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8일 여우재텃밭에서 열린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들의 정기모임. 부침개를 만들고 있는 이가 소영균 텃밭지기이다.
인천 부평구 십정동에 있는 여우재텃밭은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들이 경작하는 공동체텃밭이다. 지난 18일 오후 여우재텃밭에서 회원들의 정기모임이 열렸다. 텃밭 한 편에 마련된 천막 그늘에서 텃밭지기 소영균씨와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이 모여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여름 텃밭은 먹을 게 지천이었다. 회원들이 잠시 텃밭을 돌며 호박, 깻잎, 고추, 부추 등을 따오니 부침개에 들어가 식재료가 순식간에 모였다. 채를 썰어 밀가루 반죽에 넣고 부치니 노릇노릇 익은 부침개 냄새가 텃밭에 퍼지며 군침을 돌게 했다. 막 딴 신선한 채소로 만든 부침개를 텃밭의 자연 속에서 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었다. 텃밭에 마실 나온 회원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어느새 15명 정도가 모인 작은 마을 잔치가 됐다. 막걸리에 얼음을 띄워 마시며 이런 저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오고 갔다. 7월 농한기 텃밭에서 열린 모임은 도시농부들만이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봄부터 흘린 땀방울과 노동의 결실이 맺혀가는 풍성한 텃밭이 있어서 가능한 행복이었다.
올해 봄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 도시농부들은 자원순환 활동으로 어느 때보다 많은 구슬땀을 흘렸다. 계기는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를 중심으로 도시농업 단체들이 4월 11일 도시농업의 날을 맞아 벌인 ‘2020 지구를 살리는 도시농부 행동’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은 기후위기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인류의 생존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시작됐다. 캠페인에는 텃밭에서 지하수나 수돗물 대신 빗물을 사용하고, 플라스틱과 비닐 사용을 줄이고, 도시에서 나오는 유기물을 활용해 퇴비를 만들어 쓰는 활동 등을 통해 지구를 살리자는 도시농부들의 제안과 다짐이 담겼다.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도 전부터 친환경텃밭을 가꾸며 자원순환 활동을 벌여왔는데, 올해는 캠페인에 참여하며 마을과 연계한 자원순환 활동으로 확대시켰다. 인근 아파트에서 버려지는 낙엽을 여우재텃밭으로 가져와 퇴비를 만들고, 남는 낙엽은 다른 텃밭에도 보내 퇴비를 만들도록 했다.
“아파트에서는 가을에 낙엽을 수거해 쌓아두고 있다가 4~5월에 폐기물 업체에 통해서 버린다. 낙엽으로 퇴비로 만들면 자원인데 왜 돈을 주고 버리냐고 이야기를 해서 5톤 분량의 낙엽을 수거해 왔다. 아파트에서는 운반에 드는 유류비만 지원하고 140만 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소영균 텃밭지기의 설명이다. 5월에 1톤 트럭을 빌려 이틀에 걸쳐 10번을 오가며 낙엽을 텃밭으로 가져왔다. 6월 정기모임에서는 텃밭 회원들이 함께 미강, 깻묵, 말똥 등을 층층이 쌓아 퇴비를 만들었다. 인천 남동구에 있는 승마장에서 가져온 말똥 역시 돈을 주고 버려야 하는 폐기물이지만 텃밭에서는 좋은 퇴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된다.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는 여우재텃밭 뿐만 아니라 부평구청이 운영하는 공영텃밭에서도 낙엽으로 퇴비를 만드는 민관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원순환 활동을 지역의 텃밭 전체로 확산하는 활동을 벌였다. 공영텃밭에서 사용한 낙엽은 부평여자고등학교에서 수거해 왔는데, 덕분에 학교는 300만 원 가량의 폐기물 처리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들이 아파트에서 모은 낙엽 부대를 텃밭으로 가져가기 위해 차에 싣고 있다.
아파트에서 수거한 낙엽 부대를 텃밭으로 옮겨 쌓는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들.
영균 텃밭지기는 “도시텃밭이 있으면 이와 같은 자원순환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며 기후위기를 막고 생태적 전환을 위해서는 도시에 더 많은 텃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텃밭이 있다고 반드시 자원순환 활동이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많은 공영텃밭이 있지만 퇴비간을 운영하며 퇴비를 직접 만들어 쓰는 곳은 많지 않다. 그래서 그는 행정과 주민, 시민사회의 간의 협력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정에서는 텃밭 공간을 확보해주고, 시민들이 텃밭을 운영하며 주민자치회처럼 자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활동이 보다 공익적 활동이 되도록 견인하는 도시농업단체나 시민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
자원순환이란 유기물이 분해돼 거름이 되는 화학 작용을 일컫는 게 아니라 경작을 매개로 유기물과 텃밭을 연결하는 시민들의 활동이다. 소영균 텃밭지기는 공영텃밭이 시민들의 참여와 결합하면 낙엽과 같은 버려지는 자원이 시민들의 네트워크와 자율적 활동 통해 교류되고 순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는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텃밭의 순환 기능을 활성화하고 마을로 확장하려는 시민들의 네트워크이다. 텃밭에 빗물저금통을 설치하기도 하고, 취약계층과 수확한 작물을 나누는 활동을 통해 텃밭을 생태적 활동 공간이자 복지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2017년 도시농업 활성화 조례 제정을 위해 구청에서 개최한 주민설명회에 참여해서 우리의 의견을 적극 개진했다. 조례가 제정되고 2018년 초에 전담팀을 만들어지고 이후 3개의 공영텃밭을 조성됐는데, 주민설명회 참여한 사람들이 도시농업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아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여우재텃밭에서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들의 모임에 참여해 그들의 활동에 대해 들으며 도시농업을 통한 공동체 활성화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텃밭에서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공동체 안에서의 교류를 넘어 텃밭 밖의 세상과 텃밭을 연결하며 생태적 순환을 촉진하는, 이웃과 자연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리며 텃밭을 일구는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이 아닐까?
‘도시텃밭 확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라’, 2020 지구를 살리는 도시농부 행동 캠페인을 벌이는 부평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들.
최승덕 책임편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