쳐서 열자고 해 주셔서 오랜만의 '화들장'이 더 커진 '화들장&같이살장'으로 돌아오게 되었네요."
'화들장&같이살장' 한 편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담근 김장김치 판매도 이루어졌다. ©서울농부포털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였음에도 장터는 사람들로 활기를 띄었습니다. 4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많은 주민들이 '화들장'의 이름을 듣고 찾아와 주었습니다.
"장터가 커진 만큼 현수막도 많이 걸고 홍보를 좀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3년간 꾸준히 진행했었던 나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화들장'은 잘 알려진 장터였어요. 그때 만났던 인연들이 아직 남아서 '화들장' 소식에 달려와 주신 분들이 많이 계시네요. 몇 년 만에 얼굴을 뵌 소비자분들이 많아요. 고마울 따름입니다."
장터를 함께 연 '같이살장'의 곽선미 텃밭보급소 이사장은 '화들장'이 돌아온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화들장'은 지역과 끈끈한 연결을 가졌던 대표적인 장터로 워낙 잘 운영되었었는데, 4년 전에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속상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함께 해서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현장에 나와 있으니 정말 많은 주민들이 '화들장'을 기다려왔다는 게 느껴져서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예요. 앞으로도 이 마음을 이어서 다시 매주 '화들장'이 열리게 될 그날을 응원하고 늘 함께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동네부엌 활짝에서 칼갈이 봉사를 하고 있는 김은태 어르신이 '화들장&같이살장'에 나와 무료로 주민들의 칼을 갈아주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아직 '화들장'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예전처럼 일상적인 장터가 운영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김선정 이사장은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일단 오늘은 오랜만에 얼굴 보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자리로 마련된 거고, 앞으로의 지속 여부는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서울시나 지자체의 지원이 있어도 지속적으로 장터가 운영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지금은 그나마의 지원도 끊겨있는 상황이어서요. 판매자 농부님들과 연계되어 있는 '언니네텃밭'과는 매주 지속적으로 교류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 방법을 고민해서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해 봐야죠."
마을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만은 아닙니다. 지역과 지역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삶이 있는 공간입니다. '화들장'은 그런 마을장터의 마음을 가장 잘 간직했던 장터였습니다. 부디 이 마음이 고이 간직되고 알려져서 다시 한번 일상적으로 나눠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김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