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대 서울농부 안은미농부님 입니다.
따뜻한 봄이 되면 성북구청 옥상은 아이들의 미술수업 교실로 변신합니다. 옥상에서 주변 풍경 내려다보며 풍경화를 그리는 걸까요? 아니에요. 아직은 붓과 크레용을 들 때가 아닙니다. 대신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는 모종삽이 들립니다. 옥상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상자텃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거름을 넣어 흙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린 후 흙을 살짝 덮어줍니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며 씨를 뿌리는 농부의 설렘은 아이들도 매한가지입니다. 상자텃밭에서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나 아이들의 하얀 도화지에 담길 식물 친구를 곧 만나게 될 테니까요. 아이들이 옥상 상자텃밭에서 채소를 직접 키우고, 성장과정을 관찰하며 농업의 생태적 가치를 일깨우고 미술활동을 통해 창의력과 정서를 함양하는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도시농업과 미술의 특별한 만남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에선 두 강사가 아이들을 지도합니다.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를 성북구에 처음 제안하고 현재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미술교육전문가 조혜경 화가와 서울농부포털 12월 ‘이달의 서울농부’로 선정된 안은미 씨입니다. 안은미 씨는 자신의 아들 현정준 군이 4년 전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의 학생이 되면서 학부모로서 인연을 맺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조혜경 화가의 수업진행을 돕고, 작물을 관리하는 보조강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안은미 씨는 4년 전만해도 농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도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다니던 병설유치원의 점심 식단이 아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 끼니를 거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던 중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를 알게 됐습니다.
“사립유치원은 아이들의 입맛에 맞게 식사가 나오는데 병설유치원은 초등학교 식단이 그대로 나오다보니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아이가 육식과 인스턴트를 많이 선호하다보니 야채도 많이 나오는 급식을 먹지 않고 집에 와서 배고프다고 해서 간식을 따로 챙겨줬어요. 이러면 안 되겠구나 하던 찰나에 성북구 교육프로그램에 아이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해서 가져갈 수 있고, 게다가 미술도 접목하는 수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수업 강사를 살펴보니깐 제 아이의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인 거예요. 우연의 일치죠. 선생님께 프로그램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니 너무 와 닿는 거예요. 저희 아이한테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아서 그래서 등록을 하게 됐고 운 좋게 추첨돼서 쭉 하게 됐어요.”
격주 토요일마다 2시간씩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의 특별함은 아이들이 농사의 모든 과정을 온전히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모종을 심고, 수확만하는 단편적인 과정을 체험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밭을 갈고 직접 만든 퇴비를 넣기도 하고, 난황유를 만들어 벌레를 잡기도 하고, 더운 여름에도 구슬땀을 흘려가며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정성스럽게 작물을 가꿉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한 해 농사를 짓는데, 상추, 들깨, 오이, 수세미 등 봄에 심는 작물부터 배추와 무, 파 등 가을 작물까지 다양한 작물을 길러냅니다. 안은미 씨는 농사의 전 과정을 아이들이 모두 경험하게 하는 게 조혜경 화가가 강조하는 수업 목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조혜경 선생님은 이 수업의 목적을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농사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중간에 수확만 하는 것은 참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아이들은 자신들의 땀과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니깐 농작물에 대한 애착이 더 생기게 되고 채소를 싫어했던 아이들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먹게 되는 거죠.”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에선 도시농업과 미술을 접목해 더욱 풍성한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아이들은 작물이 성장해가는 그 모습을 수채화로 표현하기도 하고, 석고캐스팅을 만들기도 하고, 점토로 농작물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농사에 필요한 소도구를 아이들이 직접 만들며 그림을 그려넣고 작품으로 승화시킵니다. 선생님이 구해온 기다란 나무에 아이들이 알록달록 색을 입혀 예쁜 지주대를 만들고, 페트병으로 빗물저금통을 만들어 그림을 그려넣어서 멋지게 꾸미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북구청 옥상은 상자텃밭 채소들의 푸르름에 더해 아이들이 만든 다양한 작품이 어우러진 멋진 정원으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 전시회까지 개최합니다. 전시회에서는 학교수업에서는 볼 수 없는 도시농업과 미술의 특별한 만남을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돼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자연에 대해서 허투루 보지 않고 세밀하게 관찰하게 돼요.”
안은미 씨는 도시농업과 결합한 미술, 미술과 결합한 도시농업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교육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합니다. 미술은 아이들로 하여금 작물이 성장하는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게 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이해도를 높입니다. 그리고 텃밭농사는 인위적인 색과 모양이 아닌 자연의 색과 모양에 대한 감각을 아이들이 체득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연을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냅니다. 무엇보다 미술과 도시농업을 결합한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면서 아이들은 미술과 도시농업 모두에 더 흥미를 느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업을 통해 진짜 성장하는 것은 바로 아이들입니다.
아들을 따라 온가족이 도시농부가 되다
안은미 씨는 처음에는 아들 정준 군이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 뒤에서 지켜보던 학부모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준 군이 수업을 통해 도시농업에 푹 빠져들면서 아들을 따라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정준 군은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을 통해 자연과 농작물의 소중함을 배우고, 편식하던 식습관을 고쳤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수확한 농작물을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마음도 갖게 됐다고 합니다.
“3년 동안 계속 수업에 참여했어요. 저는 아들이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아이가 좋아하고, 아이가 좋아하다보니 저도 그 매력에 빠지더라고요. 만약 1년만 했으면 그 매력을 몰랐을 텐데, 2년을 하니깐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3년을 하니깐 농사에서 모르는 것을 배워나게 되더라고요. 또 더 배우고 싶어서 제가 인터넷을 찾게 되더라고요. 퇴비를 잘 주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웃자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나 찾게 되더라고요. 조금씩 공부를 하게 되고요.”
수업이 격주로 진행되다보니 그 사이 작물 관리는 조혜경 화가와 안은미 씨의 몫입니다. 작년부터는 안은미 씨의 남편까지 텃밭 관리를 거들면서 온가족이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제안으로 태릉에서 텃밭농사까지 짓게 됐습니다. 이렇게 아들을 따라 온가족이 도시농부가 됐습니다.
“저희가 텃밭농사를 하게 된 것도 남편이 한번 해보자고 해서 하게 됐어요. 세 명이서 점점 확장하게 되더라고요. 나중에 우리 다 같이 시골에 가서 농사 지으며 살자는 말까지 나오더라고요.”
“도시 외곽에 정원이 있는 유치원을 만들어서 텃밭도 경작해보고 아이들이 키운 작물을 식단에도 활용하는 게 제 꿈이에요.”
안은미 씨는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에 참여하며 새로운 꿈도 갖게 되었습니다. 도시농업과 유아교육을 접목한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해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늘 텃밭에서 흙을 밟으며 작물을 가꾸고,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져 아이들이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교육을 꿈꾸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어린 아이일수록 텃밭 활동에 더 많은 흥미를 느끼고 교육 효과도 그만큼 크다고 안은미 씨는 설명합니다.
안은미 씨는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더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서울농부포털 ‘현장 뽐내기’에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 소개글을 쓴 이유도 자신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북구 주민들의 더 많은 참여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도시 꼬마농부의 미술일기’는 2011년부터 9년째 진행된 수업으로, 2014년에는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공모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는 수업이지만 많은 주민들에게 알려지진 않았다고 합니다.
아울러 안은미 씨는 성북구청의 지원으로 구청 옥상을 활용하고 있지만 조금 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됐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
“구청 건물이다 보니 시간적 제한이 많아요. 저도 주말에 가게 되면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올라가는 상황이거든요. 보안 때문인데 저녁에도 가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교 끝나서 가고 싶은데 문이 닫혀서 못가고. 그 점이 조금 아쉬워요. 자유로운 공간을 확보해 기본적인 수업도 하지만 아이들이 자유롭게 와서 돌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도시 꼬마농부’의 도화지 속에는 푸른 싹이 돋아납니다. 그리고 조금씩 성장해 열매를 맺는 매 순간의 과정이 꼬마농부들의 땀과 함께 펼쳐집니다. 자연의 가치를 이해하는 꼬마농부들은 앞으로 어떤 일기를 써내려갈까요? 분명 푸르른 희망찬 미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