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의 때를 맞아 도시농업 공간 여기저기서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은평구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의 이야기(
['도시농부와 시민이 함께 하는, 모내기 한마당'. 은평구 향림도시농업체험원])로 갈음하려 했는데 아주 특별한 공간에서 모를 낸다는 소식은 놓치고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벼를 키워내는 곳, 강북구 번동주공3단지아파트의 '벌리논'을 다녀왔습니다.
강북구 번동주공3단지아파트의 '벌리논'. '벌리'는 번동의 옛 이름이다. ©서울농부포털번동주공3단지아파트에 텃밭이 생긴 것은 지난 2018년이었습니다. 원래는 조경수가 심어져 있던 곳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 음침했던 공간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관리사무소와 주민들이 논의 끝에 자원순환형 텃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내친김에 2020년에는 서울시의 지원을 통해 논살림사회적협동조합,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와 함께 논까지 만들었습니다. 이석호 번동주공3단지아파트 임차인 대표는 "처음 텃밭을 만들었을 때는 일단 쓰레기 더미가 사라져 깨끗해졌다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이 좋아했고 텃밭 자체도 인기가 좋았지만, 논을 만들자고 했을 때는 아파트에 무슨 논이냐며 주민들이 고개를 갸웃했었다"며 "지금은 서울 안에서 찾아보기 힘든 논, 그것도 아파트 단지 안의 논이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주민들, 특히 어르신들에게 옛 생각하면서 오며 가며 둘러보고 쉬다 가는 쉼터가 되었고, 주변 어린이집에서 견학을 오고 지나가던 젊은 사람들이 어르신들께 이게 뭐냐고 묻기도 하는 살아있는 현장 학습장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모내기를 시작하기 전 텃밭을 가꾸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친환경 병충해 방제 수업이 열렸습니다. 번동주공3단지아파트의 텃밭은 논습지의 생태계 덕분으로 자연스럽게 천적 관계가 형성되어 지금까지 여타 텃밭에 비해 상대적으로 병충해 피해가 덜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계속되는 가뭄으로 예전에 없던 병충해가 발생하기 시작해 주민들의 요청으로 수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날 친환경 병충해 방제 수업에서는 김의동 마들장추진위원장의 진행으로 막걸리, 맥주, 주방세제, 커피찌꺼기 등을 활용한 다양한 해충 방제제를 만들었다. ©서울농부포털번동주공3단지아파트의 텃밭과 논에서는 빗물을 모아 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아파트 옥상에 설치된 시설을 통해 텃밭 지하에 매설된 20t 규모의 물탱크에 빗물을 저장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수업이 끝난 후 본격적인 모내기에 들어갔습니다. 이 날 모내기에는 아파트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리사무소,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와 논살림협동조합의 회원들, LH 주택관리공단, 번동3단지종합사회복지관 등 번동주공3단지아파트와 관계를 맺고 협력하고 있는 다양한 단체의 인원들이 참여했습니다.
모내기에 앞서 땅을 고르는 '써래질'을 하고 있다. ©서울농부포털'벌리논'의 조성과 관리를 함께 하고 있는 논살림사회적협동조합의 지도로 모내기가 진행되었다. 이 날 '벌리논'에는 생장 비교를 위해 토종벼와 일반벼를 함께 심었다. ©서울농부포털'벌리논'에는 천수답에 쓰이는 전통적인 물 저장고인 '둠벙'도 마련되어 있다. ©서울농부포털'벌리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논살림사회적협동조합의 방미숙 이사장은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모를 심고, 벼가 자라고, 수확하는 것을 함께 하며 주민들이 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낀다"며 "주민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성공했고, 올해 3년 차를 맞아 이제는 생태적인 변화를 확인해야 할 때"라고 밝혔습니다. 논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우리의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공간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논 자체가 습지로 생물다양성의 보고이자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물 순환의 중요한 고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도시농업에 있어 텃논은 텃밭에 부족한 생물다양성과 환경적인 한계를 보완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방미숙 이사장은 "번동주공3단지아파트의 텃밭은 육상으로만 되어 있는 여타의 도시농업 텃밭들과는 달리 습지인 논이 있어 잠자리 같은 천적들이 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기 때문에 진딧물 등의 해충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전하고 "논의 물이 증발하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상추를 심을 수 있는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논습지가 텃밭에 주는 영향이 크다"며 "도시농업은 반드시 습지 농업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벌리'는 번동의 옛 이름으로, 오얏나무가 무성한 것으로 유명한 마을이었습니다. 여전히 우이천과 오패산, 북서울꿈의숲 등을 끼고 있어 서울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쾌적한 환경을 자랑하고 있지만, 예전 논과 밭으로 이루어졌던 이 지역은 현재 주거단지로 개발되면서 아파트로 가득 찬 공간이 되었습니다. '벌리논'이 아파트 숲 사이에서 생물들이 물을 얻어갈 수 있는 작은 샘이 되길 바라봅니다. 논은 인간이 자연을 경작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자연과 공존하며 순환하는 공간입니다.
©서울농부포털김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