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도시농업은 민간의 노력과 함께 정부와 지자체의 제도적 정비와 지원으로 10여 년 간 훌쩍 성장했습니다. 그에 따라 해외에서도 그 성장세와 방향에 관심을 두고 교류를 가지며 시스템을 배워가려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24일(화)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교육장에도 한국의 민간 도시농업 단체의 활동 상황을 살펴보고 그 시스템을 자신의 나라에 접목시켜 보려는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으로 잘 알려진 작가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교육장에서 요시다 타로 작가와의 간담회가 열렸다. ©서울농부포털요시다 작가는 우리나라에 2004년 번역∙출간된 저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을 통해,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 봉쇄로 90년대 위기 상황에 직면했던 쿠바가 도시농업을 통해 자급을 이루어내고, 탈석유 문명을 꿈꾸는 생태주의 국가로 나아간 모습을 전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초창기 우리나라의 도시농업 활동가들은 이 책을 통해 도시농업과 생태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습니다. 생태주의와 쿠바의 전문 저술가로 활동한 요시다 작가는 도쿄 산업노동국 농림수산부 공무원을 거쳐 나가노현 농업대학교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며 생태주의와 유기농, 도시농업에 대한 연구와 집필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날 간담회는 요시다 작가의 요청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의 번역자이기도 한 안철환 전통농업연구소 대표가 주선해 김진덕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대표, 김충기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 이창우 한국도시농업연구소 소장과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요시다 작가와 함께 내한한 일본 최초의 도농공동체 창시자이자 일본 유기농업의 대모로 알려진 카네코 토모코 농부도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김충기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가 활동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먼저 김충기 대표가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활동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김충기 대표는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연혁, 구성, 지향점 등을 소개하고, 인천시의 도시농업 조례, 민관 협력 상황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요시다 작가는 특히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가 남촌농산물도매시장 옥상에 조성한 '해바람텃밭'과 송도 간척지의 유휴지에 조성한 '생태순환 이음텃밭'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민관 관계, 설치 방법과 규모, 텃밭 교육이나 시민 참여 활동 등에 대해 세세히 묻기도 했습니다. 특히 요시다 작가와 카네코 농부는 도시농업 단체의 활동가들에 대해 물으며 "도시농업을 포함해 일본에서의 농사라는 것은 전업농인 농가 중심의 활동이기 때문에 도시농업 단체가 주도하고 관이 협력해 텃밭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활동가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라고 전하고 "한국과 일본의 도시농업 발전의 중요한 차이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요시다 타로 작가가 일본 도시농업의 현황과 한국 방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이어 요시다 작가가 일본 도시농업의 현황과 한국 방문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요시다 작가는 먼저 "현재 일본보다 한국의 도시농업이 한 발 더 앞서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최근 도쿄에서도 한국과 같은 도시농업 활동이 일어나려고 하는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요시다 작가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최근 유기농업의 규모를 키우고 있고, 각 자치구들도 유휴지에 텃밭을 조성하기 위한 사례 조사와 연구에 나서는 등 각종 도시농업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기후위기에 따른 먹거리 안전의 문제를 유기농 급식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시다 작가는 "일본의 유기농업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유기농 급식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며 "한국에서는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이런 사례들을 모아 일본에 알리고 싶어 방문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기후위기가 부각될수록 일본 정부에서도 생물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고 전한 요시다 작가는 "도시에서 생물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도시농업이기 때문에 한국이 도시 안에서 텃밭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배워 알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카네코 토모코 농부가 일본 유기농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간담회에서는 카네코 토모코 농부를 통해 자신의 역사이자 일본 유기농업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카네코 농부는 1972년, 일본에 유기농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부터 남편과 함께 유기농업을 시작해 일본 유기농의 대모로 불리고 있습니다. 개인 유기농장을 시작으로 마을 전체를 유기농으로 전환시켰고, 이후 400여 명의 후계를 길러낸 공로로 2016년에는 IFOAM ASIA(Inernational Federation of Organic Agriculture Movements ASIA,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 아시아 지부)가 제정한 '유기농 지도자 상'의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일본 최초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동체를 형성해 직거래하는 방식의 유통 구조를 만들어, 이후 이를 보고 영감을 얻은 미국 농부들에 의해 공동체 지원농업(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카네코 농부는 "현재 일본에서 유기농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이미 초기의 유기농 정신을 가지고 있는 생산자들이 노령화되어 공급이 수요를 충족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수요가 늘어나면서 유기농에 대한 제한이 점차 낮아져 본질의 의미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날 소개받은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활동에 관해서는 "오늘 들은 이야기는 참 좋은 활동이고 좋은 문화인 것 같다"고 말한 카네코 농부는 "일본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도시농업 프로그램을 볼 수 없다"며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 일본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간담회 참석자들이 '생태순환 이음텃밭'을 견학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참석자들은 간담회 후에 '생태순환 이음텃밭'의 견학에 나섰습니다. 이음텃밭은 2021년 송도 간척지의 유휴지에 인천시의 지원을 받아 조성된 텃밭으로, 개인형 주말농장이 아닌 공공형 공동체텃밭입니다. 단순히 텃밭 농사를 짓는 것을 넘어 교육과 위기 대응, 나눔과 돌봄 등의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지향하는 텃밭입니다. 요시다 작가는 이음텃밭을 둘러본 후에 "일본에서는 도시농업이라고 해도 농가가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시민과 관이 협력한다거나 사회적 역할을 담당한다거나 하는 사례는 없다"면서 "농사 체험 프로그램 같은 것도 아주 조금씩은 나오고 있지만 찾아보기 힘든데, 한국 도시농업의 이런 부분을 일본에 이식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요시다 타로 작가와 카네코 토모코 농부가 '생태순환 이음텃밭'을 견학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요시다 타로 작가는 때마침 진행된 텃밭 교육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서울농부포털이창우 한국도시농업연구소 소장은 한국과 일본의 도시농업에 대해 "우리는 시민 차원의 활동이 활발하고 일본은 근본적으로 농민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형태"라면서 "발전 속도나 참여의 폭은 우리에게 장점이 있지만, 제도적 밑바탕이나 근본 이념은 일본에게 장점이 있어 서로를 배우면서 보완해 나갈 수 있다면 최상"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창우 박사는 일본의 도시농업이 농민들과 더 가깝게 붙어있어 기반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다는 점을 들며 우리의 도시농업이 좀 더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깊이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날 간담회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의 도시농업에 대한 많은 이해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문화와 생각을 가진 세계의 도시농부들이 좀 더 자주 만나 서로에 대해 알아 갈 수 있는 자리들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봅니다.
©서울농부포털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