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양평군 청운면의 한 하천부지에서 "전국 토종벼 농부대회"가 열렸다. '전국토종벼농부들'이 주최하고, 농업회사법인 '우보농장'이 주관한 이번 대회는, 10여 년 전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가 토종벼를 재배하기 시작한 이래로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토종볍씨 나눔 행사이다. 토종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과 직접 채종한 토종볍씨를 나누기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대회는 예년과 다를 바 없이 성황을 이뤘다. 다만 한 가지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바로 장소였다.
'전국 토종벼 농부대회'가 3월 29일 양평군 청운면의 토종자원 클러스터 단지에서 열렸다. © 서울농부포털우보농장의 이근이 대표는 지난 10여 년 간 고양시에 터를 잡고 토종벼를 재배해 왔다. 5평의 논에서 30 품종으로 시작한 토종벼는 현재 250여 품종으로 늘어날 만큼 성공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토종벼의 생활화와 전국화를 고민하던 이근이 대표에게 양평군에서 찾아온 것은 지난해 추수 때였다.
"양평군에서 토종자원 클러스터 단지를 만들겠다면서 토종볍씨를 구할 수 없겠냐고 물어왔어요. 가능하다면 모든 볍씨를 돈을 주고 사서라도 토종벼를 재배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토종볍씨를 돈을 받고 판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어떻게 키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제가 직접 기르지 않는 이상은 어렵겠다고 거절했었죠."
양평군은 2018년부터 '토종종자의 부흥'과 '토종종자의 종자주권 강화'를 위해 토종씨드림과 함께 양평군 6개 면 36개 리 농가에서 38작물, 67품종, 198점의 토종 작물을 수집하고, 양평군 농업기술센터의 채종포에서 재배하며 토종의 특성을 연구해 왔다. 토종 작물을 지역 특색에 맞는 미래 먹거리로 파악한 양평군은 '토종자원 클러스터 기반구축 사업'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이근이 대표와 만나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보농장과 협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클러스터 단지 내 토종종자 재배와 채종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3년간은 협약을 통해 우보농장을 토종자원 클러스터 단지에서 운영할 예정이에요. 당장은 고양의 우보농장도 오가며 하고 있지만 점차 양평으로 거점이 옮겨질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민관 협력을 통해 토종벼 채종포 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서 품종의 특성을 면밀하게 살핀 후에 양평의 농가뿐만 아니라 전국의 농가에 토종볍씨를 보급하려고 해요. 더불어서 토종쌀의 활용 방법과 활로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양평군 청운면의 토종자원 클러스터 단지 안에 조성 중인 토종벼 채종포 논밭. © 서울농부포털양평군은 우보농장과의 업무협약 체결과 함께 양평군 농업기술센터에 전국 최초로 토종자원 육성 전담기구인 '토종자원팀'을 신설하고, "토종농작물 보존과 육성에 관한 조례"도 제정했다. 현재 12개 읍면마다 1200평의 채종포를 만들어 각 2개 품종씩 토종벼를 재배 중이며, 클러스터 단지가 조성되는 가현리 일대의 농민들과 함께 총 3만 평의 채종포 운영을 준비 중이다.
"기반을 조성하는 것 이외에 양평군의 역할 중 하나가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될 거예요. 맛의 비교나 품질에 관한 연구를 통해 토종이 개량종에 비해 덜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이터를 축적하게 될 겁니다. 결국 토종쌀이 우리 농업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농부들이 토종쌀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소비자가 제 값을 주고 토종을 선택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홍보가 필요합니다."
이근이 대표는 무엇보다 농부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부입니다. 농부를 중심에 두고 소통하면서, 농부들이 스스로 토종벼가 좋다는 판단을 내리게 해야 해요. 농부들이 인정하면 다른 흐름들과 무관하게 토종벼는 살아남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치(自治)의 방식으로 토종벼가 확산되어야 하는데, 현재 조직된 12개 읍면의 채종포가 상징적인 기반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장 근본적으로 농부들이 토종쌀을 통해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농부들도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정착할 수 있게 되겠죠. 다양한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토종벼 채종포에 참여하는 양평 읍면 12농부와 가현리 8농부에게 주최측에서 토종볍씨를 전달하고 있다. © 서울농부포털본 행사 후 참가자들이 토종벼 채종포 투어를 하고 있다. © 서울농부포털토종벼 채종포 투어가 끝난 후 주최측과 참가자들이 내놓은 토종볍씨와 토종쌀을 모두 함께 나누고 있다. © 서울농부포털모든 행사가 마무리된 후, 각지에서 모인 토종벼 농부들이 각자의 활동을 자유롭게 나누는 집담회 시간이 마련되었다. 한 농부는 대궐도, 졸장벼, 흑갱을 밭에서 직파로 재배해 수확한 볍씨 나눔을 하기 위해 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근이 대표는 우보농장의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일단 4월 중순경부터 이 곳 양평에서 토종벼 논학교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토종벼의 1년 살이를 함께 하며 재배법을 서로 나누고 연구하는 시간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와 함께 논학교를 통해 토종쌀의 활용법도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 수확한 쌀로 막걸리를 만들어 지역 특산주로 만들고, 실제 토종쌀의 특성과 맛을 분류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가공법을 연구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농협의 폐창고를 개조한 연구 실습장을 만들 예정입니다. 또, 농부시장도 열 생각입니다. 토종쌀을 대량으로 시장에 내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농부의 이름을 걸고 다품종 소량으로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는 시장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런 활동들이 다 함께 논의되고 벤치마킹되어서 전국적으로 퍼졌으면 합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토종쌀이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집담회에서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가 향후 계획을 밝히고 있다. © 서울농부포털끝으로 이근이 대표는 5월 중 있을 모내기 행사를 예고하며, 함께 하는 농사를 강조했다.
"5월 중에 채종포의 2천 평 정도는 손모내기를 할 계획입니다. 일손은 도시에서 끌어올 생각이에요. 도시민들을 농사에 접근하게 하고 실질적으로 농부와 결합시킬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논입니다. 벼농사는 혼자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많은 인력이 필요한 벼농사를 짓는 논이야말로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으로 도시에는 모내기를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다 함께 옆에 분들 손잡고 와서 모내기 체험도 하고 즐기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논농사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맛이 있습니다."
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