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비오는 날의 향림
가을은 짧게 왔다가 금세 가버리는 계절인데 올 가을은 조금은 우리 곁에 많이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창밖에 비가 주룩주룩 오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문뜩 지난번 보리와 밀을 파종한 것이 생각이 나서 향림에 뛰어나와 보았습니다.
늦가을비가 가지에 매달려 있는 단풍잎을 적시고, 향림 텃밭에도 김장 채소들에게 마지막 생명의 물을 부어주고 있었습니다.
밀, 보리밭에 발을 멈춘 순간 가슴이 찡했습니다.
눈에 겨우 보일만큼이지만 새싹들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가을에 새싹이 나는 걸 처음 본 순간이었습니다.
새싹이라 함은 봄에만 있을 거라는 관념을 깨고 가을에 새 생명의 탄생을 보니 귀여운 내 아기를 처음 본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지금까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면 가을에도 새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 오십 중반이 넘은 나이에 신천지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새삼 도시농업 전문가 과정 수업을 받은 것이 정말 잘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향림에 오면 산책을 하거나 운동삼아 걷기만 했는데, 이젠 조금씩 자라는 밀, 보리들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구근, 양파, 마늘도 잘 올라오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다니면서 겨울작물들이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