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달래 된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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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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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는 참 쓰임새 많은 작물이다. 그대로 씻어서 송송 채를 썰어 양념장에 넣은 달래 장은 따뜻한 밥에 비벼 먹으면 감칠맛 넘치는 한 끼를 맛볼 수 있다. 향긋함을 그대로 살려서 달래 전을 해도 좋고 무침도 좋다. 특히 달래 무침은 잘 구워 기름기 빠진 삼겹살에 곁들여 먹으면 고기 요리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특별한 비법 재료가 된다. 군침 넘어가는 생각은 많았지만 가장 무난한 달래 된장찌개를 끓였다. 달래 된장찌개를 끓일 때는 달래를 가장 마지막에 넣어주면 좋은데, 그렇게 하면 특유의 풍미와 향이 날아가지 않고 식탁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잘 끓여 내온 달래 된장찌개가, 한창 무르익은 봄의 맛으로 식탁을 가득 채운다. 달래 특유의 조금은 알싸한 맛에서, 온 겨울을 이겨낸 저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봄 농사는 가을 농사와 비교하면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덜 힘들어서 그렇다. 봄이라고 병충해 없는 것이 아니고, 손 가는 일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가을 텃밭에 비할 바는 아니다. 혜윰뜰에는 가끔 벼룩잎벌레가 생기는데 이 녀석들이 봄 작물인 상추, 가지, 토마토, 고추와는 친하지 않아서 피해도 별로 생기지 않는 이유도 있다. 고추는 탄저병이라는 무서운 복병이 있지만, 혜윰뜰에서는 고추가 차고 습한 바람에 병들기 전에 수확을 마치는 터라, 봄 농사에는 작은 여유로움이 있다.
봄 농사가 즐거운 것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겨울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고 만나는 첫 번째 도시농부 활동이기 때문이다. 달래가 겨울 동안 추위 속에서 더 향긋해진 것처럼 도시농부도 겨울이라는 시간 동안 기다림을 통해서 농부의 에너지를 채우게 된다. 그러니 여러모로 봄 농사는 도시농부에게는 행복한 시간이다. 씨 뿌려 애써 키운 열무잎 사이를 톡톡 뛰어다니는 벼룩잎벌레를 쫓아다니면서도 힘든 줄 모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유로움과 기다림 끝에 만나는 행복한 시간에 더해서 혜윰뜰의 봄 농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새로운 이웃의 참여다. 혜윰뜰은 천 세대 가까운 이웃 중에서 신청을 받아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매년 새봄이 오면 새롭게 참여할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밭을 내어주는 이웃이 나온다. 그 밭에는 새봄에 새로운 도시농부가 함께하게 되는데 여느 마을공동체 활동이 그렇듯이 혜윰뜰 도시농업공동체에도 새로운 도시농부, 새 이웃은 공동체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호기심 넘치는 새내기 도시농부의 눈빛에 텃밭 구석구석이 밝아지고 활기가 찾아온다. 새로운 회원이 참여하면 가장 먼저 전하는 말이 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 같은 만년 초보 농부가 새로운 회원이 품은 도시농업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줄 리는 만무하다. 대부분 질문이 나 역시도 알지 못하는 것들일 때가 많다. 특히나 시시각각 자연의 선택에 따라 변화하는 텃밭은 가끔 밭일을 돌보는 초보 농부인 나에게는 늘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다 보니 신입회원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가장 많이 하는 답은 이렇다.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도시농업공동체 대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무지함을 그대로 드러내야 할 때가 많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회원들도 대표라는 자에게 도시농업에 대해 의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부끄러움이 덜해졌지만, 활동 초반에는 모르는 일을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해야 할 때, 목에 그 말이 턱하고 걸려서 쉽게 꺼내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이제는 수년 차 경험이 쌓인 선배 도시농부들이 있기에, 내가 질문받는 일은 거의 없어서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혜윰뜰은 원래 마을에 있는 작은도서관의 이름이다. 그 이름을 부르다 보니 정감 어리고 특별해져서 도시농부의 활동도 같은 이름으로 삼게 되었다. 도시농업 이전에 혜윰뜰 작은도서관에서 더 먼저 태어난 주민공동체가 있는데, (희한하고 느슨한) 독서모임 책수다라고 한다. 책을 통한 인문학 평생학습 동아리라고 하면 조금 거창하지만, 책 이야기 속에서 삶의 길을 찾아가는 이웃들이 함께하는 모임이다. 달래를 한 움큼 건네준 회원도 책수다에서 먼저 인사를 나눈 이웃이다. 함께 책을 읽던 인연이 이어져서 텃밭에서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참 우연하게도 달래를 얻은 다음 날, 책수다의 다른 회원에게 바지락을 조금 얻었다. 고향에서 올라온 바지락을 잘 해감하고 하나씩 까서 정성스럽게 냉동해서 독서모임 회원과 나눔 한 것인데, 염치없이 나도 한 덩이를 얻었다. 아까워서 다 먹지 못하고 모셔두었던 달래가 생각나서 이번에는 바지락 달래 된장찌개를 끓였다. 역시나 그 맛이 기막히다. 원래 향긋했던 달래 된장찌개에 바지락의 바다내음 더한 짭조름한 감칠맛이 더해지니 어제 맛보았던 그 찌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함이 있다. 바지락 조금 더했을 뿐인데 이렇게나 맛이 달라지다니! 감탄하다 문득 그 특별한 맛의 이유가 느껴졌다. 사실 텃밭에서 나는 작물은 가까운 마트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달래는 사시사철 맛볼 수 있고 바지락 역시 그렇다. 그런데 마트에서 사 온 재료로 요리를 하면 이렇게 특별한 맛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달래는 품종도 거의 변화가 없어서 맛이 다를 리 없는데 말이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문득 알게 된다. 이웃과 나눔을 통해서 얻은 달래에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혜윰뜰 텃밭과 작은도서관에서 나눔 받은 달래와 바지락이 만나서, 내 솜씨로는 낼 수 없는 깊은 맛, 즐거운 맛의 요리가 완성되는 경험을 하면서 또 다른 상상을 해본다. 서로 다른 마을공동체가 어울려 함께 할 수 있을 때, 만나게 될 새롭고 깊은 경험은 어떤 느낌일까. 마을에서 바지락 달래 된장찌개의 그것과도 같은 향긋하고 감칠맛 가득한 소식이 가득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웃에게 이야기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마음 편히 이야기 해달라고. 비록 그것이 장님 둘이서 밤길을 걷는 일이 된다 해도 덜 외로운 길이 될테니까. 서로의 정성과 배려가 마주할 때 일상의 작은 행복이 혜윰뜰 텃밭에서 싹트길 희망하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