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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없어도 열정이 있다! 청년 도시농부의 노빈손 프로젝트!

관리자 2020.09.21 13:41 조회 423

[청년 도시농부 이야기 ②청년창업은 들깨발랄 로맨스?!



초딩(?)을 벗어나면 동네짱이 될 줄 알았고, 군대를 다녀오면 남자가 되는 줄 알았고, 사회에 나가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것은 모두 꿈같은 일장춘몽이며 밭을 훨훨 자유롭게 나는 나비가 나인지 모르는 호접몽 같은 이야기였다.


보통 대학을 선택할 때 꿈꾸는 직업이나 전공 때문에 왔다기보다 성적에 맞추어 선택하거나 이런 직업이 좋지 않을까라는 추측으로 학교와 전공을 선택한다. 우리 텃밭동아리에도 대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동아리는 내가 직접 하고 싶어서 선택한 곳이기에 더 즐겁게 하고 집중했다. 대학을 선택할 때보다 경험을 통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면 또 다른 꿈을 꾼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사는 일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도 지금 하는 이 활동이 재미있으니 함께하던 친구들에게 농사를 하며 먹고 살아보자고 제안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었지만 그래도 믿고 제안을 받아드린 총 6명의 친구가 뭉쳤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단체로 만들 것인지,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어떤 규칙을 정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 경험은커녕 물건하나 제대로 팔아보지 않았지만 우리의 목적 한 가지는 확실했다. 농사를 업으로 삼고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누기로, 우리만의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준비과정을 위해 학습모임도 갖고 강의도 듣고 컨설팅도 받으며 우리들은 상큼하고 고소하고 발랄한 상상(?)을 하며 법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옥수수 털리듯 액션스릴러


우리는 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모두가 주인이 되어 책임을 갖고 역할을 나누어 같이 일하고 같이 벌이를 나누기에는 법인이 적합했다. 법인을 만들려면 각자 돈도 출자해야했지만 그 전에 인감이라는 것이 있어야했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인감도장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개인 도장과 사인이 전부였던 우리는 인감도장부터 만드는 일을 했다. 이것은 시작일뿐이었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어른들은 인감도장이라고 하면 보증서는 일만큼 중요하고 위험한 일이라 생각하셨다. 일부 학생의 부모는 직접 전화와 큰 소리를 치시기도 하셨다. 아직 우린 부모 울타리에 있는 어린 새싹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준비하면서 하나하나 문제가 생기고 대부분 떠나버렸다. 결국 새로 인원까지 충원하며 남은 인원은 나를 포함한 총 3명이었다. 그렇게 남은 친구들과 법인 설립을 진행하고 창업 준비를 이어갔다.


2014년 겨울부터 창업 준비를 했지만 하나하나 해결하다보니 사업자등록은 2015년 9월에 했다. 설립과정이 복잡했다기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들이 생각없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하나하나 직접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 만든 사업자등록증은 설렜고 세무서에서 나오자마자 우리는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자랑했다.


하지만 그것도 몇 시간 가지 않았다.


사업자등록증이 나오면 첫 번째 하는 일은 법인 통장을 만드는 일인데 청년들이 자본금을 적은 비용으로 설립하다보니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어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사업체 설명뿐만 아니라 개인 신상까지 여러 조사와 전에 거래했던 직원분에게 그 동안의 준비과정을 설명하고 나서야 통장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통장에, 입출금 내역도 많지 않았던 11월에 우리는 법인 이름이 또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동아리부터 써온 이름을 사용했지만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상표등록을 신청했고 우리가 사용하려면 1200만원을 주고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상표등록이라는 단어만 들어봤지 사업자등록만 하면 일단 사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등록된 상표는 아니었지만 그 사람이 먼저 신청했기에 우리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우리에게 돈이 어딨겠는가. 그냥 이름을 포기하고 다시 만드는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12월 새로운 이름으로 ‘손수레’라는 이름으로 법인명을 바꾸는 총회와 절차를 걸쳤고 그만큼 추가 비용도 들었다.


사업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아 제대로 된 매출을 올리지 못했고 2015년을 마무리하는 듯 했다. 법인은 연 4회의 부가세 신고와 연 1회의 법인세 신고가 있었다. 우리도 할 줄 몰라 어깨너머로 다른 창업팀들을 보고 배우며 신고했다.


9월 창업해 12월까지 매출은 69만원 정도였다. 신고 후 법인세를 보니 63만원 정도 나왔다.


순이익도 아니고 매출이 69만원인데 세금이 63만원이라니! 지원금이 이월되면서 여러 이유가 있긴 했지만 세무회계업무가 처음인 우리에게는 황당하지만 지불해야하는 내용이었다.


함께 벌어 함께 나누자고 했던 첫 해 사업은 처음 경작하는 땅처럼 거칠고 막막했다.


 


상추를 치료해 줄 사람 어디 없나(feat. 아웃사이더에게 내민 주변의 손길)



농창업을 하면서 슬픈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 농사만 짓다가 창업을 하려니 어떤 아이템으로 사업할까 고민했었다. 도시텃밭 분양, 교육, 자재 공동구매 등 우리가 해왔던 일들이고 도시농업에 필요한 일이었지만, 딱히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은 없었다.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수익모델이 명확해야했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농사를 짓는 일부터였다. 단순하게 하고자 했던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농사였기에 생산하여 팔아보자였다. 다만 가꿔왔던 도시텃밭정도의 크기로는 어림없었다. 그래서 땅을 구하러 대전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무식한 도전이었다.


“청년들이 농사를 지어보려고 합니다. 땅을 빌려주시면 돈 한 푼 없지만 벌어서 보답하겠습니다”


이 말로 지주들을 만나러 다녔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기도 한다. 고향으로 귀농하신 분이 땅을 내주셨고, 부모님 땅이 놀고 있어 내주신 지역민이 계셨다. 그렇게 처음 노지밭과 하우스를 얻어 경작할 수 있었다. 지난 농사경험으로 다품종 소량생산하며 친환경 재배를 하기로 했다.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해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소비자에게 팔기로 한 것이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제철꾸러미였다. ‘묻지마 꾸러미’라는 이름으로 선금을 받고 어떤 채소가 오는지, 채소 양이 어느 정도 갈지 미리 안내하지 않았다. ‘우리를 믿고 묻지 말고 받으라는 농산물 꾸러미’였다. 월 1회 또는 월 2회를 선택한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배송했다. 이로 인해 제철농산물을 다양하게 심다보니 철에 맞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업 아이템을 만들어내며 수익모델을 만들어나갔다.


지역 내 다른 단체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대전도시텃밭연대라는 비영리민간단체에 소속해 농업과 도시농업에 대해 많은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배우고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노지 텃밭부터 옥상텃밭, 베란다텃밭, 상자텃밭 등을 직접 제작해 판매도 하고 그에 맞는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외에 사단법인 씨즈와 한화그룹의 지원으로 국내 많은 도시농업 단체와 농업 단체를 방문해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국외에도 나갈 수 있었다. 당시 메르스로 인해 원하던 나라로 갈 수는 없었지만 일본 도쿄지역에서 도시농업 관련 농장과 기업 등을 방문해 견학하고 인터뷰를 했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하고 싶었던 모델도 있었으며 우리 지역의 특성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다른 지원 프로그램이나 예산지원 사업으로 사업을 안정화하면서 대외적으로도 다양한 기회가 생겨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힘든 시기를 많은 사람들과 단체가 도와주어 아무 것도 모르는 청년농부들이 내실을 다지고 사업을 구체화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힘든 시기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는 위기와 실수는 거름이 되어 처음부터 튼튼하게 자랐고 따뜻한 햇빛같은 주변의 도움으로 쑥쑥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터를 잡고 줄기차게 뻗어나갈 일들을 생각할 차례가 되었다.


 


사회적농업 손수레 백종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