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8일 찾아간 옥계어린이집 마당에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상자텃밭에는 배추 수십 포기와 가지, 파, 아욱, 파 등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옥계어린이집 유수안 원장이 정성을 들여 가꾼 텃밭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생태체험의 장이다.
“여기에서 애벌레를 많이 잡았거든요. 아이들이 애벌레를 키우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교실에서 키웠는데, 일주일이 지나자 번데기가 되고, 또 일주일 되니까 나비가 된 거예요. 그래서 나비를 여기다 다시 풀어줬거든요. 그랬더니 그 나비들이 또 알을 까고, 벌레가 생긴 거예요. 그래서 요번에는 잡아서 아이들한테 ‘우리 이제 그만 키우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랬더니 아이들이 ‘어디 다른 데다 갖다 버려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생각했죠. ‘그런데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요. 우리 바깥에 큰 놀이터로 애벌레들을 이사시켜주면 어때?’라고 말하니 아이들이 막 좋데요. 그래서 아이들이랑 바깥에 가서 나뭇잎에 밑에 놔줬어요. 애벌레 하나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어요.”
유수안 원장은 생태교육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열심히 텃밭을 가꾸고 생태교육의 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에 서울시장 표창장도 받았다. 그가 생태교육에 적극적인 인 이유는 아이들의 발달과 관련돼 있다고 한다.
“7살까지 아이들은 감성적으로 자라야 해요. 자연을 느끼고, 동식물과 흙을 만지며 감정으로 느끼고 자라야 하죠. 이성적인 것은 학교에 가서 하면 돼요. 그런데 감성적으로 하늘도 보고, 텃밭도 가꾸면서 자란 아이가 학교에 가서 이성적으로 학습을 할 때 머리 속에 들어오지, 반대로 하는 교육은 안 된대요. 우리의 몸은 7살까지 모든 기관이 발달해요. 그때까지는 무조건 뛰어놀아 몸을 발달시켜야 하는 거죠. 그래야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 있어요. 그런 다음에 학교에 가서 공부하면서 이성적 능력도 제대로 키울 수 있어요.”
옥계어린이집 아이들은 매일 상자텃밭이 있는 마당에서 뛰어놀고, 격주마다 금청구청이 운영하는 텃밭에 간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에는 숲에 가서 자연을 느끼고 즐긴다. 아이들은 텃밭과 숲에서 흙을 만지고 다양한 동식물을 경험하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기르고 있다. 그리고 텃밭과 숲에서의 경험을 교실로 가져와 다채로운 생태학습으로 이어진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85년 사범대 보육학과 4학년 재학 중이던 유수 안 원장은 마침 개원한 옥계어린이집에 취업했다. 그리고 2년 후 젊은 나이에 원장이 되어 계속 옥계어린이집을 책임져 왔다. 처음 원장이 됐을 시절 옥계어린이집도 다른 어린이집과 다르지 않은 교육을 했다고 한다.
“그냥 남들하고 똑같이 주입식 교육을 했었죠. 한 번은 대학교 은사님 방문하셔서 이런 교육을 하냐고 하면서 야단을 치셨어요. 그때 내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안 하고 그냥 환경에 젖어서 부모들이 원하는 교육을 했다는 것을 느꼈죠. 그러고서 대학원에 가서 이제 생태교육에 관해 공부하면서 더 이제 확고해졌어요.”
다른 방향의 교육을 모색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생태교육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2012년 기회가 찾아왔다. 금천구청 옆 공터에 새로 텃밭이 생겼다. 지금은 없어진 한내텃밭이 개장했다. 그리고 도시농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울 환경이 갖춰지자 유수 안 원장은 그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옥계어린이집 마당의 상자텃밭도 유수 안 원장이 구청에 직접 찾아가 지원을 받은 것이다.
“한내텃밭을 분양받아서 감자를 심었어요. 그런데 저는 항상 저 혼자 하지 않아요. 부모님들께 ‘이 많은 땅을 어떻게 저 혼자 농사를 지어요. 부모님들이 같이하셔야 해요’라고 이야기했죠. 우리 어린이집은 부모님들에게 늘 열려 있었어요. 그랬더니 어머님들이 조를 짜서 물도 주시고, 구청 옆이니까 아버님들도 출근하는 길에 물을 주고 출근하셨죠.”
텃밭 개장을 계기로 옥계어린이집 교사와 아이들 그리고 부모까지 함께 텃밭 농사를 지었다. 그러면서 텃밭에서 이루어지는 생태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농사일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건 역시 유수 안 원장이다. 농사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유수안 원장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면 주저하는 아이들도 금방 따라 했다.
“원장이 앞장서야 해요. 어머님들도 옥계어린이집 원장님은 다른 원장들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저는 봄에 모내기할 때도 주저함 없이 물에 빠져서 시범을 보이거든요. 물에 빠져서 ‘얘들아, 이리 와. 우리 모내기 하는 거야’라고 하면 처음에는 안 들어오려는 아이들이 같이하게 되죠. 그러니까 구청에서는 ‘원장님이 몸소 실천 하신다’고 하면서 저를 좋아해요.”
‘자연이 그렇듯 아이들에게도 때가 있어요’
생태교육을 하면서부터 아이들은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정서적인 안정을 갖게 되고, 생명을 소중히 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인성을 길렀다. 유수안 원장이 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10년 전쯤인데 한 선생님 저에게 마음이 무겁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한 아이가 누구를 때리거나 괴롭히지는 않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밥만 먹고 가고 말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숲에 갔어요. 그런데 그 애가 갑자기 말을 하는 거예요. 편안하니까. 그러니까 친구들이 ‘너, 말할 수 있었어, 말할 수 있었어’ 그랬어요. 그만큼 숲이라든가 자연이 아이들한테 좋은 거예요. 왜 그런지 아세요? 우리가 자연에서 태어났잖아요. 자연에 가면 고향에 온 거거든요.”
특히 식습관 개선에 효과가 컸다. 텃밭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은 작물과 친숙해지고, 작물과 친숙해지면 전에는 먹지 않던 것도 잘 먹게 된다고 한다.
“금천구청에서 모니터링을 나왔어요. 교수님과 학부모 대표님이 오셨는데, 그날 텃밭에서 풋고추를 땄거든요. 맵지 않은 걸로요. 그런데 다섯 살 아이가 풋고추를 아삭아삭 먹었어요. 그걸 보고 학부모 대표님이 나중에 저에게 ‘아니, 어떻게 다섯 살 아이가 고추를 먹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아이들은 먹어요’라고 했더니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면서 ‘정말 최고예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편식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이 정말 대단하구나. 그리고 텃밭교육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텃밭 교육이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유수안 원장은 무엇보다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에 대한 교육은 부모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래서 조급하다. 유수안 원장은 그런 부모들은 설득한다. 자연에는 모두 때가 있고,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얼마 전에도 운영위원회 어머니들이 어린이집에 오셨어요. 그래서 말씀을 드렸죠. 우리가 물을 주고 햇볕을 받으면 새싹이 나와요. 그런데 어머니께 ‘새싹이 왜 나올까요? 그럼 언제 나올까요?’ 여쭤보면서 ‘새싹만이 자기가 나올 때를 알아요’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에게 빨리 공부하라고 하지만 아이가 가장 잘 알잖아요. 자신이 공부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그래서 생태교육은 정말로 기다림이더라고요.”
유수안 원장의 설득으로 학부모들도 생태교육의 가치를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건강하고 밝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부모가 만족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받을 수 없는 생태교육 때문에 옥계어린이집을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오직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젊은 시절부터 제 인생이 여기에 다 있죠. 저는 이제 더 이상 욕심이 없어요. 자신의 젊음을 모두 바친 곳이기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은 것 같아요.”
유수안 원장이 옥계어린이집 원장이 된 해 자신이 심은 묘목이 이제는 새들이 찾아와 쉬어가는 커다란 나무가 됐다. 그는 강산이 세 번도 넘게 변하는 동안 옥계어린이집을 지켰고, 자기 삶 대부분을 옥계어린이집과 함께했다. 그동안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이다. 숲과 텃밭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느끼는 행복감이 커서도 삶에 큰 힘이 될 거라는 믿음에서다. 생태교육을 하며 즐겁고 소중한 추억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고 싶다.
“이 옥수수 그림을 보세요. 이 아이가 커서 옥수수를 먹을 때마다 지금을 기억할 거 아니에요. 그런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여름에 옥수수밭에 갔는데, 날씨가 더웠어도 많은 것들을 하고 놀았어요. 옥수수 껍질을 까서 불에 구워 먹었고요. 우리 아이들은 이런 경험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하죠.”
아이들의 행복은 어른의 책무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을 웃음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소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아닐까. 금천구 옥계어린이집에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어린이집 건물 밖까지 울려 퍼졌다.
최승덕 책임편집기자